네. 맞습니다. 면접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어제도, 오늘도,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다 보니 그날이 그날 같다.
아침이면 남편은 회사에, 아이는 학교로 가고, 나는 카페에 간다.
혼자 간 카페에서 아무 방해 없이 글쓰기와 그림작업을 하고,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돌아온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약속도 잡지 않는 편이다.
느긋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여러 가지 일이 생겼다.
우연히 ‘아트러너’를 알게 되었고, 오랜만에 지원서도 작성했다. 서류 심사 발표가 있었고, 면접도 봐야 한다. 모두 이번주에 일어난 일이다.
멀미가 나는 듯 몽롱하고, 붕 뜬 기분으로 일주일을 살았다.
‘면접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용인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훑어보니 작년에 본 뮤지컬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의 공연장인 ‘포은아트홀’이 문화재단 소속이었다. 문화재단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또 유튜브에서 ‘아트러너’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결과 중 업로드된 지 4년 된 영상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아트러너가 있었다고?’
알고 보니 2016년부터 시작한 사업이고, 해마다 50명~100명의 아트러너가 활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트러너 활동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그저 갖은것을 조금 나눠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트러너 활동을 하면서 받은 것이 훨씬 많답니다. “
“처음에는 낯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게 두려웠어요. 하지만 2시간 활동이 끝날 때면 늘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일 년 동안 동일한 내용의 예술 활동을 해요. 그럼에도 의도치 않은 일이 생기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펼쳐져요. 그래서 더 재밌고, 신나요”
‘면접이 몇 시였지?’
다시 공고문을 읽어 보았다. 그러다 면접 시간 옆에 쓰인 장소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당연히 포은아트홀이라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낯선 장소가 적혀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문화재단은 포은아트홀 건물에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포은아트홀은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이라 아트러너를 지원하는 것도, 면접을 보러 가는 것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알고 보니 면접장소는 ‘용인문화도시플랫폼 공생광장’이었다. 위치를 확인하려고 지도앱을 열었다. 처음 보기도 하고, 어렵고 긴 이름이라 몇 번을 확인하며 목적지로 입력했다. 이럴 수가… 대중교통으로 1시간 20분이 걸린다. ‘강남역도 30분이면 가는데, 같은 용인인데 이렇게 멀다고? 용인시 처인구? 이런 구도 있었구나’ 싶었다.
근데… 설마! 교육장소도 여기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으로 확인해 보니 슬픈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야 지원서에 적힌 우대사항이 기억났다. 운전가능자!!!
면접 당일
처음 가보는 곳이기에 면접시간 보다 2시간 일찍 집에서 출발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수인분당선 죽전역으로 가 지하철을 탔다. 기흥역에서 에버라인선으로 갈아탄 후 초당역에 내렸다. 마지막으로 10분 정도 버스를 타면 도착이었다. 정류장으로 이동해 전광판을 올려다보니, 새까만 화면에 흰 글씨로 ‘도착버스 없음‘이 보였다. 지도앱의 도착정보를 확인했다. 68번과 690번 버스가 서는 정류장 이었지만, 하루에 2~3대 만 운행하는 버스여서 40분 후 도착예정이었다. 버스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걸어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편의점과 주유소를 지나니, 거리는 더욱 한산했고. 부슬비까지 내렸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며 면접 연습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고, …” 면접관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지원동기 말하는 연습을 했다.
머릿속으로는 답변을 완성했지만, 생각과 달리 말이 안 나오기도 하고, 중간중간 발음이 꼬이기도 했지만, 대 여섯 번 같은 대답을 연습하니 이 질문만은 떨지 않고, 대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 대기장소에 도착했다.
사무실로 보이는 공간에는 커다란 테이블 2개가 놓여 있었다.
출입문 쪽 테이블에는 6~7명이 친근하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안쪽 테이블에는 한 명이 그림책을 읽고 있었다. 내향형인 나는 자연스럽게 안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시끌벅적한 옆 테이블의 대화가 궁금해서 귀 기울였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잠시 후 한 명이 도착해 ”어디서 오셨어요? “라는 질문을 시작했고, 우리 테이블도 가벼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긴장이 풀리고,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면접은 5명씩 진행되었다. 3명의 면접관을 마주 보고, 5개의 1인용 책상과 의자가 반원을 그리며 놓여있었다. 먼저 오른쪽 면접관이 ‘아트러너’ 사업에 대한 배경과 목적을 설명했다. 그러고 가운데 앉은 면접관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 책상 위에 놓인 카드뭉치를 봐주시겠어요? “
조금 전까지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카드가 보였다.
“카드에는 각기 다른 질문이 적혀있습니다. “
“대답하고 싶은 질문카드 한 장을 골라주세요.”
뜻밖의 장소에서 카드뭉치를 보게 되니 어리둥절했다. 카드를 보고 있지만, 문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질문을 고르셨다면,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벌써 질문을 고른 듯했다 나도 서둘러 질문을 골랐다.
카드마다 어떤 가치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목표, 가치, 전달, 공감, 우리‘같은 키워드의 질문이었다.
나는 “당신이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를 골랐다. 걸으면서 준비한 대답과 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면접이라 생각하고 준비했지만, 용인문화재단 공지글에는 면접일정이 아닌 ‘인터뷰 일정’이라 쓰여있던 것이 생각났다.
인터뷰는 끝났지만, 카드 속 질문들은 마음에 남았다.
반복된 일상을 살다 보면, 생각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진다.
이따금 무기력하고, 지루한 삶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평소라면 안 해볼 새로운 생각을 해 볼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같은 것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전형적인 방식이 아닌 참신한 방식으로 해결해 보는 것은 매일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늘 가던 길 말로, 안 가본 길 걸어 보기, 늘 마시던 커피 말고, 향기로운 꽃차 마셔 보기, 늘 일어나는 시간 말고,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질문카드는 시판용이 아니었다.
24년 아트러너 사업 실행자인 ‘플랜포히어팀이 만든 것‘이며, 다른 프로젝트 결과물이고, 인터뷰가 필요할 때 종종 사용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