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공장 롭쓰 robs May 17. 2024

<제6화>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에 예술 한 방울

첫 번째 실전교육

힘들었던 기초교육이 드디어 끝났다.

기초교육은 2일 동안, 12시간에 걸쳐 문화, 예술, 공공성 등 의미 있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동안 꼼짝없이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허리도 아팠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늘 곯아떨어져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트러너 55명이 한데 모여 강의를 듣다 보니, 극 내향인인 나의 에너지는 급속도로 소모된 것 같았다.

이제 손을 움직여 배우고, 익히는 실전교육이 시작된다.

이번부터는 아트러너 55명을 3개로 분반하여, 20명씩 오붓하게 교육을 받게 된다.

A반 [점, 선, 면, 드로잉], B반 [빛과 색, 콜라주], C반 [자연물의 조형] 3가지의 주제로  반을 나눴다. 아트러너 저마다 선호하는 주제를 선택했고, ‘쓰고,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나는 당연히 A반을 선택했다.


실전교육 첫째 날

30분 일찍 교육장소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낯선 공간이지만 편안함이 느껴졌다.

고소한 커피 향이 나는 카페처럼 4명이 마주 보고 앉도록 자리가 준비되었다.

극 내향인인 나는 한 테이블 모임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이 시끌벅적하게 모이기보다, 오붓하게 서너 명 만나는 것이 좋다.

한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차는 더 향긋하고, 먹는 음식은 고유한 맛까지 음미할 수 있으며, 나누는 이야기는 더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A반을 선택한 20명의 아트러너가 모두 모였다.

교육은 24년 아트러너 사업 실행자인 ‘플랜포히어’가 이끌어 나갔다.

“지금까지 자기소개하고 싶은 마음 참느라 힘드셨죠?,

  이제 분반이 되었으니, 자기소개 시간을 갖으려고요.

 우리 자기소개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요.

  나이, 사는 곳, 하는 일 같은 뻔한 이야기 하지 않기입니다.

 ‘요즈음 하는 생각들, 오늘 여기 오는 동안 느낀 감정들, 기초교육을 듣고 깨달은 것, 아트러너에 지원한 이유’ 같은 이야기는 좋아요 “


소소한 규칙의 효과는 뜻밖으로 컸다.

자기소개하면 떠오르는 “제 이름은 000이고, 나이는 00살이고…”하는 백번쯤 들었을법한 표현은 단 한 명도 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경험을 재료로 자기의 느낌을 버무려 맛깔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하는 사람은 그 당시의 상황을 한번 더 떠올리며 즐거워했고, 듣는 사람은 그 상황을 상상하고, 함께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 공감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채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난주에 차 사고가 났어요. 사람은 다치지 않았고, 차만 크게 부서졌죠.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일찍 출발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는데 , 택시비는 2만 원이 나왔고,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도착했네요. ”

“저는 요즘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에요. 아트러너 활동은 예술과 문화 같은 감성적인 영역이잖아요. 그런데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서 자주 지역임장을 가거든요. 그때는 무척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저마다 다르게 느낀 상황과 경험은 그들만의 색이 입혀져 영롱하게 빛났고, 자칫 지루하고,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릴 시간이 빛나는 기억으로 남았다.


“그럼 이제 1년 동안 아트러너 선생님들과 함께 할 플랜포히어를 소개할게요”

플랜포히어는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때보다 빛나는 눈빛과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고 있다고 느껴지자 그제야 가뿐 숨을 쉬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제 것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두근거리는 프로젝트들이었다.

오랫동안 공공기관 전산직으로 근무하며 해 온 프로젝트들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000 시스템 유지보수, 000 시스템 기능개선, 00 홈페이지 구축’ 같은 프로젝트만 지겹도록 해왔는데 말이다.

커피박(찌꺼기)을 모으고, 퇴비로 만들어 텃밭과 정원을 가꾼 후, 허브로 수확한 프로젝트 커피박순환클럽 2021, 남해 상주 마을사람, 이주민, 여행자가 서로 다른 시각으로 한 장소를 공유하며, 새로운 여행 방식을 제안하는 프로젝트 은모래탐구생활, 자신의 사연 있는 물건만 판매해야 하며, 물건을 원하는 사람에게 사연을 설명하고, 그 사연까지 사랑해 줄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해 주는 프로젝트 마지막 사연장:수줍은 사연장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인데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마지막으로 과제가 주어졌다.

나를 둘러싼 삶과 일상에서 예술을 표현하는 재료를 찾아보는  ‘일상에서 예술의 재료 찾아오기’였다.

있는 그대로의 경험이라도 정말 그것이 하나의 경험이라면, 이미 다른 어떤 경험 양식에서 유리된 대상보다 미적 경험의 내재적 본성에 단서를 제공하는데 더 적합하다. 이 단서에 따라 우리는 예술 작품이 어떻게 매일의 향유 대상에서 독특하게 가치 있는 것을 발전시키고 강조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경험으로서의 예술, 존듀이]

내 일상에서 예술의 재료를 찾아본다? 뭐가 있을까?

처음에는 ‘익숙함에서 낯섦 찾기’를 떠올렸다.

집안 구석구석 항상 같은 장소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시도해 보았다

다르게 보기

다음에는 체코의 인형극을 떠올렸다.

오래전에 프라하에서 재밌게 보았던 나무인형이 주인공인 인형극을 집에서 해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거실 소파의 뒷면을 무대로 삼고, 손만 보이게 엎드려서 손을 나무인형 삼아 연기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들의 손 연극

이상하게도 하룻밤이 지나니 두 가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종으로 제출한 과제는 ‘색색의 색연필과 필기구들’이었다.

늘 책상 위에 두고, 틈날 때마다 꺼내어 쓱쓱 그리는 색연필은 가장 나다운 예술의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엽서 크기 종이를 꺼내고, 마음에 드는 색연필을 고른 뒤 쓱싹쓱싹 좋아하는 것들을 그리다 보면, 그리는 행위에 몰입해서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에…

나의 일상에서 찾은 재료
















커피박순환클럽 2021

https://planforhere.com/CCC-club-season2​​

은모래탐구생활

https://planforhere.com/Exploring-Sangju​​

마지막으로 사연장:수줍은 사연장

https://planforhere.com/Flea-market-of-the-story-1​​



이전 05화 <제5화> 투명한 햇빛이 색색의 셀로판지에 물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