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실전교육
실전교육이 시작되자, 아트러너 55명은 3가지 주제로 반을 나눴다.
A반 [점, 선, 면, 드로잉], B반 [빛과 색, 콜라주], C반 [자연물의 조형]이며, 나는 A반을 선택했다. 그리고, 첫 번째 실전교육이 끝나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감각꾸러미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벌써 아트러너 워크숍이 시작된 지 4주째다.
어떤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활동하게 될까?
프로그램의 재료인 감각꾸러미는 뭘까?
뭔가 그리는 활동 일 것 같긴 한데… 점? 선? 뭘 그리게 될까?
시간이 흐를수록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실전교육 둘째 날
‘오늘은 감각꾸러미 정체가 밝혀지겠지?’하는 마음으로 집에서 출발했다.
좋아하는 웹툰 작가의 마지막화를 기다리는 기분이랄까? 가보고 싶던 나라로 여행 가기 전 설레는 기분이랄까? 기대감과 조바심이 차례로 느껴졌다.
처음 한 시간은 지난 시간 과제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아트러너 20명은 자신만의 일상에서 예술의 재료를 찾아왔다. 손바느질로 인형을 만드는 사람은 직접 염색한 원단 조각을, 레고를 활용한 코딩교육을 하는 사람은 레고블록을, 정성껏 식물을 키우는 사람은 식물관찰 일지 속 사진을 찾아왔다.
20명의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쉬는 시간 5분이 주어졌다. 하지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드디어 감각꾸러미가 입장했기 때문이었다.
책상 위에 13개의 서로 다른 필기구들이 펼쳐졌다.
공부보다 필기가 더 열심히였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3~4개의 필기도구를 돌려가며 썼는데 이토록 다채로운 필기구들이라니… 어린 시절 동네 슈퍼마켓이 떠올랐다. 5단 진열장 가득 겹겹이 쌓여있는 과자를 보면서 뭘 먹을까? 행복하게 고민하던 그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주 보던 색연필, 네임펜, 수성사인펜도 있었고, 뚜껑 여는 방법을 모를 만큼 처음 보는 필기구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장의 종이가 주어졌다.
두껍고 하얀 켄트지, a3크기의 갈색 골판지, 크래프트지 등 여러 가지 크기와 두께의 종이를 잔뜩 받았다.
“필기구와 종이를 받으셨으면, 탐색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자유롭게 감각꾸러미를 느껴보세요. “ 플랜포히어가 말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만 그린 것 같다. 몇 년 만에 쥔 연필은 종이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졌고, 손날에 까끌까끌한 종이 감촉이 느껴졌다. 작업하는 내내 신이 났다. 누군가 보고 있으면 그림을 잘 못 그리는 극 내향인이지만, 쑥스러움 마저 의식하지 않고 감각꾸러미 탐색을 이어갔다..
귀여운 아이 얼굴, 티셔츠와 목도리, 토끼 같은 것들을 마음대로 그려 나갔다.
“감각꾸러미 탐색하는 시간 어떠셨나요?
혹시 재료에서 의도적으로 뺀 것이 있는데,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바로 색입니다. 그리는 과정과 행위에 집중하도록 색을 제거했습니다. “
그러고 보니 필기구와 종이 모두 흰색, 검은색, 회색 등 무채색이었다.
“이제 과제를 말씀드릴게요. 감각꾸러미의 재료를 손으로 만지고, 탐구하고, 써 보세요. 그리고 어떻게 예술적 경험을 나눌지 1장으로 정리해 주세요.”
이번 과제는 ‘쓰고, 그리는 삶을 살고 싶은 나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상 위에 재료를 펼쳐놓았다. 이 감각꾸러미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무언가를 그려도 보고, 종이를 오리고, 붙이기도 하면서 혼자 몰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주제를 결정했다.
마지막 실전교육날
먼저 과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주에 20명 모두 발표를 하니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이번에는 제출한 과제 중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것 4개만 발표해 보려고 합니다. “
플랜포히어는 발표할 아트러너 4명의 이름을 불렀다. 세 번째로 내 이름이 불렸다.
나름대로 시간을 들여 신경 쓰고, 고민한 수고를 알아준 것 같아서 기뻤고,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떨렸지만, ‘나만의 보물상자 만들기’ 이야기를 신나게 쏟아냈다.
나만의 보물상자를 만들어 봅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 지금 나를 웃게 만드는 것들을 떠올려 보물상자 안에 모아 보세요 조금 더 행복한 매일을 살아가도로 힘을 줄 거예요.
기초교육과 실전교육이 모두 끝났다.
중간에 ‘신갈오거리 거리축제’에서 아트러너 부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도 참여했다.
이제 현장실습을 마치면 본격적인 아트러너 활동이 시작된다. 혼자 조용히 앉아서 그림작업만 하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기대감이 차례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