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화살표는 한 곳으로 향했다.
쫓기며 사는 동안에는, 지금 내가 인생의 어디쯤 와있는지 알 수 없었다.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가난에게, 미치게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에게, 회사생활을 잘하고 싶은 야망에게,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을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게, 오랫동안 쫓기며 살아왔다. 고단함에 시야가 뿌옇게 가려져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알아채지 못한 채 살아왔다. 지금일까? 싶다가도 확신이 들지 않았고, 결정을 한다 해도 후에 일어날 일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ㅇ오직 두 사람만이 세상에 전부인 시기.
ㅇ조직 속에서 젊음과 열정을 쏟아내야만 하는 시기.
ㅇ고단함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기.
더구나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형편과 사정을 안고 삶을 살아가기에, 같은 시간과 같은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영유아기나 유년기처럼 뚜렷한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인생의 골든타임, 클라이맥스 같은 중요한 시기는 알고자 하는 마음의 끈을 꽉 잡고 있어야만 알게 되는 것이었다.
휴직을 시작하고, 어디에도 매여있지 않은 삶이 시작되자, 주변의 모든 일들이 고요히 흘러갔다. 이만하면 충분히 행복하다는 만족감마저 느껴졌다. 작은 고민거리 하나 없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이었고, 언제든 아들의 필요를 온전히 채워줄 수 있는 내가 있었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이 유지되었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복잡함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고, 여유로움이 가득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마음속에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텅 빈 공간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 공간들이 앞다투어 지금이 바로 한가로운 삶을 시작할 적당한 시기라고 이야기했다.
해맑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30년 동안을 불유쾌한 생각 속에서 살았다. 이미 뇌기능의 일부가 되어 말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일으키는 모든 순간을 지배했다. 중년이 되어서야 가장 소중한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여, 조금은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기본적인 검사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무엇이 가장 힘들어서 이곳에 오셨나요?”
처음이라 낯설고, 두려웠고,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 앉아 무척 어색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30cm의 가까운 거리에서 무슨 말이든 다 들어줄 수 있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오직 나에게만 집중했고, 꼭 필요한 몇 가지의 질문을 꼭 필요한 순간에 했기에 모두 털어놓을 수 있었다. 때론 감정이 복받치고,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지만 10분 정도 차분히 털어놓았다. 3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그것들을 털어놓은 지 오직 10분 후 바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강박사고와 약간의 사회 공포증이라고 했다. 완벽히 극복할 수는 없으나 약물을 사용하면 증상의 완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완화는 나에게 완벽한 탈출구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세상에 길이 오직 하나인 듯 최대한 정년까지 버텨보자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걷던 익숙한 길을 과감히 떠나보내니 새로운 길이 선물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아직 휴직기간 6개월 남았다. 새로운 도전으로 승부내기 적당한 시간이다.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아이디어스(idus)를 알게 되었고, 인물화 작가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그리는 삶을 시작한 설렘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간절함은 브런치 플랫폼에 닿게 했다. 그렇게 때마침 그리고, 쓰는 작가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어린날의 상처들을 보상받듯 남편을 만나 6년 연애 후 결혼을 했지만, 7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병원의 도움을 받은 지 3년, 그렇게 어렵게 아기천사가 찾아왔고, 이제 10살이 되었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서 맴돌 것만 같던 아들은 친구와 밖에서 노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보통의 엄마라면 아이의 빈자리로 공허함을 느꼈겠지만, 그림과 글쓰기에 푹 빠진 요즘이기에 자유시간을 선물해주는 아들이 고마웠다. 때마침 아들은 친구가 더 좋은 나이가 되었다.
가난의 불편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악착같이 목표를 세우고, 맞벌이 10년을 견뎌냈다. 우리 가족 편히 쉴 수 있는 집과 아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릴 때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집을 미리 마련해 놓자는 목표였다. 대기업을 다니는 남편과 주위 사람들은 경제에 밝았기에 부동산 상승기 초반에 형편에 맞는 집 2채를 매수할 수 있었다. 16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상승기에 운이 좋게 편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 60세가 되면 공과금 정도는 낼 수 있는 연금을 받게 된다. 때마침 부동산 상승기를 맞아 기본생활은 할 수 있을 부를 갖게 되었다.
삶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화살표가 있다. 부, 명예, 사랑, 꿈, 건강, 가족 등 삶을 살아가는데 모두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언제나 모든 에너지를 골고루 쏟을 수는 없다. 어느 시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느 시기에는 부를 쌓기 위해, 어느 시기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지금 그 모든 화살표들이 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한가로운 삶을 살아도 되는 적당한 시기라고 말이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는 결말로 이 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다음 목표는 그림책 작가가 되는 것이다. 10살 아들에게 잠들기 전 매일 읽어주는 동화책 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을 되찾았고, 동화 속 그림들은 그 어떤 갤러리 전시 그림보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왔다. 브런치 작가 활동을 시작하고, 내 인생에 찾아온 설렘의 이야기 모두를 글로 풀어내고 나니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동화로 쓰고, 직접 그런 그럼을 넣는 동화책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도대체 이렇게 화가 날 땐 어떻게 해야 해요?”, “놀고만 싶은데, 공부는 도대체 왜 해야 해요?”, “집에만 있고 싶은데, 왜 학교를 가야 해요?”하는 아들의 질문에, 지루하고 딱딱한 어른의 이야기 대신, 아이의 눈높이에서 오랫동안 가슴속 울림이 있는 그림동화로 남겨 진한 삶의 여운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