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시간도 문제없다고!
만 시간의 법칙이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으로, 1993년 미국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이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아웃라이어를 읽었을 때, 특별한 재능이 없더라도 만 시간을 훈련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만 시간의 법칙을 알게 되었다.
머리로는 쉽게 이해되었지만, 끈기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절대 못 찾는 나이기에 “쳇, 누가 모르나, 그 정도 훈련하면 당연히 잘하겠지, 만 시간을 하기가 힘드니까 그렇지”하고 굳이 기분까지 상해가며, 그저 그렇게 숱하게 흘려보내는 명언, 가르침, 교훈, 철학, 조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첫 등교날, 남자아이와 짝꿍이 되었는데, 그 아이는 공부시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오른쪽 손은 공책 주위를 감싸 누구도 그 공책을 못 보게 한 뒤, 왼쪽 손으로는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었다. 선생님의 지적이 있었지만, 그때뿐, 계속해나갔다. 얼마나 재밌으면 혼나가면서, 몇 시간이고 계속하고 있는 걸까? 너무 궁금한 나머지, 그 아이가 잠시 화장실을 가는 사이 그 공책을 살짝 들쳐보는 용기를 냈다. 그 속에는 연필로 그린 그림들이 가득했다. 특히 야구복을 입은 한 소년이 배트를 어깨에 얹고, 씩 웃으며 서있는 그림은 만화가가 그렸다 해도 믿을 만큼 생생하고, 멋진 그림이었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았던 나는 그 아이의 그림실력이 무척 부러웠다. 친해질 무렵 어떻게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지 비결을 물었고, 혼자 그리기도 많이 하지만, 학교 앞 미술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나도 그 미술학원을 다니면 잘 그릴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곧장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 노점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엄마에게 다짜고짜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고, 제발 보내달라고 졸랐다. 한참을 고민하던 엄마는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게 해 줘야지” 하며, 허리에 두르고 있던 닿고 닿은 전대 속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주셨다. 하지만 고작 한 달 후, 나는 엄마에게 그만두겠다고 했다. 황당하고, 어이없어하시던 엄마의 표정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하지만 노점에서 과일장사를 하시는 엄마에게 계속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것은, 지금보다 딱 그만큼의 수고를 더 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다음 달 학원비를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선생님이 기초 연습만 반복해서 시키는 탓에 그림을 잘 그리게 되지도, 수업시간이 재미있지도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은 선 그리기 등의 기초단계를 거쳐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때는 엄마의 고된 수고와 맞바꿀 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끈기 없음의 역사는 계속되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다양한 아르바이트는 길어야 한 달, 두 달 하면 힘들어서 그만두었다. 심지어 분식집의 경우 하루 만에 내일부터는 못 나오겠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어렵게 들어간 안정적인 직장조차 고작 3년을 근무하고 이직과 휴직을 반복했다. 무언가에 만 시간을 쏟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내는 끈기 있는 사람일 것이고,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라 치부했다.
37세가 되던 2016년, 직장생활 10년 차에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외동아들에게 주어진 3년의 휴직기간에서 2년 3개월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괴팍한 상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매일의 야근과 버거운 업무강도,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돈보다 소중한 나의 여유시간을 어떻게 값지게 사용할까 생각하니 또 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그렇게 집 근처 화실을 찾아내 당장 등록한 후 6살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곧장 화실로 달려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특별히 배운 적이 없이 혼자 끄적이니 실력은 늘지 않았고,
항상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매일 화실에서 3시간씩 수업을 받은 후, 그날 밤이 새는 것도 잊은 채 배운 것은 하나라도 잊지 않으려 아들을 재우고 나면, 5시간씩 반복해서 다시 그렸다. 워낙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전문적으로 배우니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고, 스스로가 느낄 정도였다. 그 신나는 경험은 더 열심히 연습하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데생과 소묘로 시작하여, 수채화, 유화까지 다양한 그리기를 배우며, 이제 그만할까 하고 찾아오는 유혹을 떨쳐버리며 꾸준히 다녔다. 휴직기간이 끝나면 다시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또 그토록 배우고 싶은 그림이었기에 저절로 열심히 하게 되었다.
1년 후 회사로 복직하여 더 이상 화실을 다닐 수 없었지만, 그림 그리기와 사랑에 빠진 나는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해서 그림을 그리고, 점심을 김밥으로 간단히 때우고 공식적으로 주어진 소중한 점심시간에 또 그림을 그렸다.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지만, 사랑에 빠진 나는 완전히 괜찮았다. 시시때때로 조금의 자유시간이라도 주어질 때면 언제나 그림을 그렸다. 지갑은 안 들고 올지언정 가방 속에는 언제나 연필과 드로잉북을 넣고 다녔다. 그렇게 6년이 흘러 2021년이 되었다.
지금 나는 아이디어스 idus 핸드메이드 제품 판매 플랫폼에서 “에스더의 스윗 드로잉” 인물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6년 동안 2만 시간 정도 그림을 그렸고, 만 시간의 법칙은 이루어졌다. 머리로만 그렇겠지 막연히 생각했던 만 시간의 법칙을 지금은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다. 무언가를 오래 계속하는 힘이 제로인 내가 만 시간, 2만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쏟아부었더니,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기회가 되어 돌아왔다. 인물화 작가 2개월 차 24건의 그림 제작 의뢰를 받았다, 첫 주문을 받은 그날은 평생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루로 손꼽게 되는 설렘 가득하고, 가슴 두근두근 거리는 날로 기억되었다.
엄마이자 딸,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이자 여자이듯, 오롯이 작가로 살아간다.
그림 그리는 그 시간들을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고, 만 시간을 채우기 위해 미친 듯이 참고, 견디지도 않았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장 즐거워하는 것을 했을 뿐이다. 작가 이전의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이 평범하게만 살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겨 용기 내더라도, 한두 달이면 포기하고 마는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였다. 이런 나를 사랑하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요즘 일어나는 나의 셀레고, 마법 같은 일들을 모두 글로 남기고 싶다. 글 쓰는 시간과 그림 그리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달큼한 시간이다.자연스레 행복 에너지가 넘치는 일상을 살아가니 10살 아들에게도 행복이 전염되어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 보는 게 좋아”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요즘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
엄마는 곧 여자 렘브란트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