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묵은 장롱면허를 되살린 것은 생각지도 않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서였다. 자전거가 차보다 편하다고 생각했던게 왠말 회사에 가자니 대중교통은 1시간, 차는 20분인거다. 자전거로는 1시간 5분이라 이쯤이야 하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하다못해 뛰어가는 사람도 있다! 난 그러고 싶지 않으니 운전연수를 받고 싶을 수 밖에. 10번의 연수가 끝나고 운전을 하고 다닌 게 이제 2년 정도다. 그동안 나는 초보운전으로 산전수전을 겪었다. 첫 퇴근날 유턴하다 나무를 박았고, 아기가 배고프다고 우는 중에 주차장 램프 내려오다가 차가 끼어 지나가는 할머니의 안내로 가까스로 차를 빼 나왔다. 빤짝 거리던 차는 여기저기 움푹 꺼지고 페인트가 까져 새것처럼 수리도 받았다. 아기 데리고 병원 가다가 뭐에 박았는지 타이어가 터져 자동차를 길가에서 견인해 보내고 생전 처음타는 차에 아기 카시트까제 옮겨 운전해야했다. 적고 보니 왜 남편이 그렇게 이론공부 더 하라고 보챘는지 알겠다. 아직도 주차하면 차가 한 쪽으로 쏠려있는 때가 많다. 그러면 언젠가는 운전 공간지각력이 과연 늘 건지 의심도 간다. 계속하다보면 늘겠지? 이 정도면 운전 센스가 좀 부족한가 싶은 스스로에게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상기시키는 두가지 사항이 있다. 개인적으로 네덜란드에서 운전하면서 가장 중요하지만 몸에 안 익는 둘이다.
1. 우선순위
아직도 교통의 흐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한 선생님말이 떠오른다. 내 차 뿐 아니라 모든 차들이 매끄럽게 갈 수 있도록 내 역할을 하라는 것인데 그러려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 우선순위다. 교차로나 로터리에서 누가 먼저 가야할지 알아야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않거나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우선순위의 차를 덥쳐 사고가 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닥에 역삼각형이 상어이빨처럼 여러개 그려져있다면 그 의미는 일단정지, 비우선순위를 뜻한다. 삼각형 바깥의 도로의 운전자가 우선순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우선순위에 아주 진지해서, 자기가 우선순위면 무조건 간다. 사고가 나도 자기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라면 좌우 잘 살피고 갈 텐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살핀답시고 서행하거나 멈추면 선생님은 "교통의 흐름~~~"이라며 혼을 냈다. 사실 갑자기 서행을 해버리면 뒤에서 오던 차가 들이받는 상황이 오는지라 그 말이 맞다. 우선순위를 보고서도 오는 차와 내 차의 간격을 멀리봐 추돌사고가 일어날 뻔 한 때에는 운전자였던 사복입은 경찰이 앞으로 조심하라며 주의를 준 적도 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이 "내가 오른쪽에서 왔으니 우선순위였어"였다. 나중에 생각하니 사실 경찰이 왼쪽에서 오는 경우라 그는 오른쪽 왼쪽도 헷갈렸나 싶지만... 어쨌든 그가 가던 길이 더 큰길이었고 나는 마을 내의 더 느린 길에서 나오는 경우였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무시한 결과가 되었다. 운전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인 건가.
2. 우측 차선
고속도로에서 가장 왼쪽의 1차선이 추월차선이고 2, 3차선도 마찬가지다. 100km 내로 달려야하는 고속도로에서 150km로 달리는 차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런 차들이 지나가는 1,2,3차선에서 규정속도로 달리면 무조건 귀 따갑게 크랙션을 들어야하고 걸리면 벌금도 물어야한다. 규정속도로 가는데도 말이다. 반면 가장 우측 차선은 트럭이나 버스 혹은 빠르게 가고 싶지 않은 운전자가 선택하는 차선이다. 운전면허를 딸 때 우측으로 운행을 안 하면 면허를 못 딴다고 들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커브길로 들어설 때 차선을 잘 못 선택하면 규정속도 대로 안전운전하려다가 되려 옆 운전자에게 핀잔을 듣거나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도 있어 주의해야한다. 처음에는 규정속도의 존재와 이 차선의 룰이 너무 역설적이라 느껴졌다. 하지만 간혹 80km로 운전하는 운전자들 (들리는 말로는 대부분 노인들이란다) 뒤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할 때면 교통의 흐름이라는 말이 또 떠오르는 것이다. 만약 왼쪽 차선이 규정 속도 이하로 너무 느리게 달려 내가 오른쪽에서 추월하면 둘 다 벌금형이다.
3. 그리고...
평평한 네덜란드는 고속도로가 훤칠하고 평평하게 잘 뚤려있다. 도로 상태도 좋고 넓은 편인데 양쪽으로는 보통 소나 양이 풀을 뜯어먹는 초원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간혹 길이 넓어 좌회전을 할 때에 어디로 길을 들어가야하는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앞차 꽁무니를 쫒아가거나, 파란색 바탕에 그려진 하얀색 화살표를 보며 따라가면 된다. 이 화살표가 생각보다 정말 요긴한 이정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나도 반대방향 차선에 들어간 게 세번은 되고 외국에서 온 친구는 고속도로에서 차에서 내려 차선을 확인한 적도 있다 (너무 위험하다!).
얼마전 암스테르담은 시내 규정속도를 낮추었다. 남편은 불평이지만 내 생각에는 괜찮다. 워낙 관광객도 많고 자전거도 많아 오히려 고속도로에서보다 사고 위험이 높다. 특히 요새는 전기자전거가 정말 빠르게 달리는데 나이가 어릴 수록 길을 잘 안 보고 가는지라 아주 조심해야한다. 한 번은 항상 걷던 길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차가 갈 수 있는 길인데 끝까지 도착해보니 자전거 로터리가 나와 정말 깜짝 놀랐었다. 후진해서 다시 제대로된 길을 찾아가야한다. 자전거가 낀 로터리는 더 주의해야한다. 자전거가 오는 지 후방전방측방 모두 보고 조심해서 가야한다.
로터리의 몇 배 격인 터보 로터리도 알아두면 좋다. 네덜란드 전역에 300개쯤 된다는데 로터리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 차선을 선택해야할지 알아야하는게 문제라 초행길에는 많이 헷갈릴 수 있다. 자가로 퇴근하는 첫날 네비가 엉뚱한 길로 나를 이끌어 갑자기 나타난 초대형급 터보 로터리에서 차선을 바꾸다 트럭과 사고가 날 뻔 한 적이 있다. 차문을 열고 한 마디하는 운전자 아줌마에게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초보가 초행길을 조금이라도 쉽게 가는 방법은 미리 구글맵으로 시뮬레이션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주문을 외운다... 우선순위, 우측차선... 안전이 최우선인만큼 신중히 운전하자.
네덜란드에서의 운전 기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