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앨 Dec 13. 2021

푸짐한 네덜란드식 소울푸드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만큼 지친 하루에 힘이 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ㅎㅎ 요새는 날이 너무 빨리, 오후 4시 30분 정도면 어두워지고 비가 많이 와서, 그저 집에 있게 돼.


막상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온도에도 네덜란드의 겨울이 추운 이유는 '물추위' (워터카우드, Waterkoud) 때문이야. 항상 찬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그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뼛속으로 들어온달까. 여름에는 햇빛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누워서 책을 읽던 공원의 잔디밭이 정말 한 달 내내 이끼가 낀 진흙탕이야. 흙투성이 운동화를 닦아 신는 게 다 부질없이 느껴지지. 네덜란드는 사시사철 잔디가 항상 초록색으로 싱싱하거든. 우리나라 시골 풍경인 '금잔디'가 보기 힘들어. 생각해 보니, 항상 축축해서 그런가 싶기도 해...


날도 어둡고 기운도 없는데, 락다운이랍시고 모든   5시면 문을 닫으니, 집에서 쉬는  다인 소박한 생활이지. 그래서  집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닌가 싶네. 북유럽에 멋진 조명과 가구가 발달한 것도 날이  좋아서 인테리어에 신경을 써서 그렇다고 생각해.  하나, 나, 양초 하나 정성 들여 골라 소소하게 사치한달까. 비가 오는 , 예쁜 컵에 만들어 마시는 핫초코가 주는 기쁨을 알아야만 하는   지역의 겨울인  같다.


블랙프라이데이 (미국 추수감사절 후 금요일 상점들이 물건을 많이 할인하는 건데, 네덜란드는 추수감사절은 없어도 이 할인행사는 있어) 기념 할인할 때 이 조명 저 조명 장만해두고, 집 안을 좀 더 밝혀줄 식물도 장만하니 어쩐지 월동준비하는 기분이더라. 그리고 여름에도 '뜨아' 취향인데, 핫초코며 카푸치노도 많이 해마시고 있어.


난 아무래도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서 살 찌우는 거만큼 월동준비에 특효인 건 없나 봐. ㅎㅎ요새는 요리 유튜브를 엄청 보고 있어. 여행도 가기 쉽지 않으니 대신 여행 가서 먹을 만한 특색 있고 어려운 요리에 도전해 보려고. 그러던 차에 네덜란드 요리를 해보게 되었네.


다음 날 까지 먹을 정도로 양이 많았어~
11월-12월에 많이 먹는 로투스 과자 같은 페퍼노튼

네덜란드식 '정직하고' 푸짐한 요리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지만, 그만큼 맛있고, 뜨끈한 국물처럼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마음도 후끈하게 해주는 기분이야. 언제 또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예상외로 성공한 만큼 레시피 공유할게!


네덜란드 겨울 음식 - 흐학트 볼른, 부른콜스탐폿, 훈제 소시지를 곁들인 엘튼 수프, 배추 반찬들 (김치가 있으면 김치로 대신!)


-밑반찬- 가장 쉬운 아이들...


1. 주어 콜 (Zuurkool) - 김치 같은데 더 시고 톡 쏘는 맛의 양배추 피클이야. 독일의 사워크라우트를 같아. 그냥 만들어진 거로 사면 돼. 1유로도 안되더라. 봉지 뜯어서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냄비에 살짝 데워서 따뜻하게 곁들어 먹어.


2. 로드 콜 (Rodekool) - 데친 적양배추를 사과와 함께 졸인 약간 달콤한 반찬이야. 역시 그냥 만들어진 거로 샀어. 만들기도 쉬워. 마찬가지로 포장 뜯어서 데워 먹길 권해. 차갑게 먹어도 되지만, 따뜻하고 약간 끈적여야 제대로거든 ㅎㅎ


-부른콜 스탐폿 (Boerenkool stamppot, 으깬감자에 케일을 넣은 것)-

뭐 딱히 레시피는 없어. 그냥 입맛에 맞게 편하게 만들면 되지.


1. 감자 - 감자 껍질을 벗겨서 물에 끓여 포슬포슬하게 익혀줘. 그리고 부드럽게 으깨줘.

2. 크림 - 으깬 감자에 우유나 생크림을 조금 넣어서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해줘. 더 고소하게 먹고 싶다면 마지막에 버터를 넣어도 좋아~

3. 케일 - 케일이 들어가야지 부른콜이거든. 봉지에 이미 잘게 다져지고 씻긴 케일을 사서 끓는 물에 채소 익히듯이 한번 푹 끓여서 부드럽게 해줘. 이런 습하고 추운 곳에서 케일이 잘 자라는지 싸더라. 케일을 따로 익혀준 다음에 감자 으깬 거에 넣어 골고루 섞어줘.

4. 베이컨 - 좀 바삭바삭한 질감이 들어가면 더 맛있으니까, 베이컨을 익혀서 케일+감자 매쉬에 얹어주면 끝!

건강하지? 채소에 감자라니...

봉지만 뜯으면 되는 고마운 이들...

- 훈제 소시지 (Rookworst, 록 워스트) 가 들어간 엘튼 수프 (Erwetensoep met rookworst, 돼지, 야채 육수에 완두콩을 푹푹 익힌 수프)


1. 엘튼 수프

이건 그냥 캔에 들은 걸로 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네덜란드 음식 중에 하나야. 건더기가 많아서 숟가락을 꽂으면 그대로 서있어야 제대로라고들 해. 녹두 맛도 나고 간이 아주 딱 잘 들어가고, 고기 양파 육수가 아주 깊은 맛을 내지... 이걸 만들 엄두가 안 나서 정육점에서 이미 만들어진 걸 샀더니 딱이더라. 그냥 먹기 전에 데워만 주면 돼.


2. 훈제 소시지

말발굽처럼 생기고 냄새가 좀 특이한 소시지거든. 훈제해서 그런지 좀 콤콤하고 깊은 냄새가 나는데, 정말 사서 먹어본 적은 네덜란드 살이 7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야. 왜 인지 모르게 별로 궁금하지 않더라고. 그런데 맛있더라. 부대찌개에 넣어 먹는 소시지의 고급 버전이랄까? 입안에서 탁 탁 터지는 질감과 맛있게 기름진 소시지가 겨자랑 케첩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 전통대로 엘튼 수프에 넣어 먹어도 맛있어.

유니레버의 우녹스가 이런 소시지의 대명사 (농심의 라면처럼)라고 해서 진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슈퍼마켓 가공육을 산 거 같네. 남편 말로는 어릴 적 먹던 그 맛이라고 하니, 궁금하다면 시도해 봐. 요새는 우녹스 브랜드에서 채식 소시지도 만들더라.


소시지는 물을 뜨겁게 냄비에 데워서 그 안에 넣어 익히는데, 물이 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대. 한 10분 정도 익히면 끝이야.


-흐학트 볼른 (Gehaktballen)-

사실 다른 건 봉지만 뜯어 익히면 되었지만 대망의 네덜란드식 미트볼은 은근 손이 많이 갔어. 네덜란드의 미트볼이 다른 점은 그 안에 들어가는 허브가 조금 다른 점, 그리고 크기가 큰 점 같아. 쨈을 곁들어 먹는 스웨덴의 미트볼이 유명하지만, 야구공처럼 둥글고 큼직한 비주얼의 네덜란드의 미트볼도 참 푸짐하고, 맛있고, 좋아.

레시피의 요지는 크기가 큰 미트볼을 어떻게 촉촉하게 익히냐라서, 여러 가지 유튜브 비디오를 참고했는데 꽤 괜찮은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우선 재료:

미트볼용 향신료 - 20그램. 미트볼 용 이미 여러 가지를 섞은 다시다(?)가 있길래 사봤지. 이 향신료가 맛을 잡기 때문에 네덜란드 식 미트볼을 만들고 싶다면 꼭 있어야 해. 소금, 코리엔더 씨 간 것, 후추, 생강, 넛맥, 메이스 (넛맥의 씨앗 바깥 부분 표피를 말린 것), 카다멈, 고추로 만들어져 있는데, 한국에서 만든다면 다른 건 몰라도 소금, 후추, 넛맥 가루는 꼭 넣길 바래.


미트볼용 향신료랑 캔에 들은 엘튼 수프. 수프 별칭이 스너트야.


다진 소고기, 다진 돼지고기 - 1 대 1로 1킬로 샀어.

양파 - 작은 양파로 5개

마늘 - 5알

계란 - 2개

빵가루 - 40그램은 고기에 넣고, 나머지 40-50 그램은 나중에 미트볼 반죽을 커버하는 용도

올리브오일 - 4 테이블스푼

우유/대체 우유 - 100미리

버터 - 양파 볶고 마늘 볶을 때 쓸 정도


비프 스톡 - 네모난 사각형 1개

전분 - 적당량


방법:

- 오븐을 200도에 예열해두어.

- 양파를 다져 버터에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두고, 같은 방법으로 마늘도 따로 다져 볶아줘.

- 한 김 식을 동안 고기에 향신료, 계란, 우유, 빵가루, 올리브오일 넣고, 볶아 둔 양파랑 마늘을 넣어 잘 섞어줘.

- 원하는 크기로 고기 반죽을 나누어서 (난 하는 김에 아주아주 크게 해봤지. 두 손에 꽉 차는 소프트볼 크기 ㅎㅎ) 공처럼 둥글게 만든 후, 찰싹찰싹 양손으로 번갈아가며 반죽해 꽉 모양을 잡아주어.

- 남은 빵가루에 고기를 굴려서 완자 전체에 빵가루가 코팅되게 해주어. 이게 오븐에서 육즙을 잡아준다네?

- 뜨겁게 예열된 오븐에 미트볼을 넣고, 크기에 따라 굽는 시간을 조절하는데, 난 10분 굽고, 반대도 굴려서 또 10분 구웠어.

- 오븐에서 미트볼을 초벌구이(?) 할 동안 비프 스톡 1개를 물 1 리터에 풀어서 끓여줘. 그리고 전분을 좀 넣어서 농도를 맞추어주고. 팔팔 끓이지는 말고 뭉근한 정도로~

- 20분 후에 오븐에서 미트볼을 꺼내어 끓는 육수에 잠기게 넣어줘. 한 10분쯤 굴려가며 잘 익혀주면 비프 스톡은 약간 더 점성이 생겨 맛있는 소스처럼 되어가고 미트볼도 더 촉촉하고 맛있어져. 한 5분 후에 벌써 미트볼 내부의 온도가 80도가 되더라. 70도 이상이면 다 익은 거 거든.

온 갖 팬 총출동 ㅋ

보통 커다란 미트볼을 만들 때, 프라이팬에 겉을 익힌 다음에 약불로 내려 뚜껑을 덮어서 쪄서 익히더라구. 그러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좀 퍼석퍼석 해지고, 골고루 잘 안 익는데 (겉은 항상 타고), 이렇게 빵가루 입혀서 오븐에 넣은 다음 육수에 넣어 끓이니 같은 시간에 훨씬 더 촉촉하게 되는 것 같아.


- 플래이팅-


엘튼 수프 & 훈제 소시지

데운 수프에 익은 소시지를 넣어줘.

그 땃땃하고 익숙한 맛이 진짜 맘까지 데워주지.

흐학트 볼른 & 부른콜스탐폿

접시에 부른콜 (감자+케일)을 담고 베이컨을 뿌리고, 그 옆에 미트볼을 올리면 끝!

더 촉촉하라고 육수도 고기 위에 좀 뿌려주고, 주어콜, 로드콜도 옆에 곁들여 줘.

정말 먹어본 미트볼 중에 기억에 남을 만하게 맛있었어.

요리를 준비하며 레시피 비디오를 보며 보낸 저녁, 진짜 만들어보면서 재밌었던 저녁, 이렇게 어두운 시간이 훌쩍 즐겁게 지나가네. 이제 또 뭘 만들어 볼까 생각하며 오늘도 어둡고 추운 겨울날을 따뜻하게 보낸다~

정말 맛있는 아만델스타프. 안에 들어있는게 아몬드 반죽이고, 바깥은 바삭바삭한 페스츄리. 오븐에 한 20분 데워 먹으면 더 맛있어!












        

이전 12화 내가 좋아하는 네덜란드 음식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