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네덜란드 음식이 없다고 그랬나 싶을 정도로, 써볼 만한 음식 이야기 보따리는 끝도 없이 나오는 것 같아. 예를 들어 도너츠의 원조라고도 하는 12월 31일에 먹는 튀긴 빵 올리볼른 (Oliebollen), 향신료를 무역했던 나라답게 계피와 넛맥등의 다양한 맛이 살짝 로터스 비스킷과 비슷한 스페큘라스 (Speculaas) 그리고 스페큘라스의 동글동글 귀여운 버젼인 페퍼노튼 (Pepernoten) 등 등, 역사와 자연환경에 더불어, 유대교, 인도네시아, 모로코, 터키, 수리남의 문화를 통해 만들어진 독특한 음식들은 그냥 효율적인 식문화의 일부라기에는 재미있고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많은 네덜란드의 음식들이 미국 이주민들에 의해 우리가 흔히 아는 음식의 원조가 되었어. 뉴욕이 뉴암스테르담이었다는 것 아니? 아마 우리도 모르게 네덜란드의 단순하지만 정성이 가득하고 마음까지 풍족하게 해주는 음식들이 우리 주위에 많은 것 같다.
음식 이야기를 잠깐 마무리하기 전에, 끝내 안 쓰기는 아까운 내가 좋아하는 네덜란드 음식을 알려줄게.
보스볼(Boschebollen)
보스볼른 (Boschebollen)은 우리나라의 뚱와플처럼, 생크림이 까득 들어간 맛에 먹는 “슈크림”의 거대화 버젼이야. 홈런볼 사이즈를 50배 시킨 후 생크림으로 꽉꽉 채우고 그 걸 초콜렛으로 감싸면 되지. 남편이 농담 삼아 말 하길, 아마 생크림을 아주 많이 먹고 싶은 사람이 생크림만 많이 먹으면 좀 그러니까 페이스트리로 감싸 숨겼을 거라고 하는데, 생크림을 좋아하는 나한테는 아주 적절하지.
일반 사이즈, 큰 사이즈가 있는데, 일반 사이즈를 반 나눠 먹어도 심장이 빨리 뛰는 위험한 (?) 음식이야. 브라반트(Brabant) 지역의 덴 보스 (Den Bosche)라는 도시에서 만들어져 보스볼이라 불리는, 그 도시 특산물이야. 여행 겸 덴 보스에 가게 되면 보스볼의 원조격인 Banketbakkerij Jan de Groot에서 보스볼 꼭 사먹어 보길!
크왁 (Kwark)과 카네멜크 (Karnemelk)
유제품 없이 네덜란드 사람들은 살 수 있을 까 싶을 정도로 유제품도 많고 종류도 다양한데 (혹자는 콜라보다 우유가 더 많이 팔린다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네덜란드 유제품은 크왁하고 카네멜크야.
크왁은 치즈 만드는 과정에서 분리되는 단백질인데, 주로 버린데. 그런데 요새 분위기에서 단백질=최우선 영양소 아니겠니? 워낙 버리는 제품이라 가격도 엄청 싸. 50센트면 500ml를 살 수 도 있어. 가격을 떠나서 단백질 많지, 요거트 같지, 꾸덕 하지 어디 하나 모자른 게 없어서 쌩으로 간식으로 먹기도 좋고, 꿀이나 과일을 곁들어 디저트로 먹거나, 그릭요거트를 대신해 요거트 소스를 만들기도 좋아.
카네멜크는 영어로는 버터밀크야. 이름에서 풍기는 고소하고 풍부한 이미지랑은 다르게, 시큼한 발효 우유야. 일반 유제품에 비해 소화가 잘 되고 덜 달아서 점심 식사 때 샌드위치랑 곁들이기 좋은 것 같아.
비터볼른 (Bitterballen) / 크로켓 (Kroket)
오늘도 비터볼른이 땡긴다. 코로나로 레스토랑들이 영업을 안 하고 친구들하고 맥주 한 잔 할 일도 없어져서 못 먹은지가 오래된 것 같아. 비터볼른은 자투리 고기를 채소랑 밀가루랑 물이랑 섞어 반죽을 만든 다음 빵가루를 입혀 튀긴 건데, 주로 맥주 안주로 많이 먹어. 겨자를 찍어 먹으면 그만이지. 바깥은 식어도 안은 엄청 뜨거워서 혀도 종종 데이지만, 바삭바삭할 때 터뜨려 먹는 맛이 그만이지.
회사 끝나고 동료들이랑 밥 먹기 전에 맥주 한 잔 하면서 비터볼른과 다른 안주가 결국 밥이 되는 경우가 많았었어.
그리고 동그란 모양이 아니고 길쭉하면 이름이 달라져. 바로 크로켓이지! 우리나라의 고로께랑은 다르게, 이 크로켓을 식빵에 찍어 눌러 스프레드처럼 같이 먹어. 겨자를 곁들이면 더 맛있지.
네덜란드에 성인이 되어 다시 왔을 때, 호텔에서 네덜란드 음식을 시켰더니 크로켓 빵이 나왔었어. 그 처음 먹었을 때의 텁텁하고, 느끼하고, 엽기적인 맛이 좋은 말로, "인상깊었었어". 안에 내용물도 약간 초록색에 걸쭉해서 비주얼과 식감이 좀 그랬거든?
여러 레스토랑이나 정육점에서 고급화를 시켜서 소고기가 큰 것도 많고 고급재료를 쓰는 고메 비터볼른이나 크로켓도 많아. 그 때는 왜 그게 맛이 없었을까 싶을 정도로, 요새는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먹고 싶어. 하지만 겨자랑 피클은 필수다.
여담으로 비터볼른과 크로켓을 말할 때 빼먹지 않을 음식은 프리칸델 (Frikandel)이야. 프리칸델은 정크푸드 소세지 같은데 어느 안주를 시키든 항상 끼는 스낵 중의 스낵이야. 하지만,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 싶지 않은 음식 설문지를 돌리면 1위를 할지도 몰라. 대부분 닭고기 남은 부위, 돼지 남은 부위, 심지어 말의 남은 부위까지 넣고 물, 빵가루, 향신료를 넣어 삶은 소세지야. 1954년에 어느 정육점 직원에 의해 만들어진게 이제는 국민스낵이 된 거네.
엘튼수프(Erwtensoep)
또다른 초록색을 띄는 걸쭉한 음식은 엘튼수프지. 역시 비터볼른이나 크로케트처럼 좀 드러운 (?) 인상에 먹는 게 꺼려졌었지만 이만큼 맛있는 네덜란드 음식도 없는 것 같아. 완두콩을 으깨고 베이컨과 훈제햄/소세지를 넣어 푹 끓인 수프야. 숟가락을 꽂으면 그대로 꽂혀 있어야 잘 된 수프인 듯 아주 아주 걸쭉한 수프지.
뼈가 시릴 정도로 습하고 추운 날 먹는, 따듯하고 푸짐한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이라고 생각해.
더치 팬케익/파는쿠큰 (Pannenkoeken)
암스테르담 본사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회사 친구가 새로온 사람들 모아서 회사의 전통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우리를 회사가 시작된 지역에 데려가 투어를 시켜준 적이 있거든.
그 때 점심으로 펜케익을 먹으면서 네덜란드 식 펜케익은 단짠의 찐 조화라는 걸 알게 되었어.
치즈를 뿌려 고소한 데 그 위에 설탕 조린 시럽을 마구마구 뿌려서 먹는 거야. 좀 생소했지만, 단 것 과 짠 것의 조화야 두 말할 필요 없지.(몰랐으면 좋았을지도...)
보통 팬케잌하우스는 외곽에 그럴싸한 옛날 스타일 집의 모습을 갖춘 곳이 많아. 가족들이 어디 소풍 갔다가 다 같이 가면 즐거운 곳인 것 같아. 메뉴도 정말 다양해서, 아예 단 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건강식 쪽으로 가거나 선택을 너에게 달린 것!
이런 팬케익이 아니라면, 보통 굉장히 얇은 팬케익에 (크레페 보다는 찰 진 식감) 딸기나 설탕시럽을 뿌려서 돌돌 만 후 썰어 먹어.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미국식 팬케익에 비하면 참 달라.
이렇게 칼로리가 높게 튀기고, 설탕에 버터를 넣고, 치즈와 빵과 육류가 주식인 네덜란드라고 해도, 내가 소개한 대부분은 별식이나 특식이야.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주 건강한 편인 것 같아. 비만인 사람 보기가 좀 힘들 정도야. 딱 먹을 만큼 먹고, 저녁이 아니면 아주 간단하게 먹고, 자전거를 매일 타고 다녀서 그런지도 몰라. 공원에 가도 달리기하고 HIIT트레이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건강에 대한 관심은 아주 많더라.
모쪼록 네덜란드에서 계단도 많이 오르고, 자전거도 많이 타고,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면서 건강하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