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누리 이용자의 가족 / 특수교사
1.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현재 대전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15년 전 대학생 시절, 자원봉사자와 사회복지사로 권송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누리의 이용자 성 00의 언니예요.
2. 권송미는 어떤 사람인가요?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처음 사회복지사 권송미 선생님을 만났을 때 이렇게나 열정이 많은 사람을 처음 보았어요. 그룹 홈 (장애인 공동 생활 가정)의 이용자들과 함께 다방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저 열정은 어디서 나올까 궁금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장애를 가진 동생이 성년이 되는 시기에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을 하시고, 저도 취업을 해야 해서, 동생을 시설로 보내는 것에 대하여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동생은 이미 기숙사가 있는 특수학교에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시설의 적응 문제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다만 제가 특수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동생의 삶에 관한 고민이 남달랐고, 동생의 장애가 중증이었기 때문에 혹시 시설에서 받아 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부모님과 동생이 살아갈 곳을 찾아 전국의 시설들을 다녀 보았지만, 가본 시설마다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어요. 시설에서 하는 일상생활과 여가활동이 TV밖에 없거나, 시설의 프로그램이나 활동 등에 대하여서 이용자들에게 물었을 때,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시설에서 소개하는 내용에서도 특별한 외부 활동이 없고, 개인별 활동이나 선택권이 주어지는 활동을 찾기 어려웠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시설도 대기 인원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더구나 제 동생이 여자였기 때문에 남성 중심 시설이 많아서 입소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웠어요.
그때 생각난 분이 권송미 선생님이었어요. 이전에 자원봉사로 알게 되었고, 자원봉사로 장애인을 대하는 것과 선생님의 열정이 담뿍 담긴 프로그램 등을 함께 해보았기 때문에 선생님과 함께하는 동생을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어요. 사실 다른 것보다 선생님에 관한 신뢰가 가장 컸어요.
시설 이용자의 가족으로 만나게 된 후, 중증장애인인 동생이 새로운 환경과 다른 이용자들 과의 관계에 대하여서 고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소통해 주셨던 점, 그리고 중증장애인도 함께 어울려 살도록 세심히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권송미 선생님과 저는 친자매와 같이 친밀해졌어요. 누구보다 우리 가족과 동생, 그리고 저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기도 하지만, 특수교육 전공자인 저보다 더 발달장애에 대하여서 깊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분이어서 직업적으로 경험하는 사례에 관한 고민도 나누고, 또 같은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서 장애인 가족의 고민을 나누면서 이제는 이런저런 고민들과 함께 그것에 관한 해결책을 함께 찾아볼 수 있는 분으로 저나 제 동생, 제 가족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분입니다.
3. 사랑누리는 어떤 곳인가요? 사랑누리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곳.
자기만의 색을 가졌지만, 그 색을 굳이 섞어서 검정을 만들지 않고, 그 색 그대로 무지개를 만드는 곳. 이용자가 자기 그대로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곳.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 저는 사랑누리가 그런 곳이고, 그것이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대학생이 되어 봉사자로 그룹 홈(장애인 공동 생활 가정)에서 권송미 선생님을 만났어요. 제가 다녀본 대부분의 그룹홈이 장애 정도가 가벼운 장애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장애가 심한 제 동생이 잘 적응할지, 이용자들 간에 문제가 많지 않을까 걱정되었고, 또 동생 스스로 만족해할지, 잘 참여할지에 대하여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처음 적응하던 때를 생각해 보니, 소수의 인원이 생활하는 곳이어서 오히려 적응이 어렵지 않았고, 선생님의 적극적인 중재로 서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지역의 문화생활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점도 있었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어요. 처음에는 사랑누리 선생님들이 뭐든 해볼 것을 권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집에서 더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동생은 장애가 심하기 때문에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계속 도전해 본다고 하시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생겨나니 걱정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냥 안전하게만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일을 내 동생도 할 수 있고, 저도 조금씩 동생의 의사를 묻고 경청할 수 있었어요. 어느새 내가 내 동생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게 되었어요. 위험할까 강하게 제지했던 일들도 이젠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도전은 연극 관람이었어요. 영화는 몇 번 보러 가본 적 있지만 번번이 실패였어요. 한두 번의 실패에 동생이랑은 집에서만 영화를 보는데 집중도 길지 않고 활동을 더 좋아하니 영화 관람은 점차 하지 않는 일이 되었어요. 그런데 영화 관람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연극 관람은 중증의 장애인인 동생에게는 상상 속의 일이었어요. 연극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적막한 가운데 동생의 소음으로 다른 사람을 어렵게 하거나 갑자기 일어나서 공연에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 도전하지 못했는데, 권송미 선생님이 사랑누리 식구들 연극 보러 간다고 하셨어요.
“제 동생은 아무래도 연극 관람이 어렵겠지요? 그럼 따로 제가 데리고 있을까요? 누가 돌봐주시는 선생님이 계실까요?”
“동생이 연극 엄청 좋아하는데, 못 믿겠으면 함께 가볼래요?”
연극을 같이 보자고 하는 데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혹여 사랑누리 다른 친구들에게도 피해를 줘서 연극을 못 보게 할까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그날 연극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동생은 공연예절도 잘 지키고, 무엇보다 공연을 즐기고 있었어요. 사람들과 함께 웃고 집중해서 즐겁게 보는 동생을 통해 저는 또 한 번 감동했어요. 반복적 지도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통해 설명해 주셨고, 지속적인 모의훈련을 통해서 사회적 규칙을 지킬 수 있게 발전했어요. 그래서 사회적 활동범위가 넓어졌어요. 저도 동생과 더 많은 사회적 활동에 도전하게 되었고, 최근엔 둘이서 스케이트를 타러 아이스링크에도 갔어요. 아이스링크장에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모든 장소에는 그 장소에 맞는 규칙을 알게 되고, 사회성도 발전하여,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규칙을 지켜서 생활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 같았어요.
사랑누리가 어떤 곳이라는 질문에 사랑누리의 좋은 점이 계속 떠오르네요. 사랑누리는 모든 활동에 대하여서 사진을 공유해 주는 것이 좋았어요. 단순히 사진으로 동생이 무얼 했구나를 아는 것도 좋았지만, 동생과 전화 통화 하거나 집에서 이야기할 때
“잘 지냈어?”라고 이야기하면 반응을 볼 수 없지만
“지난주에 여행 간 것은 재밌었어? ” 또는 “이 사진, 이거 기억나? 어제 시래기 등뼈찜 먹었던데, 맛있었어?” 이렇게 물으면 바로 “응!!”하고 동생이 대답하고, 또 사진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면, 그 사진을 보고 반응을 통해 참여 후 어떤 마음인지 알게 되어, 우리는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집에서도 SNS를 통해 평소 동생이 좋아하는 수영을 갔던 사진들을 다시 보며 동생과 사랑누리에서 활동한 것에 대하여 대화할 수 있고, 공유 사진 덕분에 동생이 좋았던 것 또는 아쉬웠던 것을 표정과 반응으로 알 수 있어요.
사랑누리의 기념일을 맞아 스튜디오에서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과 동생이 받아온 상장은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식탁 옆 벽면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어요. 그 상장을 통해서 동생은 자존감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고, 가족들에게는 상장 덕분에 동생을 더욱 지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중증의 장애를 가진 딸이 처음 받아온 상장이 아버지에게는 매우 자랑스러웠나봐요. 동생도 그 상을 받아 온 날 스스로 가방에서 꺼내서 보여줄 정도로 기뻐했고, 부모님도 상장을 식탁 위 걸어두시고 지금까지도 동생과 식사할 때마다 다시 칭찬하시는 계기가 되었어요. 동생과 함께 가족들이 밥 먹을 때마다 식탁 위 상장을 보면서 상 받는 사람은 잘해야 한다고 이렇게 상장받는 너는 대단하다고 이야기해요. 말쑥한 원피스 정장 차림의 사진이 벽에 걸린 후, 집에 온 손님 차 대접은 자연스럽게 동생이 예쁘게 웃고 있는 사진 곁에서 해요. 부모님께서 예쁜 둘째 딸이라고 소개하기 위해서예요.
최근에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전주 가서 한복 입은 것이었어요. 선생님과 일대일로 단출하게 다녀온 개별지원 여행이어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의 동생을 볼 수 있었고, 예쁜 사진 속 동생은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음에 부모님이 기뻐하셨어요. 여럿이 가는 여행은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겠지만, 동생에게 맞추어진 개별지원이기 때문에 좋은 점이 많았던 프로그램이었어요.
저는 사랑누리가 무지개 색이라고 생각해요. 시설 생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과 요구를 한 명씩 맞춰가려고 노력하시고 그걸 위해서 묻고 설명하고 경청하는 선생님들의 수고를 보면서, 사랑누리는 모든 색을 섞어 버려 검은색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각각의 색을 무지개로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4. 앞으로 사랑누리는 어떤 기관으로 성장 또는 발전해야 할까요? 또는 사랑누리의 미래는?
부모님은 장애인 현장을 모르시기에 저에게 몇 번을 다시 물으셨어요 “굳이 대전까지 보내야 하는가? 경기도에는 마땅한 시설이 없어? 그렇게까지 멀리 가야 해?” 저는 대학생활 4년간 사랑누리 운영과 원장님의 마인드와 활동을 자원봉사자로 지켜봐 왔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어요. 처음 전국의 시설을 찾아다니던 당시 제가 특수교육을 전공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원봉사로 다양한 장애인복지시설을 보아왔기 때문에 더 깐깐하게 선택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 제가 이런 곳을 보았는데, 동생이 가면 좋겠다라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도 실제 운영도 너의 말처럼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이렇게 심한 장애인인데도 받아 줄까? 하고 고민하셨어요.
처음 자원봉사 때부터 지금까지의 인연이 감사해요. 둘만의 관계도 좋았지만, 제 동생과 연결되어서 그 관계가 가볍지 않게 이어져서 감사하고 좋아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하시는지를 알기 때문에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을 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개인 특성에 맞는 활동이 많으면 좋겠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용자가 쾌적하게 살기 위해 공간이 좀 더 넓어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면 안 되나요?
사랑누리를 통해서 우리 가족은 자기의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되었어요. 동생에 관한 걱정이 줄어든 것만이 아니고, 동생도 동생의 삶을 살고, 아빠도 아빠의 삶을 지키고, 엄마도 나도 각자의 직업과 일을 가지고 살다가 다 함께 만나는 주말이면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너무 좋아요.
제가 특수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동생이 다른 곳에 있었으면 신경이 많이 쓰이고 맘이 아플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가족으로서 시설에 보낸 것에 대하여 미안할 수 있고,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서 가슴 아플 수도 있는데, 사랑누리에서는 그곳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들 때문에 배우는 것도 많아 걱정도 덜었고, 제가 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중중의 장애를 가진 동생을 가족으로 사랑하고 살며, 지금도, 이런저런 걱정을 가지고 있지만, 성인기에 접어드는 동생이 지낼 만한 시설을 둘러보러 갔을 때는 차라리 내가 직장을 갖지 않고 돌보면 좋겠다 했어요. 차마 못 보내겠더라고요. 그곳에서 이용자의 눈빛이 생기를 볼 수 없고 무기력했어요. 방문해서 그분들께 무얼 하며 지내는지에 대하여 물어도 표현도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제가 드리는 여러 질문을 귀찮아하시던 모습도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하물며 그런 곳도 빈자리가 없더라고요.
최근에는 탈시설에 대하여서도 생각이 많아요. 탈시설정책을 주장하는 장애인의 가족인과 정치인을 보면, 그분이 그분의 가족이 좋은 시설을 만나지 못하는 것부터, 시설에 관한 것도 자기가 경험한 것만 가지고 탈시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장애인 형제자매의 오픈 채팅방에 나타난 의견을 보면, 경증장애인 가족과 중증장애인 가족의 생각이 달랐어요. 각자의 입장만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송미 선생님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만난 당시, 선생님께서 중증의 장애인도 지역사회 안에서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센터를 만들겠다. 장애가 심해도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지원하는 기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너무 기뻤고,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어 이용자의 가족으로서 만족해요.
사랑누리에 관한 저의 당부를 꼭 기억해 주세요.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을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지켜주세요. 중증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어주시고, 중증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며 생활할 수 있고, 비장애인들과도 어울려 살 수 있도록 교육적 신념을 지속해 주시면 좋겠어요.
5. 덕담 한마디
동생이 다쳤다고 연락이 온 날, 걱정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동생도 무엇을 하기 때문에, 도전하기 때문에 실패 과정에서 다치는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 잘 다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안 했던 삶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도전하다 다친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다친 동생에 대하여 선생님과 기관에 관한 신뢰가 있어서 무얼 하다 다친 것이 궁금하고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방법을 함께 찾아가죠. 마음은 아프지만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사랑누리의 모든 이용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랑누리가 탄탄한 신뢰를 얻는 그런 곳이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권송미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 모두 건강을 잘 챙겨주세요”라고 당부의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용자 가족들이 오래도록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건강하게 항상 있어 주세요. 그리고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지지치 말고. 아자 아자 사랑누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