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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 Oct 07. 2022

9. 장애인복지시설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3가지 답변

- 이웃으로 살고 싶은 장애인복지시설의 주택가 정착 이야기 ②

 공청회 (會)
- 행정 기관에서 일의 관련자에게 의견을 들어 보는 공개적인 모임.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사회 일반에 영향력이 큰 안건을 심의하기 전에,  행정 기관이 학자ㆍ경험자 또는 이해관계자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듣는 공개회의.




주무관님 그리고 통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민 중 ‘찬성하지는 않지만 반대도 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씩 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웃들을 모시고, 그분들의 의견을 듣고 그분들께 답변할 수 있는 주민공청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웃으로 함께하고 싶은 우리의 이야기’라는 문구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우리 집 담벼락에 포스터를 붙이고 이웃들의 반응을 살폈다.

내가 반대하는 이웃들을 설득해가며 사랑누리 식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남편은 가히 ‘맥가이버’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타일 하시는 분의 보조 일꾼이었다가 다음 날은 시멘트 포대를 나르는 짐꾼이 되어 있고, 그다음 날은 샌드위치 패널을 자르더니 다시 다음 날에는 방문 손잡이를 설치하는 시공업자가 되어 있었다. 남편의 노력과 발품, 손품 덕에 거북이걸음처럼 느릿하긴 해도 리모델링이 하나씩 완성되어갔다. 처음에는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던, 거미줄과 곰팡이 가득했던 집은 어느새 따뜻하고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어 있었다.     

주민공청회가 열리는 날 저녁. 호기심 때문인지 기웃기웃하는 사람은 있어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대문을 넘어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공청회 시작 시각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그때였다.

딩동!

벨이 울리고 첫 손님이 오셨다. 역시 통장 아주머니였다. 좋아할지 모르겠다면서 방앗간에서 직접 짜 오셨다는 들기름 한 병을 건네셨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왈칵 눈물이 났다.

통장님이 오시고 얼마지 않아 한 명, 두 명 이웃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손에 소소한 선물이 들려 있었다. 행사에서 받은 수건이 많다면서 챙겨 오신 분, 명절 선물 세트를 많이 받았다면서 가져오신 분, 텃밭에서 따오셨다면서 애호박 두 개와 상추 한 다발을 가져오신 분…….

“아휴. 그냥 오시지 이런 걸 다 주셔요? 고맙습니다.”

“그동안 우리 집 올 때 매번 간식이랑 뭐랑 가져왔잖여. 나도 그냥 올 수가 있어야지.”

“어매~ 남의 집에 그냥 오면 쓰것나? 나이 먹은 사람은 그람 안 되제.”

“아이고, 아지매도 왔능교? 내가 오자 할 때는 생각만 해본다 카더만, 잘 왔씸더.”

뾰로통한 얼굴로 마지못해 앉는 분도 있었지만, 사랑누리에 호의적인 분들이 그런 분들의 팔을 잡아끌며 거실로 이끌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민공청회를 시작했다. 사랑누리를 소개하고, 우리와 함께 사는 식구들을 소개했다. 혹시 주민들이 식구들에게 험한 말을 할까 긴장되기도 했지만, 호의적인 분들이 더 많아 보여서 안심했다.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한 명 한 명 나름 용기를 내어 자기소개했다. 손뼉을 쳐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이후 주민들의 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주민들의 걱정과 불만은 3가지로 요약됐다.

첫째, 장애인이 옆에 살면 집값이 내려간다.

둘째, 장애인이 옆에 살면 시끄럽다.

셋째, 애들도 많은 동네인데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이미 주민들과 만나고 통장님과 대화하면서 알고 있었지만, 세 번째 지적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인 집값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 같아 사전에 준비한 자료들을 보여드렸다. 대전에는 우리와 같은 유형의 단기 거주 시설이 열 곳 있었는데, 그곳들의 3년 치 집값 동향을 그린 그래프였다. 단 한 곳도 집값이 하락한 곳은 없었다. 더욱이 대형시설도 아니고 소규모 시설인 경우, 옆집이 오르면 함께 올랐고, 옆집의 집값 상승이 멈추면 함께 멈추면서 그 지역의 시세를 그대로 따라갔다. 그래프를 본 이웃들은 그제야 한결 편해진 모습이었다.


두 번째, 소음 문제. 이 문제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번 들었던 터였다. 그래서 이미 방음 공사를 했고, 이 부분을 잘 설명했다. 일반적인 가정의 새시는 1중인데 우리는 모든 창문을 2중으로 설치했다. 특히 기존 새시가 있는 곳은 그대로 두고 안쪽에 다시 설치하여 총 3중창을 설치한 곳도 많음을 사진으로 보여드렸다. 그리고 새시에 사용된 유리는 ‘페어 유리’라는, 유리와 유리 사이에 공기층을 두고 압착하여 창문 하나당 사실상 2매의 유리가 들어가는 것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2중창이라면 실제로는 4매의 유리와 2번의 공기층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물을 보여드렸고, 단음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실제로 그 자리에서 창문을 다 닫았다. 그랬더니 정말로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고, 이를 본 주민분들은 ‘세상 좋아져서 기술도 좋아졌나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세 번째, 교육 문제가 남았다. 이 질문은 답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이야기할까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주민분들의 반응은 이미 우호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 변화를 두 눈으로 보았기에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던 학생이 사춘기를 맞아 호되게 방황했으나 지금은 사회복지사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나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옆길로 새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 방황 속에서도 바른길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학생시절부터 하였던 자원봉사활동 덕분임을 강조했다. 어려운 이웃이 옆에 사는 것은 교육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라고, 그 어려운 사람과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바르고 반듯하게 자라날 수 있으니 오히려 교육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우리에게 요구했다. 간판 달지 말라고, 시끄럽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분들께 우리는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렸고, 간판은 달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원래 우리가 바라는 바가 ‘보통의 삶’이니 드러내는 것은 우리도 싫었고, 이전에 살던 아파트의 공동생활가정에서도 간판 없이도 3년간 잘 지냈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까짓 간판쯤이야. 그리고 소음 문제는 시끄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피해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 약속했다.

돌아가시는 주민분들께 작은 선물을 드렸더니 모두 한사코 손사래를 치셨다. 우리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못 오신 분들께도 우리 이야기 잘 전해 달라는 의미에서 뇌물(?)로 드리는 것이라며 챙겨드렸다.     

공청회 이후, 구청에서도 더는 주민들의 민원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주민들과 잘 지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자원봉사자가 많이 온 날이면 부침개를 부쳐 동네잔치를 했고, 김밥을 만들어 우리 식구들과 함께 정을 나눴다. 장애인의 날이면 인식 개선 목적으로 떡을 해서 돌리며 ‘장애인의 날’을 알렸고, 눈이 오는 날이면 내 집 앞이 아니더라도 골목 어귀까지 열심히 쓸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이제 이웃분들은 매일 마주치는 골목에서 미소 띤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신다.

처음 주민들의 반대로 묶여 있던 6개월은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렇게 그분들과 소통하며 이웃으로 잘 지낼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그 6개월은 오히려 약이 되어 준,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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