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미 Oct 06. 2022

8. 우리 동네에 장애인시설은 안돼요

- 이웃으로 살고 싶은 장애인복지시설의 주택가 정착 이야기 ①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현상

- 공공의 이익은 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반대하는 행동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 (Not In My Backyard)’는 영어의 약자. 현대인의 자기중심적 공공성 약화로 인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는 시설 또는 공공기관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동




사회복지를 시작한 지 정확히 9년째 되는 해였다. 3년 만에 다시 시작이라고 외치고 보니 꿈만 꾸고 있는 내가 너무 현실감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내게는 단기보호센터를 설립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약 80개의 매물을 알아보고, 35개의 주택을 실제로 살펴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부부는 70평 대지에 60평짜리 주택을 매입하게 되었다. 기쁨과 설렘보다 걱정이 되었다. 매입한 그날 이후, 잠이 안 왔다. 경제적으로 가진 것도 없는데 꿈 하나 믿고 덜컥 계약을 해버렸으니 이제 남은 것은 산더미 같은 일과 그보다 더 큰 빚더미일 테지. 진부하긴 해도 ‘두렵고 떨린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새벽마다 눈이 절로 떠져 교회로 달려가 기도하기도 했다.

'하나님,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릅니다. 갈길을 몰라 요 이런 나를 붙잡아 주세요. 길을 열어주세요.'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기도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 교회의 장로님이 나를 부르셨다. 팅팅 부은 눈으로 훌쩍이는 나를 보고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안부를 물으셨다. 함께 생활하는 발달장애인을 위해 더 넓은 집을 구매했는데, 복지시설로 사용하려면 매입한 주택을 장애인을 위한 노유자 시설로 바꿔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무리해서 매입하느라 현재 가진 것도 없어서 막막한 마음이라 기도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듣고 있던 장로님은 “내가 건축사인데 진즉 나에게 상담을 받지 그랬냐”라고 하셨다. 나는 그분의 직업이 건축사라는 걸 몰랐고, 자주 마주하며 살갑게 이야기하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이렇게 선뜻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니 ‘내 기도가 응답을 받았구나’ 하고 생각하고 믿었다.


그분의 도움으로 도면을 그리고, 관련 법령에 따라 리모델링 구역이 확정됐다.

한여름이 다가왔다. 목표는 올해 안에 개원!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첫 삽을 떴다. 한낮의 태양이 지글지글한 여름 한가운데, 양쪽 화장실 위 천고를 높이기 위해 다락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좁은 다락에서 철거를 위한 기계가 돌아갔고, 남편과 나는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인부 쓸 돈 한 푼도 아까운 시절이었으니 ‘해낼 수 있다’라고 믿는 수밖에……. 눈대중과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 중 해볼 만해 보이는 것들을 주워 모아 건축도 모르고 리모델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주먹구구로 했다. 꼭 전문 기술자가 와야 하는 일은 알음알음 한 다리 건너 소개받아 부탁했고, 한 가지 공사도 발품 팔아 서너 번 견적을 받아 가며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됐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공정이 뒤바뀌어서 공사하시는 분들께 타박도 많이 받았지만, 젊은 부부가 장애인들과 함께 살 곳을 마련하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모습에 응원과 격려가 이어졌다.


그렇게 공사를 진행하던 어느 날, 경사로가 완성되고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을 설치하던 날이었다. 함께 사는, 신체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생각하는 나이가 어린 지적장애를 가진 성경 씨가 새로운 집을 낯설어할까 봐 주변과 집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공사 중인 집에 갔다.

공사가 한창인 집 대문 앞에 서너 명의 이웃 주민들이 모여서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길모퉁이를 돌아 들어오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대뜸 욕을 하기 시작했다.

“미친년이 머리에 꽃 달고 돌아다니면 동네가 어떻게 되겠어?”

순간, 나는 성경 씨의 귀를 양손으로 막았다. 생각하는 나이가 세 살이라, 엄마, 아빠, 까까 수준의 대화를 하는 성경 씨지만, 표현하는 언어보다 받아들이는 언어가 더 자라 있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말이라는 것쯤은 알 것이 분명했다. 저렇게 비하하는 말과 눈총에 성경 씨가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등 뒤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젊은 부부가 이사 오는 줄 알았더니 경사로를 설치해서 ‘집에 어르신을 모시나 보다’ 했다고, 그런데 세상에나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을 설치하는 걸 보고 아차 싶었다고, 장애인이 이사 오는 것만으로도 기가 찰 노릇인데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니, 다 같이 이대로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웅성거림이었다.


그분들이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 봉사를 다녔고 멀리 있는 시설이 아닌 지역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동생활가정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이러한 반대를 겪어 보지 못했다.  사회복지사로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곳도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이었다. 그곳에서도 반대를 겪어보지 못했다.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하기 전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는 사랑누리 공동생활가정도 도마동의 아파트에서 운영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를 격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의 반대가 마음을 많이 힘들게 했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장애인이 이사 오는 것이 싫고 무섭고 시위까지 해야 하는 일일까?" 나는 함께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 식구들에게 조금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 이웃들의 반대는 예상 못 한 것이었다. 이후로도 이웃들의 구청 민원과 시위는 계속되었다.


장애인복지시설담당 주무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녕하셨어요? 주무관님, 어쩐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잘 지냈어요. 그런데…… 이웃들 반대가 심하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죠? 힘든 거 알아요. 그런데 사랑누리가 뿌리내리고 잘 정착하려면 이웃과 척지고 지내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잘 설득해서 원만하게 해결하는 게 어떻겠어요?”

이미 여러 차례 민원 전화가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구청장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점거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곤욕이었으랴. 만약, 그 사람들의 민원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으면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들어 따지려고 했는데, 내 짧은 생각이 무색하게도 주무관님은 이웃으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해주신 것이다. 그제야 내가 추구하는 ‘보통의 삶’은 지역에서 이웃과 함께 둘레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격고 있는 주민들의 반대는 어떻게든 넘어가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해 나가야 함을 깨달았다.


우리 집을 둘러싼 집이 당시에 서른두 가구였다. 숫자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집마다 찾아다니며 설득했기 때문이다. 매일 부침개며 떡이며 간단한 생필품들을 들고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면서 이웃으로 이사 올 예정이라고 인사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통장님이 오셨다.

냉커피가 담긴 유리잔에 물기가 송골송골 맺히고, 어색한 침묵이 잠시 스쳤다.

“통장이에요. 갑자기 와서 당황했죠?”

“안녕하세요? 저희 때문에 동네가 시끌벅적하죠?”

“음,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나한테도 시위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구청 찾아가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네.” 나는 주민의 반대의 이야기를 전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머뭇머뭇 대답하였다. 그런데 통장님은 예상치 않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 집에도 장애인이 있어요. 내 친정 동생인데…… 그 애는 혼자 걷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어요. 지금 시설에 있는데, 나는 시설에 갈 때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가족인 나도 못 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니까요.”

“그러셨구나. 좋은 기관 만나서 잘 지내시나 봐요. 다행이에요.”

“나는 그래서 반대 못 해요. 그런데 나만 반대 안 한다고 될 일은 아니잖아요. 이웃들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우리 동네가 부자 동네도 아니고, 고만고만한 살림 사는 사람들이 평생 모은 거라고는 이 집 한 채가 전부라서, 그래서 그래요. 집값 내려가는 거 무섭고, 그 사람들은 장애인도 안 겪어봐서 잘 모르고…….”

“아…….”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잘 설득해봐요. 그럼 가볼게요.”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주무관님과의 통화 그리고 통장님과의 대화 이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랑누리 식구들에게 ‘보통의 삶’을 살게 하는 것. 그렇다면, 보통의 삶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면, 나는 이곳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마냥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그분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되니 해야 할 일들이 생겨났다.

이웃집의 벨을 누르고 만나기를 청한 시간……. 처음에는 쌀쌀맞게 대하고, 집에 있는데도 없는 척 나와주지도 않던 분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만나주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는 분들이 생겨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반년…….

“나는 자네들이 이사 오는 게 싫지 않아.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고, 마음도 쓰이고 그래. 그런데 나도 이웃들이랑 마음 상해가며 살고 싶겠어? 이웃들이 다 반대하는데, 내가 뭐라고 찬성하겠어? 대신 나는 반대도 하지 않을게.”

찬성은 못 해줘도 반대는 안 하겠다는 그 말이 내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되었다.

이전 10화 인터뷰 - 한진명(바리스타/사랑누리 이용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