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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cool Apr 05. 2024

MUTE

무음

엄마! 나는 2살 우진이가 너무 귀여워서 놀고 싶었던 건데, 수연이가 울었어.

“수연이는 맨날 울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수연이를 옆에서 자주 지켜봐서 알고는 있었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흘렸겠지만 둘만 있는 상황이라 대화를 이어갔다.   

  

“아, 그런 일이 있었어? 수연이가 왜 울었을까?”     

“자기랑 안 놀고 동생이랑 논다고 울었어. 치”   

"속상할 때 수연이는 눈물부터 나는가 보다. 네가 수연이한테 앞으로 속상한 일이 또 생기면 무엇 때문에 속상하지 말로 이야기해보라고 잘 얘기해 봐."   

“응, 알겠어.”     

늦은 시차를 타고 이동 중이어서 딸은 이내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조용한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나도 사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말로 표현 못 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가사 시간에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마치고 가장 마지막에 그곳에 남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엉망이 된 냉장고 앞에서 가사 선생님이 인상을 쓰며 나를 나무라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인 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제가 안 그랬어요” 또는 “제가 한 건 아니지만 치우는 걸 돕겠습니다”라고 당차게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런 대단한 말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그것은 왠지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서였다.

“제가 안 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어른한테 대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다른 친구들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것 같은 배신자 같은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오해를 떠안았다.      


꼭 핸드폰의 사운드 모드 같다.

7살인 내 딸 친구 수연이는 진동으로 속상함을 표출한 것을 보면 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되어 대견하기까지 하다.     

3학년 3반 우리 반에는 자기 목소리를 벨 소리 음량 최대치로 말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선생님!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잘 안 들려요. 다시 한번만 설명해 주세요’     

‘얘들아, 오늘 나랑 같이 점심 먹을 사람?’     

‘선생님, 지호가 괴롭혀요’     


속으로는 수십 번 말했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요구조건을 당당하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나의 벨 소리는 고장 난 것이 분명했다. 기계 안에서만 속 시끄럽게 잡음을 냈을 뿐, 무음 모드는 바뀔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집으로만 가면 벨 소리로 자동 변환되는 신묘한 기능이 있었다. 심지어 고모들에게 엄마의 부당함을 대놓고 따지고, 아빠에게 유일하게 할 말 다 하는 당돌한 아이였다.     

왜 집 밖에만 나가면 무음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그 모든 건 ‘낯가림’으로 일축했다. 그 이유를 파헤쳐보면 생각보다 조금 더 복잡한 것이 있었다. 관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복잡한 회로와도 같았다.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떤 기분일지, 지금 이런 말을 해도 되는 분위기인지,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위치의 사람인지, 오해 없게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지 등등 온갖 경우의 수와 상대의 예상 반응에 집중하느라 결국 타이밍을 놓치거나 포기해 버린다.      

특히, 많은 사람이 있는 앞에서 주목을 받고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5명 미만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5명이 넘어가는 자리에는 대체로 자동 변환되듯 무음 모드가 된다.      

세월이 흘러 경험치가 쌓인 지금은 필요와 상황에 따라 벨 소리, 진동, 무음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고군분투 중인 것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난이도 있는 것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벨 소리 음량 조절이다. 기본적으로 톤이 낮고 소리가 작아서 일반적인 소음에 내 목소리가 묻히기 딱 좋은 소리 같다. 내가 누군가를 부르면 한 번에 뒤돌아보거나 알아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도 식당에 가서 추가 반찬을 달라고 말할 때, 항상 남편에게 토스하는 나를 보면 이건 아직도 어려운 숙제 중 하나이다. 바쁜 식당 아주머니를 귀찮게 하는 게 아닐지, 내가 아주머니를 불렀지만 못 듣고 무시당했다는 창피함,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무언의 수군거림이(쟤, 아주머니한테 무시당했어. 킥킥) 신경 쓰여 포기해 버리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조심을 벗어나 기본적인 발언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혼자 운전할 때 차 안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그것도 어색해서 혼났다.

아무도 없는데 대체 내 목청을 높이는 것이 왜 그렇게 부끄럽고 이상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한동안 그 이유를 파헤치느라 고민하기도 했었다.

내 몸을 잘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잘 쓰지 않아 그 기능이 저하된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 일단 줌바 댄스 수강 신청을 했다.     


오늘도 차 안에서 벨 소리 음량 최대치로 소리를 질러본다. 아아아 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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