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리더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리더를 4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최상의 리더는 아랫사람이 리더의 존재를 아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고, 다음은 아랫사람이 리더를 가까이 여기며 칭찬하는 것이고, 다음은 아랫사람이 리더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리더는 아랫사람이 리더를 욕하고 깔보는 것이다.[太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태상하지유지 기차친이예지 기차외지 기차모지)]”
고대 중국의 이상적인 군주로 요순(堯舜) 임금을 듭니다. 요순 시대 백성들은 군주의 존재까지도 잊고 격양가(擊壤歌)를 불렀습니다. 요(堯)임금이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평복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한 곳에 가니 어떤 노인이 길가에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드리고,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나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于我何有哉(일출이작 일입이식 착정이음 경전이식 제력우아하유재)]”
이 노래를 들을 요임금은 크게 만족하여 ‘과연 태평세월이로다’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남이 모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요임금이야말로 ‘아랫사람이 리더의 존재를 아는 정도에서 그치는 ‘태상하지유지(太上下知有之)’의 임금인 셈이죠. 요임금은 자기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도덕성을 갖춘 사람을 찾아 왕위를 물려주려고 합니다. 요임금은 허유(許由)가 어질고 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죠. 허유는 기산(箕山)으로 몸을 숨깁니다. 요임금의 요구가 계속되자 허유는 속세의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흐르는 물에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허유의 친구 소부(巢父)는 소를 몰고 가다가 소가 그 물을 먹으려 하자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리더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는데, 목숨을 걸고 리더가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역작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칭찬받고 싶어하는 리더[親而譽之(친이예지)]’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기(吳起)’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공부를 핑계로 가지 않고, 장군이 될 욕심으로 자신의 아내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장군이 된 오기(吳起)는 병사들과 같은 곳에서 잠자고, 병사들과 같은 곳에서 밥을 먹고 병사의 몸에 난 종기를 빨아 상처를 낫게 하기도 했습니다.
오기 장군의 이러한 행위는 병사들과 가까이하고 병사들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행위이니까 오기 장군의 리더십을 최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기 장군이 병사의 고름을 빨아준 것은 병사의 충성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얻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로 볼 수도 있습니다. 노자가 볼 때 이런 리더십은 리더의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요임금의 리더십보다 등급이 낮다는 것입니다.
한비자(韓非子)는 부하들이 두려워하는 리더를 최상의 리더로 지목합니다. 군주가 군주로서의 위엄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賞)과 벌(罰)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비자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벌을 무서워하고 상을 기뻐하기에 군주가 이 두 개의 칼자루만 잡고 있으면 신하들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본 거죠. 시해(弑害)당하거나 지위를 위협받는 군주는 상벌의 칼자루를 신하들에게 뺏긴 군주라고 하면서 군주가 리더로서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신하들이 두려워할 칼자루를 반드시 잡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인 것을 배격하는 노자는 이런 유형의 리더를 하급(下級)의 리더로 보고 있습니다.
진시황(秦始皇)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했습니다. 그러나 통일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맙니다. 힘을 비축해 두었던 환관(宦官) 조고(趙高)는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扶蘇)를 모함으로 죽이고, 자신이 조종하기 쉬운 차남 호해(胡亥)를 이세황제로 만듭니다. 조고는 승상이 되어 모든 권력을 손에 틀어쥐고 한 가지 시험을 합니다. 조고는 사슴 한 마리를 끌고와 황제에게 말이라고 하죠. 황제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말과 사슴은 구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죠. 황제가 오히려 조고에게 핀잔을 줍니다. 그러자 조고는 주위의 신하들에게 말인지 사슴인지 묻습니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조고가 두려워 말이라 대답하죠. 물론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를 죄를 씌워 죽인 것은 물론입니다. 이것이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다]’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입니다. 이러니 진나라 이세황제 호해는 신하에게 업신여김을 당한, 최악의 리더로 평가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리더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 목숨을 걸고 리더에 뜻이 없음을 밝히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월산대군’은 조선 9대 임금인 성종(成宗)의 형입니다. 예종이 왕위에 오른지 13개월 만에 죽자 월산대군이 당시의 왕위 계승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 정희왕후와 훈구 대신의 뜻이 성종에게 있음을 알고 월산대군은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여생을 보냅니다. 월산대군은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동생을 택한 할머니의 결정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추강에 밤이 드니’라는 시조를 지어 왕권에 대한 욕심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월산대군의 시조를 읽어보겠습니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월산대군의 시조
가을 밤의 경치와 달빛 아래 낚시를 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낚시를 하지만 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생활형 낚시꾼이 아니죠. 낙시는 풍류의 수단일 뿐입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빈 낚싯대로 달빛을 낚으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욕심이 없는 달빛만 가득 싣고서 빈 배로 돌아옵니다. ‘빈 배’는 보통 외로움을 환기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임금의 형으로 왕위 계승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월산대군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 발만 삐끗하면 삶이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리더가 될 생각이 없음을 ‘무심한 달빛’으로 표현하고 있죠.
『맹자(孟子)』 ‘양혜왕 하편(梁惠王 下篇)’에도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이 각각 40리에 불과한데 백성이 넓다고 느끼오. 듣자하니 주(周) 문왕(文王)의 동산은 사방이 70리나 되는데 백성이 오히려 좁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오?”
이에 대해 맹자가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맞습니다. 주 문왕의 동산은 사방이 각각 70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풀을 베고 땔감을 장만하는 사람이나 꿩과 토끼를 잡는 사람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백성과 그곳을 함께한 것이지요. 그러니 백성이 그곳을 좁다고 여긴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처음 제나라의 국경에 도착해서 제나라의 중요한 금령을 물어본 후에야 감히 나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나라에는 도성과 교외에 사방 40리의 동산이 있는데 그곳의 사슴을 죽인 자는 살인죄와 동일하게 처벌된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나라 안에 사방 40리의 함정을 설치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이 이 동산을 너무 넚다고 느끼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맹자는 구성원들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실천하는 리더가 이상적인 리더라고 보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경청의 리더십으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합니다. 23전 23승이라는 세계 해전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은 경청의 리더십으로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나는 병사들과 어울려 자주 술을 마셨다.[『말의 품격(이기주)』에서 재인용]’고 했습니다. 전시에 술을 마시는 것은 지휘관이 피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술을 마시는 것은 술을 마시면서 병사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함입니다. 병사들은 이 고을 사람으로 물살의 세기와 흐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장군이 권위를 지키고 있으면 병사들은 말을 꺼내기 어렵습니다. 술을 한 잔 하면서 물살의 방향과 물살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 이야기가 되죠. 대화의 주제가 상대방이 잘 아는 것으로 정해진 셈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병사의 말을 들어서 지혜를 얻고 병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바다에 대한 지식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물길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병사의 말을 듣고서 작전계획을 세웠으니 이겨놓고 싸우는 격입니다. 리더의 권위는 듣는 데서 생겨난다고 이순신 장군은 본 것입니다.
[사진출처] 사진작가 황윤철님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