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 발자국은 남는다
대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좋아 저는 ‘정철’ 작가의 『한글자』라는 책을 자주 펼칩니다. ‘형’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읽어보겠습니다.
형 노릇이 어려운 건
뒷모습까지 가꿔야 하기 때문이다.
아우는 형의 뒤를 밟는다.
-정철, ‘형’
뛰어난 지도력으로 존경을 받았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기자들이 '탁월한 지도력의 비법'을 물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50cm 정도가 되는 실을 책상 위에 똑바로 펴 놓고는 뒤에서 밀어보라고 했습니다. 기자들이 열심히 밀어보았으나 그 실은 구부러지기만 할 뿐 앞으로 밀려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실을 앞에서 끌어당겼습니다. 실은 곧바로 딸려 왔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짐승은 뒤에서 몰아도 사람은 앞에서 솔선수범으로 이끌어야 합니다’라고 했답니다.
형은 아우의 표준이 됩니다. 형의 모습을 보고 아우가 따라오기 때문에 형은 행동 하나하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형은 아우의 리더가 되기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자기는 지각을 하면서 남에게 지각하지 말라고 하면 따르지 않습니다. 리더의 자세를 잘 보여주는 한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조선시대 ‘이양연’이란 선비가 지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라는 오언절구를 읽어보겠습니다.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양연,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에 걸어간 자국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눈 위를 걸어갑니다. 똑바로 걷는지 비틀거리며 걷는지 눈 위에 다 드러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눈 위의 발자국처럼 다 보입니다. 내 발자국이, 내 삶이 뒷사람에게 이정표가 됩니다. 바르게 걷고 바르게 살아야 함을 이 시는 말합니다.
한때 예술이냐 외설이냐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을 때, 그 작품을 자기의 아들딸에게 읽힐 수 있고, 보일 수 있으면 예술이고 그렇지 못하면 외설이라고 구분 짓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현명한 구분이라 생각됩니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큰 결단을 내릴 때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어 행여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된 길을 따라올까 경계하면서 이 시 ‘답설야중거’를 자주 인용했다고 합니다.
교사들은 학급 담임을 하면서 학급 경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지금은 학교도 민주화가 진행되어 어떻게 하면 이 학생들을 당당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학급 경영 방침을 정합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담임과 학생들의 첫 대면 시간에 기 싸움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담임은 자신의 말 한 마디로 학생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만들고 싶고, 학생들은 담임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유로운 교실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두 소망의 절충점을 찾는 기 싸움을 첫 대면 시간에 합니다. 교사는 웃음기 없는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고 하고 학생들은 그런 근엄한 표정에는 꿈쩍도 안 한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교훈과 더불어 급훈이 있던 시절이라, 저는 학생들과의 대면 첫 시간에 급훈과 함께 학급 내규를 만듭니다. 학생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미명 아래 교실에서의 행동 수칙을 성문화하는 거죠.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는 절차도 거칩니다. 먼저 급훈을 정합니다. 첫시간이라 사회는 담임인 제가 봅니다. 학생들에게 급훈으로 정할만한 좋은 구절을 말하라고 하면 대개는 안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어때? 대부분 반응이 없지만 몇몇 학생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급훈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통과됩니다. 학급 내규도 학생들이 자기들의 의견을 모으기 전에 일사천리로 정합니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려면 교실 청소를 잘해야 되는데, ‘청소시간에 최선을 다한다.’ 어때? 역시 몇몇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반대하는 학생 있냐고 묻습니다. 담임과 대면하는 첫 시간이기도 하고 청소 자체를 문제 삼는 학생은 없기 때문에 통과됩니다. 이런 식으로 ‘교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자기 물건은 자기 스스로 잘 챙긴다.’, ‘당번 활동을 성실히 한다.’, ‘지각을 하지 않는다.’, ‘교칙을 지킨다.’ 등을 차례로 통과시킵니다. 반대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습니다. 공부 1등을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100m를 10초에 달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공동생활을 위해 조금만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쉽게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우리가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조금 소란해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벌을 세워야 합니다.’, ‘벌점을 부과합니다.’. ‘벌금을 내게 합니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벌을 세우는 문제는 체벌과 관련하여 논란이 될 수 있으므로 폐기합니다. 벌점 부과도 문제가 있습니다. 벌점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불이익을 주기가 어렵습니다. 즉시 효과를 보기 어렵기도 합니다. 저는 벌금을 염두에 두고 진행을 합니다. 벌금을 내게 하자는 의견이 나오죠.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벌금은 얼마가 타당하냐고 묻습니다. 1000원, 500원 등의 의견이 나옵니다. 자연스레 학급 내규 위반자는 벌금을 낸다는 것은 만장일치가 된 겁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경우, 개인 사물을 함부로 방치하는 경우는 100원으로 하고, 청소시간에 청소를 하지 않는 학생, 지각을 하는 학생, 당번 활동(칠판 지우기)을 성실히 하지 않는 학생은 200원으로 합니다. 수업 시간에 소란을 야기해 수업을 방해한 학생에게는 벌금 만 원을 제시합니다. 학생들은 어떤 경우가 소란을 야기한 경우냐고 묻습니다. ‘수업 시간에 교과 선생님들과의 마찰이 있을 경우 교실 내에서 해결되지 않고 담임한테 통보되거나 담임한테 인계되는 경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만 원은 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5,000원으로 조정합니다. 그것도 과하다고 하면 3,000원으로 최종 결정을 합니다. 벌금으로 3,000원을 낸 경험이 있는 학생은 교실에서의 일은 교실에서 해결합니다. 교실에서 교과 선생님들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담임한테 가자’고 하면 학생들은 거의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담임한테 오기를 무서워합니다. 3,000원의 위력이죠.
교실이 좀 지저분하면 ‘누가 쓰레기를 바닥에 버렸나 보자’ 하면서 교실을 한 바퀴 돌면 1,000원의 수입은 쉽게 생깁니다. 두어 번만 이렇게 하면 교실에 쓰레기 버리는 학생이 없습니다. 학생들이 낸 벌금은 매 월말 개인별 종목별로 벌금 액수를 공개합니다. 학년말에 행동 종합 평가에 반영한다는 멘트도 함께 날리죠. 저도 학급 내규를 지키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학급에서만이 아니라 저의 모든 생활 공간에서 이 내규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벌금 총액만큼 저도 벌금을 냅니다. 이것이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요소가 됩니다.
마음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돈으로 학생들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니 이건 아니다 싶어 학급 내규를 없앨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규를 지키는 문제는 학교생활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도 꼭 필요한 행동이라 생각하고 제가 담임을 맡을 때는 내규와 벌금은 지속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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