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재로 내려앉은 신부
신부는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이 신랑은 또 생각이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집 옆을 지나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서정주, <신부>
신랑 신부의 50년의 삶이 생략된 채 첫날밤과 신부의 마지막 모습만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신부는 50년의 세월을 첫날밤 모습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족두리도 벗지 못한 채, 옷고름도 풀지 못한 채 첫날밤의 한을 안고 50년의 세월을 견뎌 내고 있습니다. 50년이나 쌓인 신부의 한은 신랑의 손이 닿는 순간 재로 폭삭 내려앉았습니다. 매운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신랑은 신부의 50년 한을 어찌 감당하려고 첫날밤을 뒤로 하고 집을 나갔을까요? 자신의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다는 상황은 무시한 채 신부의 음탕한 인성을 지레짐작하여, 저런 인성을 지닌 여자와는 한평생을 함께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집을 나가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신랑의 한 순간의 오해가 신부의 한 평생의 삶을 재로 내려앉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오해는 다른 설화에서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경북 영양 일월산 자락에 <일월산 황씨부인당>이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 사당에 얽힌 내력을 다음과 같습니다. 일월산 아랫마을에 황씨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두 총각이 서로 황씨 처녀와 결혼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중 한 총각과 결혼한 첫날밤에 신랑이 뒷간에 다녀오다가 문에 비친 칼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대나무 잎사귀가 문에 비친 모습이었지만 신랑은 연적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칼을 빼들고 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도망가 다른 처녀와 결혼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족두리도 벗지 못한 채 신랑을 기다리다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죽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신랑은 일월산 자락에 사당을 짓고 신부의 혼령을 위로해 주었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랑의 오해처럼 일상생활에서 오해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 많습니다. 특히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외부 요인(상황)으로 설명해야 될 일을 내부 요인(인성)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이 지각했을 때 지각의 원인으로 교통 상황 등 외부 상황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게으르다는 인성으로 보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합니다. 이런 오류가 빈번하기 때문에 ‘기본적’이란 말을 붙인 것입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짐바르도 교수는 이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감옥 실험을 합니다. 그는 대학교 심리학부 지하실에 가짜 감옥을 만든 뒤, 피실험자들을 무작위로 ‘죄수’와 ‘간수’로 나누었습니다. 짐바르도 교수 자신은 교도소장으로 행세하면서 간수들에게 간수의 역할을 잘하라고 독려합니다. 역할극이었지만 간수는 실제 간수보다 더 혹독하게 죄수를 대하고, 죄수는 진짜 죄수보다 더 심한 인권 침해를 받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간수의 비인간적인 행위는 더 이상 실험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자행되었습니다.
간수가 죄수를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간수들의 인성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간수와 죄수라는 상황이 간수를 그렇게 만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었고, 그 목적은 실험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보아 다른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외부 상황에서 먼저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인성에서 찾습니다. 그것이 편하고 쉽게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죠.
우리말에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기적 편향(self-serving bias)’이라 합니다. 이것 역시 ‘귀인 오류’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고하는 방식이죠.
동호인 테니스 시합에서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어젯밤에 잠을 못 잤다든가, 엘보우가 심하다든가’ 하는 게임에 불리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제공합니다. 이는 시합에서 졌을 경우 자신의 실력 때문에 진 것이 아니라 외부 상황 때문에 졌다는 핑계를 대기 위한 사전 포석에 해당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겼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이긴 것이 되겠죠.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 기간에 친구에게 공부 많이 했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여러 핑계를 대면서 많이 하지 못했다고 대답합니다. 낮은 점수가 나왔을 때 자신의 낮은 점수를 능력 탓으로 돌리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능력 부족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외부 상황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존감을 보호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낮은 점수를 능력 탓으로 돌리면 자존감에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부 상황을 미리 만들어 낮은 점수에 대한 방어막을 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거나 방어하려는 욕구 때문에 귀인 오류와 편향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장학사들의 학교 수업 현장 참관이 자유롭던 시절입니다. 한 장학사가 일선 초등학교에 수업 참관차 방문했습니다. 교실 뒤쪽에 비치되어 있던 지구의를 보았습니다. 지구의가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고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지구의가 왜 기울어져 있지?” 그러자 그 학생은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요.” 옆에 있던 담임 교사가 “그거 살 때부터 기울어져 있던데요.” 교감 선생님이 한마디 거듭니다. “요즈음 중국산 제대로 된 것이 있나요.”
이런 우스갯소리가 회자된다는 것은 자신의 무지는 감추고 다른 사람의 무지를 폭로하는 것이 일종의 기쁨이라는 방증이 아니겠는지요. 그러니 남 앞에서 공부 자랑, 돈 자랑, 가족 자랑은 환영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어리숙한 구석을 보여주는 것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좋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