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善惡)보다 이해(利害)가 앞서는 경우

호리지성(好利之性)

by 인문학 이야기꾼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선(善)한 것이라고 보는 학설을 ‘성선설(性善說)’이라고 하죠.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맹자(孟子)-공손추상(公孫丑上)』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아무리 어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만든 화살이 사람을 상하게 하기를 바라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어질지 않더라도 자신이 만든 갑옷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이 무탈하기를 빌어주는 무당과 관(棺)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관쟁이의 관계도 이와 같다. 그러니 직업을 택할 때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화살이 약해서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 화살이 팔리지 않고 생계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갑옷이 적의 창을 막아내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무당은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에 사람들이 평안해야 생계를 이어갑니다. 관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죽어야 생계를 이어갈 수가 있죠. 모두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직업적 특성 때문에 악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으니 직업 선택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 맹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화살은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고, 관도 누군가는 짜야 합니다. 이러한 직업이 있는 한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악한 마음은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맹자의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보겠습니다. 맹자의 논리대로 본성을 선하다고 전제하면 그리고 선한 본성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악한 마음을 일으키는 직업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활을 만들고 관을 짜는 직업은 없앨 수가 없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간의 본성을 선악(善惡)으로 보아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선악(善惡)으로 보는 관점은 버려야 합니다. 맹자도 ‘無恒産無恒心(무항산무항심)’이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이해(利害)가 선악(善惡)보다 먼저라는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활을 만드는 사람과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면 어떨까요?


‘한비자(韓非子)’는 인간의 본성을 호리지성(好利之性)으로 보았습니다. 이익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사기열전(史記列傳)-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晏列傳)』에 ‘오기(吳起)’ 장군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김원중 교수는 『사기열전(史記列傳)』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읽기 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증자(曾子)에게 배웁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가지 않고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불효막심한 자로 인식되어 파문(破門)을 당합니다. 그러자 이웃 나라 노(魯)나라로 가 노나라 군주를 섬기고 제(齊)나라 사람을 아내로 맞습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임명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대신들이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오기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으로 의심합니다. 이에 오기는 자기 아내를 죽여 자신이 제나라 편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기는 장군으로 임명되고 이 전투에서 크게 이기게 됩니다.

‘오기’가 자기 아내를 죽인 것은 노나라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을까요? 나라를 위해서라면 아내를 죽일 수 있다는 투철한 국가관 때문이었을까요? 한비자(韓非子)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장군이 되고 싶은 욕심, 장군이 된다는 이익 때문에 자기 아내를 죽였다는 겁니다. 인간의 본성이 이익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지요.

‘오기’는 장수가 되자 병사들과 같은 곳에서 잠자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습니다. 한번은 몸에 종기가 난 병사가 있었는데 오기 장군은 자신의 입으로 병사의 고름을 빨아 병을 낫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통곡을 합니다. 졸병의 고름을 장군이 직접 빨아서 병을 낫게 해 주었는데 왜 우느냐고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병사의 어머니는 “예전에 오기 장군께서 우리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 준 적이 있는데, 애 아버지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가 적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기 장군이 지금 또 제 아들의 종기를 빨아 주었으니 이 아이도 곧 죽게 될 것이 걱정되어 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오기 장군이 병사의 고름을 빨아 준 것은 병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비자는 병사의 어머니 말처럼 자신의 행위가 병사의 충성심을 유발하고 이것이 전쟁의 승리로 이어지면 자신의 출세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고름을 빨았다는 겁니다. 오기 장군의 행위는 이타적인 행위 같지만 결국 이기적인 행위라고 본 것입니다. 이것이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는 인자함’을 뜻하는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됩니다.


한비자의 관점으로 보면,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나 관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죽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거죠. 맹자의 이야기로는 ‘항산(恒産)’입니다. 마찬가지로 갑옷을 만드는 사람과 무당은 사람이 건재하기를 바라지요.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직업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묘비명(墓碑銘)’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자리’에 올랐고, ‘훌륭한 비석’을 남깁니다. ‘비석’은 ‘그’의 자서전이고 자서전의 내용은 ‘그’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유명한 문인’이 ‘그’의 자서전을 썼습니다.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해 온 그의 자서전이 ‘귀중한 사료’가 되는 현실에 화자는 분노를 표출합니다. 물질적 가치를 인문학적 가치로 둔갑시킨 ‘유명한 문인’을 화자는 절규하듯 비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유명한 문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요?

돈 많은 ‘그’가 ‘유명한 문인’에게 많은 돈을 줄 테니 자서전을 써 달라고 제안했겠지요. 양심보다 돈의 유혹이 문인을 지배하게 되고 문인은 찬양 일색의 자서전을 씁니다. 왜곡된 자서전은 개인의 업적을 넘어 역사적 업적이 됩니다. 이런 자서전이 ‘귀중한 사료’가 되는 현실에 대해, 돈의 유혹에 양심을 팔아버린 문인에 대해 화자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겁니다.

‘유명한 문인’이 선악(善惡)이나 시비(是非)에 따라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이해(利害)에 따라 글을 쓴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익(利益)이 행동 양식을 결정하게 되었기에 본성을 호리지성(好利之性)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듯합니다. 한비자(韓非子)의 관점으로 보면 ‘유명한 문인’이 ‘묘비명’을 쓴 것은 그것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본성을 이익과 손해의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진출처] Unsplash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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