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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Jun 19. 2024

좋아하는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남보다 잘난 게 있으면 가산점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굴이 잘 생겨서 시각적 가치가 있다든지, 배려를 잘해서 감정적 가치를 준다든지, 성숙함과 노련함에서 인생 멘토로 타당해서 그렇다든지 말이다.


그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일단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잘 생겼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보니 내 취향에 맞는 훈남을 만나고 싶었다. 서로 마음이 있어 사귀게 된 첫 남자부터 최근에 사귀었던 X까지 총 20명 남짓한 상대랑 연애했다. 그중에는 키가 나보다 큰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작은 사람도 있었다. 순수 중국인이 있는가 하면 독일과 스페인 혼혈, 베트남 남자도 있었다.


일단 외모를 보지만, 그다음으로 취미와 말센스를 봤던 거 같다. 아무래도 연애란 둘이 같이 있을 때 대화를 자주 나누고 무언가를 함께 즐겨야 하니까. 노래방을 좋아했던 남자도 있었고 요리를 좋아했던 남자도 있었다. 예술을 좋아하는 디자이너도 있었고 아직 사회생활이 두려운 대학생도 있었다. (연하만 만나다 보니 거의 학생이었던 애인이 많다.)



X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일단은 외모였다. 다음으로 그의 촬영 실력과 노래 실력에 감탄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 한국 홍보대사로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착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단다. 그때의 추억과 경험이 X의 호기심 많은 자아를 형성시켰을 것이다.


X는 확실히 사진을 잘 찍었다. 여행할 때면 예쁜 풍경 사진을 잘 기록했고 인물도 멋진 구도를 고려해서 예술적인 감성 살려서 촬영했다.


덕분에 여행을 가든 맛집에 가든 꽤 멋스러운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어 좋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핸드폰으로 찍고 나서 어플로 보정했는데 X랑 사귄 뒤로는 그가 보정한 이미지를 복붙 해서 사용했다. 나한테는 꽤 유용한 스킬을 소유한 남자라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 존재다. (친척 누나의 결혼식에서 웨딩 촬영도 담당했었다.)


X가 그 남자랑 찍은 인생 네 컷이며 편의점 우산이 주말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건 사실이다. 비즈니스 관계로 친해져서 좋은 파트너로 발전하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섹스 파트너가 되지 않을지 우려되었다. (X가 I성향이긴 하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늘 불안했다.)


주말 내내 X는 헬스 하든 점심 먹든 내 주변에서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저녁 식사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 예민하게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그냥 밥만 먹은 게 아니라서 화가 났던 건데. (여기서 TMI 하나, 나는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많이 가라앉는 타입이다. 해서 그날 있었던 일의 분노가 실은 이미 어느 정도 사그라든 상태다.)


화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내가 그를 용서하기로 한 계기는 바로 카메라를 들고 절친의 카페를 찍게 되면서였다. 난 그를 도와 내부를 세팅해 주며 카메라 속의 일일 모델이 되었다. 둘의 호흡이 잘 맞았고 결과물이 마음에 들었다. X가 더 멋있어 보였고 그가 촬영에 전념하듯 나 또한 우리의 사랑에 집중하고 믿어주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쌓인 응어리가 온데간데없이 풀렸다.


(마음에 드는 사진들)


물론 앞으로 X가 그 사람과 여전히 자주 연락할 거고 나중에 또 협력할 수도 있어 아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스티커 사진을 피드에 올리든, X가 스토리에 올리든 딱히 말리고 싶지 않았다. 난 용기 내어 그 남자가 올린 인생 네 컷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업계 선배로서 남자친구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줄 멘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에필로그:

게이들의 데이트 장소는 대부분 사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편이다. 코인노래방이나 영화관 뒷줄 또는 가장자리, 비디오방, 만화카페 그리고 모텔까지(인적이 드문 산속?). 아무래도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다 보니 최대한 프라이빗한 장소를 고른다.


그러다 보니 동성끼리 이런 곳(모텔 제외)에 방문할 때면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그들이 꼭 동성애자라는 법은 없다. 친한 친구라서 소곤거리기 편한 영화관 뒷줄을 예매할 수도 있는 거고 같은 취미를 가져서 만화를 보려고 카페에 들를 수도 있으니까.


가장 편리하고 너그러운 대처법은 남 일에 신경을 끄는 게 아닐까 싶다. 남자랑 남자가 연애를 하든 여자랑 여자가 만나든 그들의 인생에 참견하지 말고 본인 인생만 잘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닐까? 모두 화목하게 각자도생 하는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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