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막힌 문을 여는 논리의 짝꿍 감성은 공감과 동의를 동반한다.
감성은 긍휼의 리더가 흘리는 안타까움이다. 감성은 산책과 사색의 모퉁이에서도 피어나는 거룩한 품성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클래식은 사색하게 하는 음악이다.”
감성이 없는 논리는 닫힌 문을 더 단단하게 할뿐입니다.
“논리보다 앞서서 우선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해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도 알게 되죠.”
서강대학교 장영희교수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도스트예프스키의 메시지를 가슴 깊게 파고들게 해서 오랜 시간 울림을 주는 글을 소개하고 있다.
“ ‘영혼의 리얼리즘’ 작가로 불릴 정도로 인간의 내면 묘사에 천착했던 도스트예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The Brothers of Karamazovy.1880⟫에 일생동안 그를 괴롭혔던 사상적. 종교적 문제, 선과 악에 관한 사색을 모두 쏟아 부었다.
물욕과 타락의 상징인 표도르를 아버지로 둔 카라마조프가의 3형제(방탕하고 무분별하나 순수함을 지닌 장남 드미트라, 무신론자에다 냉소주의 적 지식인 차남, 이반. 수도원에서 사랑을 설파하는 조시마 장로를 추종하는 박애주의자, 알료사) 그리고 아버지와 백치 거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부자와 형제간의 애욕을 그린 작품이다.
결국 카라마조프가의 사랑의 결핍은 스메르자코프의 친부 살인이라는 끔직한 결과를 초래하고 드미트라는 아버지를 살해 했다는 누명을 쓰고 유형길에 오르고 동생 알료사는 형을 따라 나선다.
신이 없는 이상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법칙도 존재 할 수 없고, 따라서 “신이 없으면 인간이 신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이반에게 알료사는 말한다. “논리보다 앞서서 우선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해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도 알게 되죠”
다음 소개하는 이야기에 시선을 모아보세요.
아이의 표정을 보셔야 해요.
몇 해 전 8월 어느 날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다. 나의 연구실에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엄마와 함께 방문하였다. 그 아이는 저와 가까운 후배의 딸이다. 내용인즉, 2학기 학급회장 선거에 나간다는 것이었다. 5학년 1학기 3월에 시골에서 전학 온 아이다. 시골학교에서도 4학년 때 학급회장 경험이 있었다.
몇 가지 물었어요. “왜 학급회장을 할려고 하는지.
학급회장 선거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 하고 싶은지.
네가 생각한 대로 소신껏 솔직하게 발표하라” 했지요.
남자 아이들 몇 명이 자기를 놀린다는 얘기도 하라고 했어요.
아이의 피부가 조금 까무잡잡하고 사투리가 심했어요. 그래서 남자 아이들 몇이서 깜상 이라 부르며 놀리는데 창피하다는 거예요.
그것도 그대로 말하라 했어요.
“시골에서 뛰어놀다 따가운 햇볕에 타서 그렇다. 마음은 너희들처럼 나도 하얗다. 그리고 사투리도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 말씨로 바꾸겠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이런 말도 좋다고 했어요.
여섯 명의 회장 후보가 나섰데요. 학급인원 38명. 이 아이에게는 친한 친구 1명밖에 없었어요. 결과는 23표 아무리 단단하게 잠긴 문일지라도 감동은 누구에게나 깔려있군요. 그 감동의 문은 진솔한 고백이 서로의 마음과 마음사이를 이어줄 때 열리군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드미트리의 입을 빌려 인간의 마음이란 “악마와 신이 서로 싸우고 있는 싸움터”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는 신이 마음속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고, 선과 악의 투쟁은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랑하려는 힘과 사랑하지 못하는 힘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정신적인 지주로 등장하는 조시마는 “지옥이란 다름 아닌 바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데서 오는 괴로움”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그는 역설한다. “대지에 입 맞추고 끊임없는 열정으로 사랑하라. 환희의 눈물로 대지를 적시고 그 눈물을 사랑하라. 또 그 환희를 부끄러워 하지 말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도록 하라. 그것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지옥이란, 사랑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데서 오는 괴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