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논리가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도구라면 감성은 논리 너머에 있는 슬픔과 기쁨까지도 보듬는 탄력의 언어다. 감성의 언어는 전혀 다른 이물질 끼리도 연합시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융합의 도구이다.
좋은 식물이 되려면
⋅먼저는 씨(종자)가 좋아야 한다.
⋅두 번째는 토양의 성질이 좋아야 하고
⋅세 번째는 햇빛.물. 바람이 적절해야 씨앗을 자라게 한다.
햇빛과 물은 식물을 키운다. 위로와 사기는 사람을 키우지요.
위로와 사기는 감성에서 나오는 에너지다. 씨는 좋은데 햇빛과 물이 약하면 튼실하게 자라지 못한다.
논리는 단단한데 감성이 약하면 전체를 보는 시선이 짧아진다.
감성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탄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성적 정서가 풍성한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다. 마음이 강퍅하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럽지요. 비교적 대화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실감나게 한다. 사람의 장점을 잘 찾아내는 특성들이 있다.
비판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보낸다. 불평보다는 감사를 고백한다. 또한 절제를 조절한다.
이런 감성적 사람들은 대인커뮤니케이션 면에서도 상대와 충돌하지 않고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간다.
그들의 특성은 틀림보다는 차이를 허용하는 넉넉함이 있다.
뛰어남 보다는 다름을 발견한다.
얼마 전 내 조카의 푸념 섞인 얘기를 들어볼까요? 조카는 대학원 학생이면서 송교수의 조교를 하고 있다. 송교수님께서 어느 화요일 공강인 날 “아침 7시55분까지 와주어야 한다” 해서 시간에 맞추어서 갔데요. 학교에 도착하니 교수님께서 묻더랍니다. 조교1에게는 “아침은 먹었느냐?” “네 조금 먹었습니다.” 조교2에게도 역시 “아침은 먹었느냐?” “네 빵 하나 먹었습니다.”
“나보다는 더 나은데, 나는 아무것도 못 먹었어”
연구실을 나오면서 두 조교는 서로 빤히 쳐다보면서 이건 뭐야‘헐’ 하였다는 얘기였습니다.
독자여러분은 교수님의 응답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숨 막히는 소리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갈등과 불통의 막힌 문을 여는 논리의 힘. 감성의 힘. 표현의 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논리는 정리된 질서입니다. 감성은 회복의 질서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략을 세우고 통로를 만드는 능력은 논리의 몫이지요.
반면에 논리 위에, 숨 쉬는 터를 열어주는 여유의 힘은 감성의 몫이지요.
이 둘은 이.감理感의 조화입니다.
앞에 소개했던 그 조교들은 송 교수님으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싶었을까요? 학교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조교 둘 다 2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니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서둘렀겠지요. 교수님 앞에서는 빵을 먹었다, 밥을 쬐끔 먹었다 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나 봅니다. 교수님께서 물어보니 기분이 좀 좋아졌겠지요. 얼마나 힘들고 배 고프니, 이 추운 새벽에 먼 길 오느라 고맙고 미안하다. 점심 함께 하자. 이 정도 기대했나봅니다.
그런데 “나 보다는 낫네.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송 교수님의 말은 논리적으로 해석하면 맞는 말씀입니다. 솔직한 표현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조교들에게 뭘 그걸 가지고 그러느냐 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감empathy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공감이란 뜻은 상대의 느낌을 함께 공유한다는 뜻이지요. 대중 철학자 로먼 크르즈 나락은 공감이란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서보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시각을 이해하며,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활용해 당신의 행동지침으로 삼는 기술이다.” 하면서 “삶의 기술 Art of life 로서 공감의 힘에 주목하라”고 하고 있다.
감성은 논리가 풀지 못한 이성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감성은 논리와 논리가 주장하며 대립할 때 한발씩 뒤로 물러나게 하는 뒷문의 통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