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문
의문문 속에는 숨어있는 비밀이 있다.
그것은 의문형 속에 감추어진 긍휼이다.
긍휼은 상대의 아픔을 내 마음으로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긍휼이란, 측은한 마음 부어 주기이다. 손이 시려울 때 손 잡아주고 장갑 끼어주는 마음이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는 마음이다. 빗방울 손등으로 가리우며 멋쩍어 하는 친구에게 함께 쓰는 우산이다. 산모퉁이에서 강도 만나 피 흘려 쓰러져가는 사람에게 다가갔던 선한 사마리아인을 아십니까? 바로 그의 행함이 긍휼입니다.
긍휼은 감성과 공감, 이해와 동의, 사랑과 아픔을 연결하는 이음새다.
다음은 의문문 속에 감추어진 긍휼의 메시지를 만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 잘 되고 계십니까?⤿ 또는 잘 되고 계시는지요?⤿에서 끝을 1도 내리면 동의문이 된다. 그러나 사랑이 넘치는 목사님이라면 동의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요즘 휴가철이 되어 기도 생활을 게을리하는 교인들이 있는 것 같아 저의 마음이 아픕니다.” “꾸준하게 기도 생활 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19의 어려운 환경에서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목사님의 간절한 바램 까지 들어가는 메시지가 긍휼의 메시지다. 현상 너머에 있는, 상대의 소망까지 아우르는 실상이다.
거기까지 볼 줄 아는 것, 느낄 줄 아는 것. 불쌍해서 함께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양까지 나아가는 떨림이 동의를 뛰어넘는 긍휼의 환경이다.
사실 설문조사를 해보면 한국의 대다수 목사님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동의와 긍휼은 상대를 먼저 인정하는 태도이다. 긍휼의 마음은 가장 인간다운 성스러운 품성이다.
긍휼은 상대를 희망의 눈으로 보는 시선이다. 긍휼은 상대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나누는 손길이다.
여기까지 진보하셔야 합니다.
친구들끼리 가끔 언쟁이 높아지는 현장을 상상해 보자.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친구에게 “바쁘니??”↗하는 표현법은 ”바쁘면 약속을 하지 말든지“ 라는 의미가 들어있지요.
”바쁘지“?↘↷
하고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내린 표현법은 “너 바쁜거 알고 있어” “얼마나 힘드니” 라는 친구의 따뜻한 이해의 언덕이 전달되는 표현입니다.
저하고 함께 공부 하였던 부산의 박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체격이 마른 편 이었어요. “저는 살이 찌고 싶은데 안찌는 체질이다.”
라고 하시더군요. 강의 참석 2개월이 지난 후였다. 점심 식사를 대접한다는 거였다. 30명이 넘는 동기 목사님 모두에게 식사를 섬긴다고 광고를 했다. 박수 치고 앵콜하고 축제 분위기 였어요. 식사 대접하는 배경은 이러했다. 20년 만에 체중이 4kg가 늘어 예전 옷들을 입을 수가 없었답니다.
더욱 기뻐 할 일은 유학간 자녀가 잠시 들어왔는데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충격을 받았데요. 기쁨의 충격, 감탄의 소리로 눈물을 흘렸다는 거예요. 따님이 10여 년 동안 기억하고 있는 그 사나운 패턴이 바뀌었으니, 놀랄만한 사건이 되었겠지요.
“의문문 끝부분하나 바뀐 것 뿐인데”
더더욱 놀라운 사건은 어느 날 부터인가 교회가 조용해졌답니다.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께서도 회의 때 “네, 네” 만 하더 라는 거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론을 펴시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하신 분들도 있었는데, 뿐만 아니라 살이 쪄서 셔츠가 터질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옷 선물이 밀어 닥쳤데요.
듣고 있던 저는 눈물이 나더군요. 수없이 들어왔던 체험담 들이었지만, 살까지 쪘다는 그 말씀이 그렇게 행복 할 수가 없었어요. 박목사님의 명언이 들려 왔습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더라” “성도들의 괜한 걱정 때문에 마음이 시려지더라”
제 강의 중에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바뀐다.” 는 말이 실감 난다고 하더군요. “눈은 관계의 틀이다”
제가 가끔 이런 말을 강조했지요. “성도는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이 책을 읽는 분이 선생님이라면, 여러분의 학생들은 어떤 대상일까요?
가르침의 대상일까요?
꿈을 키워줄 대상일까요?
의사 선생님 한분이 계셨어요. 1년을 넘께 공부 하였지요.
주 2회 1:1 코스였습니다. 김 원장님은 실력이 좋기로 소문난 의사였다. 평소의 말소리, 소통능력, 외부 초청강의 등에도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간호사님이나 후배 의사, 원무과 직원들은 자기를 너무 무서워 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원장님은 성격도 날카롭고 우리의 인격까지도 무시 할 때가 많다”고 불평하는 얘기들이 들려 왔다는 거예요.
자신은 직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힘쓰고 있는데 자신의 깊은 뜻을 져버리는 마음이 섭섭하다는 거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직원과 통화하는 모습을 내가 듣게 되었다.
의문형 끝자리는 무조건 파 솔 이상으로 올라갔다. 부정과 명령 이었다. 갑과 을의 관계처럼 선이 그어져 보였다. 대화의 내용 면에서는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 사용하는 단어도 존댓말 이었어요. 다만 의문문 끝을 습관적으로 올려 쳤어요.
이후 의문문과 긍휼강의를 집중적으로 쏟아 부었지요. 편의점, 식당에 가서도 무조건 끝마디를 내리는 트레이닝을 하였지요.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요?
“사람이 바뀌었다.” “사람이 달라졌다.” “갑자기 바뀌니 걱정이 된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감탄의 소리. 남편과 자녀로부터도 행복의 기운이 날아 왔답니다. 김원장 본인도 “세상이 참 맑더라”고 고백을 하더군요.
리더의 덕목 중에 긍휼은 선택이 아니다. 긍휼을 모르는 리더는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동시에 어려운 이웃을 이해와 용서의 가슴으로 만나주질 않는다. 긍휼이 없는 지휘자는 과정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실패를 실패로만 본다. 결과만을 보고 성패를 따진다. 이런 유형의 리더들은 공적 주의에 빠져서 자신의 업적만을 자랑하는 3류의 길을 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