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지런한백수 Jul 14. 2021

백수들의 위안

백수 주변엔 백수만 있는 건가

 며칠 전 드라마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와 전화를 했다.

그날에서야 그의 루틴을 알았는데 저녁 6시 즈음에 카페에 가서 2-3시간 정도 쓰고 9시가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가 내게 전화를 걸 때 즈음이면 늘 9시를 막 넘긴 시간이었는데 그의 생활 패턴을 알고 나니 이제야 9시 콜이 이해가 갔다. 반면, 나는 사람이 적은 오전 시간을 활용하는 편이었다. 저녁에 사람만 없다면 가장 생산적이지만 집중력이 제일 낮은 시간인 저녁 대에 카페에 가서 무언가 하다 오고 싶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촘촘하게 앉은 곳에 자리를 하나 비집고 앉아 무언가 하는 건 집에서 하는 것만도 못할 때가 많아 그를 잘 실현시키지 못하곤 했다.


 나, 백수는 오전에 일찍까진 아니지만 오전 중에 눈을 뜨는 족속으로 늦어도 10시 정도에 카페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매일은 아니고 간다면 그를 목표로 한달까. 생활 패턴이 아예 다른 나와 그는 카페에 가는 시간도 달랐다. 그는 아침 7시에 잔다고 했다. 나는 최근 밤에 잠을 못 자 3-4시에 자니 아침과 오후 내내 정신을 못 차리겠던데. 그리고 저녁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면 낮까지 무기력하게 있던 기운이 내려와 역시나 생산적인 활동을 막아세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지, 참. 그럼에도 그는 아침 7시 취침과 오후 기상, 저녁 글쓰기와 새벽 퇴고를 반복하는 게 삶의 루틴이 된 모양이다.


 그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가 20살, 내가 19살 때 극작과에 들어가겠다는 꿈 하나로 만나 여태 연락을 이어오고 있었다. 차이라면 그는 좀 돌아가는 선택을 하였지만 결국 원하는 학교와 과에 들어간 것이고 나는 삼수 때 공부를 하면서 실기와 멀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어문대에서 내가 프랑스어를 배울 때 그는 군대를 다녀오고 과에서 시나리오와 희곡, 대본을 쓸 수 있는 수업이란 수업은 모두 들었다. 무언가 꾸준히 쓰고 배운다는 것은 그를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주변엔 아직 길을 찾지 못해 이 또래엔 당연히 해야 하니까, 혹은 원하는 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어서 공부를 선택하거나 전공을 살려 빠르게 취업을 한 친구들이 많았다. 애초에 대학에 들어갈 때 취업이 될 것을 고려하고 전공을 선택한 탓도 이르리라. 그러나 그는 재수를 제외하고 1년 정도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였지만 결국 원하는 곳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가끔씩 내가 꿈꾸는 것들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의 20, 21살과 군대 약 2년을 제외하면 4년을 그는 본격적인 글쓰기에 매달렸다. 올해 28살인 해에 전에 냈던 공모전 최종심까지 올랐으나 안타깝게 떨어졌으니 이번에 준비하는 공모전에선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만도 했다. 그도 겸손을 떨지 않고 당선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데 오히려 그게 낫다. 정말 당선됐으면 좋겠어, 나도!


 그의 공모전 내용 이야기를 듣고 머리로 상상을 하며 좋은 점과 이야기만 들었을 때 응? 할 수 있는 부분을 피드백해주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창작을 하고 싶다가도 당장 그런 머리가 돌아가지 않으니 동경스러울 때가 있곤 하다. 그 외에도 드라마 작가 지망생인 친한 친구와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다. 내게 창작은 실기를 위해 썼던 것이었고, 그 꿈을 안고 있던 17년도가 마지막이었다.


 그가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나는 간사하게 그가 나보다 한 살 많음에 아직 나이의 안도를 느끼고, 그는 내게 같은 백수가 있어서 다행이라며 위안을 느낀다. 상부상조인 모습이 얼마나 좋은가. 내가 불안에 허덕여 감정과 걱정뿐인 말들을 다 늘어놓으면 그는 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친구 L도 마찬가지다. 이미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시작인 거라고, 너는 항상 시작을 잘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동기 P와는 어떤가. 피카소 전시회에 같이 가기로 한 C는 어떻고.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에 졸업 후 계속 미용으로 일을 해왔던 고등학교 친구가 일을 그만뒀다고 책을 읽어볼까 한다고 연락이 왔다. 최근 책을 많이 샀다고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까닭이고 덕분에 백수 한 명을 더 구했다. 순간 드는 생각은, 백수..... 나에게 백수들이.... 모인다? 내가 백수여서 그렇겠지.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곧잘 찾고 다가가는 법이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는, 서로의 존재에 위안을 삼으며 좀 오랜 휴식을 그나마 버틴다.

작가의 이전글 날아가버린 데이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