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되어 흐르기를

말과 마음이 닿는 산책의 기록

by 지은담

묵직한 두통으로

온종일을 호떡 뒤집듯 이리저리 뒤척이며 누워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지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습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쇼핑몰을 잠시 둘러보고,

해 질 무렵에는 개천 따라 호수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비 온 뒤라 그런지 바깥공기가 한결 상쾌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경쾌하게 걸었겠지만,

오늘은 몸이 아파 발걸음에 조심스러움을 실었습니다.


걷다 보니 어느새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답답하던 가슴도 뻥 뚫리고,

안개 낀 듯 무겁던 머릿속도 맑아졌지요.


문득, 내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고,

내 숨소리만 또렷하게 들리더군요.


개천을 흐르던 상쾌한 공기가 코와 입으로 흘러들어와

들숨, 날숨에 따라 내 안을 맑게 씻어내는 것 같았지요.


집에선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를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내 숨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낍니다.

코로 청량한 숨이 드나들고,

피부로 부드러운 바람이 어루만지듯 지나갑니다.


기분이 널을 뛰고,

나뭇잎과 들풀들은 춤을 추니,

그제야 바람이 부는 줄을 알았습니다.


숨이 쉬어지고, 바람이 느껴지니

나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집니다.


숨처럼 자연스레 스며들어 곁에 있는 이를 살리는 사람일까?

산들바람처럼 화기애애 어울리며 즐거움을 만드는 사람일까?

폭풍처럼 거침없는 칼바람으로 상대를 고개 숙이게 하는 사람일까?

답은 곁에 있는 이들만이 알겠네요.


그 어떤 바람이어도

제 역할이 있으니, 감사해야겠지요.


바람, 공기의 에너지는 말의 에너지이기도 하다는데...

내가 건네는 말들이 날 선 칼바람만은 아니길 바랍니다.


얼마 전, 지인과 나눈 대화가 떠오릅니다.

그날도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지요.

전날 태권도 수련에 열정을 쏟은 데 이어

오늘 대청소까지 하느라 무리를 했던 탓에,

몸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쉬려고 누운 지 한 오 분쯤 지났을까요?

인근에 사는 지인이 만남을 청해 오셨습니다.

피곤했지만 몸을 일으켰지요.


향긋한 커피와 함께 근황을 나누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카페 마감 시간이 다가와 아쉬운 마음에

호수 공원을 함께 걸으며 다시 대화꽃을 피웠습니다.


그 와중에 요즘 크게 감사했던 일도 나누고,

하는 일에 도움 되는 조언도 들었습니다

말을 통해 막혀 있던 생각이 정리되고,

서로의 기운을 나누니 컨디션이 금세 회복되더군요.

산책 삼아 야밤 운동도 하고

덕담도 양껏 나눈 뒤 깊은 밤에 귀가했습니다.


전날 에너지를 듬뿍 채운 덕분인지,

오늘은 전투력 만렙이 되어

힘든 일상을 보내고 계시던 지인에게

북돋은 에너지를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나눔이 도움이 되었는지,

정체되어 있던 모임 분위기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대화 한 자락은

가라앉았던 자존감을 되찾아 주고,

일상의 흐름을 돕는 지혜가 되며,

서로의 관계를 더 깊고 단단하게 연결해 줍니다.


말에도 기운이 흐르는 걸 느낍니다.

숨처럼 흐르는 말,

바람처럼 건네는 말이

사람을 일으키기도, 아프게도 합니다.


오늘 내 한 마디가,

누군가의 가슴에 부드럽게 스며들어

청량한 숨이 되어 흐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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