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눈이콩처럼 작고 단단하다. 어른 주먹으로 한 움큼이나 될까? 투명 비닐봉지에 보이도록 싸놓은 건 깜빡깜빡하는 기억력 때문이다. 예쁜 그릇에 담아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싶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고 말아 귀한 것들을 묵히기 일쑤이니 소중한 것들은 가능한 잘 보이는 곳에 투명 비닐에 담아 놓는다. 투명한 유리 병도 있으련만 자주 꺼내다가 깨지기라도 하면 낭패려니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들며 날며 보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여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코를 킁킁댄다. 잘 볶어진 옥수수의 구수한 냄새, 크고 잘생긴 서양 옥수수알에서는 맡을 수 없는 토종 옥수수 고유의 향이다.
춘천에 구름 방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세컨드하우스를 짓고 사는 선배 문우가 있다.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시스트라도 불릴 만큼 애처가이기도 한 그의 그림 같은 집에 초대되어 갔을 때 우리 모두는 천국을 살짝 엿본 듯했다. 넋이 나가 말을 잃고 있을 때
"그런데 이렇게 농사짓고 집 관리하려면 엄청 힘들걸, 부지런한 사람이라야 할 수 있어"
현실적인 문우의 말에 꿈에서 깰 수 있었다. 좁은 아파트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서너 개 베란다 화분도 건사하지 못하는 내가 언감생심 부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반나절 보낸 낙원의 꿈은 이리 여지없이 깨졌지만 추억과 생생한 증거가 남았으니 선배가 손수 재배하여 수확하고 잘 볶아 나누어준 옥수수 차와 늙은 호박 덩어리이다
늙은 호박은 주방 출입구에 놓고 드나들 때마다 호박 잡을 날을 점치고 있다. 늙은 호박 한 덩이 면 혼자 삼 박 사 일 먹을 양이니 날짜를 잘 잡아야 알뜰히 먹을 수 있을 터인데 너무 오래 두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심심할 때마다 호박요리를 검색해 보는 재미도 있다. 고소한 호박전이 되었다가 구수한 호박죽이 되고 달큼한 호박 찜이 되기도 한다. '서너 가지를 한꺼번에 해서 호박 잔치를 해봐? ' 공상하는 재미도 있다. 이대로 관상용이 되어버리고 마는 건 아닐까? 먹어버리려니 아깝고 두고 보자니 행여 못 먹게 될까 봐 걱정이다. 졸지에 생각만으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호박과는 달리 옥수수 차는 늘 애틋한 마음이다.
추운 날 난로 위에서 끓고 있던 보리차 주전자를 기억한다. 추운 날 밖에서 들아와 김이 나는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손에 쥐면 온몸으로 스며들던 온기, 공중으로 퍼지는 김은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었다. 쌉싸롬한 보리차 맛에 길들여 있던 우리들에게 옥수수를 약간 섞은 보릿 차를 처음으로 끓여 주셨을 때 구수한 맛은 얼마나 경이로웠던지, 입천장이 데이도록 마셨던 기억이 난다. 오 남매가 난롯가에 옹기종기 둘러 얹아 옥수수 차에 군고구마를 나누어 먹던 시절, 찐빵 하나면 그날은 잔칫날이었다. 옥수수 차 하나로 마냥 즐거울 수 있었다.
선배의 옥수수 차를 볼 적마다 냄새를 맡으며 언제 끓일까? 방안 가득 옥수수 냄새가 나겠지? 생각하곤 했지만 감히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호박처럼 생 것도 아니니 좀 더 오래 보관해도 괜찮을 것이다 .' 호박 먼저, 옥수수 차 다음에'로 순서를 정해 놓아 버렸는데 세상사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하루아침 새벽 기상을 하자마자 오심이 잃었다.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품어져 나올듯한 기세였다. 황급히 화장실로 뛰어가 방안에 저지르는 불상사는 막았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생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토악질이다. 차 말미로 인한 오심은 가끔 경험했지만 이런 구토는 처음이었다. 마치 위장이 밖으로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같은 상비약으로 준비해 놓은 가슴 활명수를 마셨지만 이번엔 물까지 토해버리고 말았다. 새벽 다섯시,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 볼 여지도 없었다. 방에 널브러져 있자니 온갖 설움이 복받쳤다. 열이 있거나 복통이 있거나 설사를 하거나 다른 증상이 있는 건 아니니 몸이 괴롭지는 않았으나 두렵고 서러웠다. 이날 이때까지 복통으로 앓아누운 적은 없었다. 여고시절 수학여행에서 감자떡을 먹고 단체로 식중독에 걸렸을 때도 무사했던 나였다. 위장만큼은 철근 콘크리트라고 자신했건만 이젠 정말 나이 탓인가 보다. 서러울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갈 요량으로 꿀물을 탔는데 입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다시 절망했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다시 누우려는데 어릴 적 어머니가 동생들 배 아플 때 보리차를 끓여 먹이던 생각이 났다. 몸이 약한 막내 동생이 배 앓이를 할때면 어머니는 큰 주전자에 옥수수차를 끓여 꿀을 약간 타서 먹이며 배를 쓸어 주시곤 했다. 막내가 스르르 잠이들 때까지 "엄마 손은 약손"하시며 배를 쓸어내렸다.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졌다. 몸을 일으켜 선배의 작고 단단한 조선 옥수수 알갱이를 넣어 차를 끓였다 실내에 훈기가 돌고 김이 퍼져나가고 옥수수 차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엄마 냄새 같기도 했다. 반신반의 두려운 마음으로 한 모금 입에 대니 괜찮다. 넘길 수가 있었다. 뒷맛은 조금 씁쓸했지만 넘기지 못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꿀을 듬뿍 넣어 한 잔을 마시고 털고 일어나 앉았다.
다행히 가벼운 위염 증상이라 한다. 엊저녁에 블루베리를 조금 많이 먹은 것도 같다. 식탐은 없는 편이건만 과일을 좋아하니 자칫 많이 먹기도 한다. 과일이라 탈이 없을 줄 알았으니 오산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쥐눈이 콩처럼 작고 단단한 옥수수 차 한잔이면 되는 것이다. 옥수수 알 한웅큼에는 귀농한 선배의 정성이 담겨 있고 , 옥수수차 한잔에는 자식을 위해 정성을 다하던 어머니의 헌신과 추억이 들어 있다 . 내가 마신 옥수수차는 나혼자만의 것이 아니다.다 내가족들과 내주변 여러사람들이 함께 있었기에 내 손에 들어 올 수 있었다. 나이들어 약해지는 심신이 안타깝기는 하나 앞만보고 달리던 젊은 시절과 달리 주변을 돌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옥수수알갱이의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으니 그또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