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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Jan 17. 2024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살아온 삶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후회되는 순간들이 많다. 특히 20대 초반이 그랬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탓에 꽤 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살던 때였다. 부족한 학벌을 어떻게든 세탁해 보려는 것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편입 시험을 보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시 수능을 보는 것은 무리고,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문대 졸업장을 얻을 수 기회를 잡기로 마음먹었고, 그러한 선택을 당연하게 여겼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취업 추천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예비역 복학생 버프를 받아 학과 공부를 열심히 했었기에 몇몇 교수님들께는 좋게 봐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그럴싸한 말을 앞세워 편입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작은 기업이지만, 좋은 곳이라고 면접이라도 보라는 것을 끝내 사양했다. 교수님도 그 결연한 의지를 보셨는지 더 이상 권하지 않으셨고, 그 뒤로 취업 의뢰가 들어와도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그때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때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집안 형편이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하신 지 오래였다. 일용직을 전전하시던 아버지는 딱히 건강에 문제가 있지 않았음에도 일을 쉬실 때가 많았다. 소득도 적은 데다가 일을 불규칙하게 하시니 형편은 더 어려워졌고 집안의 기대는 내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큰 인물이 될 것을 바랐다는 뜻은 아니다. 졸업과 동시에 돈 백이라도 벌어오기를 원했다. 물론, 나는 집에도 편입을 준비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바랐던 집에서 반길 리 없었다. 내가 생활비를 보태야 월세 낼 걱정이라도 던다는 말 앞에 나는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직 나는 젊으니까, 조금 일하다 보면 다시 도전할 기회가 올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교수님을 찾아갔다. 민망했지만 용기를 내어 취업의뢰가 들어오면 소개해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교수님은 알겠다고 하셨고, 지난번 그 회사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시며 아쉬워하셨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 뒤로는 취업의뢰를 하는 회사들이 현저하게 줄었다. 그나마 들어오는 곳도 내가 원하는 직종과는 무관했다. 취업 알선만 기다릴 수는 없어서 따로 구직사이트 여러 곳에 이력서를 올려 지원했지만, 면접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취업이 어려운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오랜만에 대학 동기랑 통화할 일이 있었다. 그 친구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다름 아닌 교수님께서 나를 소개하려 했던 바로 그 회사였다. 그 친구도 그때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보고 왜 지원하지 않았냐고 했다. 자기네 회사 괜찮다면서.


  결국 처음에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물론, 아무리 교수님 추천이라고 해도 내가 합격할 가능성이 100%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면접 기회조차 잡기 힘들었던 당시의 나에겐 그 놓친 기회가 너무나도 큰 떡으로 보였다.     


  문제는 그 이후로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맞는 거긴 한데, 그때가 후회가 되는 걸 보면 아닌 것도 맞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고 해서 늘 옳았던 것은 아니니까. 그때 그들의 말을 들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며, 호기심 반 후회 반으로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정답은 없다. 인생에서 내가 결정하는 것이 옳을 때도 있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럼에도 내 인생 한정이긴 하지만, 나는 좀 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특히 젊은 날에는 미숙했고 잘 몰랐기에. 


  기어코 나는 편입에 도전했으나 불합격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당시 선풍적인 인기였던 공무원 시험까지 준비하게 된다. 또다시 낙방.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의욕만 앞섰다.


  요즘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권유나 제안을 받으면 최대한 신중하게 고민한다. 여전히 고집이 세서 “그건 아니에요!”라고 칼같이 거절하려다 멈칫하고 다시 생각해 본다. 무조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모든 걸 다 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들으려 하는 편이다. 


  더 이상 나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기를 바라며, 내 마음이 하는 말에도 귀 기울이지만, 당신 마음이 하는 말에도 경청하는 연습 중이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걸,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사진출처: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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