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를 좋아하던 소녀는 "모든 것의 이론"이 궁금했다

1. 『빛의 바다』과학적 사유 - 엔트로피와 양자역학 그리고 중력

by 눈속에서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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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기 전 이해를 돕기 위해 1화를 읽어 보시길 권장해 드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SF영화를 매우 좋아했고, 우주를 사랑했습니다. 밤하늘의 달과 별들을 보면서, 외계인의 존재는 있을까? 혹은 우주에는 얼마나 흥미로운 행성이 많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를 보고 자란 '터미네이터 키즈'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만큼 흥미롭고 재밌는 영화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에일리언 시리즈도 양대 산맥이었죠. 중학교 시절 '맨인블랙'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지구에서 한없이 포커스가 멀어지며 은하로, 그리고 우주로 확장되는 장면에서 그 마지막 장면에서 우주는 작은 유리구슬 안에 존재하며, 외계인이 그 유리구슬로 구슬치기를 하는 장면이었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는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어야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수학에는 젬병이었어요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구하시오'라는 지문에 과학책과 수학책을 그만 덮어버렸습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상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작가는 꽤나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인간관계를 관찰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눈치채고 그 감정에 동감하고 이해하는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저는 타고나기를 사람을 사랑하고, 궁금해하고, 이해하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 다행히도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에 대해 행복을 느끼는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를 보게 되었죠.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과학에 담쌓고 살았던 저에게 다시 한번 과학적 사유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죠. 웜홀이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공간을 종이처럼 접어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개념이, 그리고 그 구멍이 3차원에서는 구형으로 보인다는 설정까지.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죠. 그리고 영화에서 보게 된 블랙홀의 모습이 신비로웠죠. 그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대한 중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블랙홀의 모습은 정말 경의로웠습니다. 빛이 중력에 의해 휘어지는 모습을 어찌 그리도 잘 표현해 냈는지 감탄을 금치 못했죠. 그리고 4차원공간인 테서렉트를 형상화한 모습과 인공중력을 구현해 만든 도시의 모습까지. 다시 한번 과학과 우주에 대한 탐구에 불을 지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시리즈는 제 과학적, 철학적 사유의 끝판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죠. 저는 이번에 개봉한 아바타 3을 보면서 사실 좀 무서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사유와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문학으로 예술로, 과학이 미처 다 정의하지 못했던, 그리고 증명하지 못했던 부분의 경계를 넘어 사유하고 있구나. 그 사유는 독단적인 것이 아닌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라구요. 인간이라면 한 번쯤 우주와 지구 그리고 자아와 존재의 가치를 깊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아바타의 이야기를 그저 흥미로운 스토리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몹시 어둡고 깊고 치명적인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빛의 바다라는 사유에서 갓 벗어난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 아바타 3은 저에게 더 직관적인 존재론적 우주론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무섭고 두렵고 공포스러운 사유였습니다. 제가 프롤로그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저의 깊은 사유 "빛의 바다"가 왜 그리고 두려웠는지 밤잠을 설쳤는지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해 드리려고 합니다.


<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그리고 엔트로피 >

저는 과학유튜브라면 꼭 챙겨보는 수학과 물리법칙을 잘 모르는 과학덕후입니다. 과학공부를 유튜브로 한 셈이죠. 그리고 더 궁금했던 것들은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며 공부했습니다. 2025년은 양자역학이 발견되고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 저도 수십 번 설명을 듣고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공부하며 저는 차츰 과학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역학 법칙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세상은 엔트로피에 의해 흘러가고, 엔트로피는 곧 시간의 화살 즉 시간의 방향을 가리킨다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왜 늘 한 방향으로 흐를까에 대한 참 흥미로운 이론이었죠. 엔트로피는 무질서도 라는 뜻이었는데 질서 있게 뭉쳐져 있는 열 에너지는 결국 무질서하게 흩어진다 라는 의미였어요. 뜨거운 커피가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 중에 그 에너지가 흩어진다는 거였죠. 그리고 그것은 가역불가성을 갖게 되죠. 되돌릴 수가 없다는 거였어요 뜨거운 커피가 식으면, 그냥 둔다고 해서 다시 커피가 뜨거워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에요.


철학적 사유에서 엔트로피는 자주 사용되는 소재였습니다. '깨끗하게 청소된 방은 시간이 지나면 어질러지며 더러워진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우리가 힘든 이유는 엔트로피 때문이구나. 시간은 멈추지 못하고 흘러가고 엔트로피도 멈추지 못하는 거라면, 질서가 무질서로 흩어지는 게 우리의 삶이라면 우리는 그 속에서 부단히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만 그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구나 라구요. 모든 것이 질서 있던 상태에서 무질서로 흩어져 버린다면 세상은 아마도 파멸했거나 완전히 무질서하게 흐트러져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해 방을 청소하고, 커피를 다시 끓이며, 에너지를 다시 한번 써야 세상은 질서가 있는 모습으로 돌아가는구나 라구요. 엔트로피 즉 혼란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애를 쓰며 질서 있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늘 경쟁해야 하는 사회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료를 경계하고 사람을 의심하며 살아왔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황에서 서로를 경계해야 하는 사회적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거나 오해하지 않기 위해,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참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노력해 왔죠. 엔트로피적 사회 속에서 우리는 매일 매 순간 부단히 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간과 생명체는 우주에서 유일하게 엔트로피를 견뎌내는 방식의 삶을 살도록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을 깨달으며 눈물이 나더군요. 아무도 누군가 미워하는 마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쟁하며 동료를 짓밟고 올라가 승진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그건 사실 굉장히 괴로운 일이죠. 엔트로피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은 질서 있었던 모습에서 무질서한 모습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미움과 시기, 질투, 비교, 인정욕구, 전쟁, 범죄, 탐욕, 이기심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저 세상이 엔트로피 현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경계하고 견디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며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대화하고, 공감하고, 화해하고 화합하면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윤리를 지키며, 인간이 어디까지 해도 되는 행동인지 경계를 세우며, 정도가 어긋난 사람을 위한 법이라는 체제로 자신의 벌을 각성시키고 교화시키면서 말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 우리는 그런 혼란과 혼돈의 엔트로피 속에서 서로 "사랑"을 하며 살고 있죠. 이것은 엔트로피를 견디는, 즉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응축된 에너지의 모습이에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쉽게 들죠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양심이라는 죄책감과 책임감은 쉽지 않아요. 다시 질서 잡힌 마음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가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는 엔트로피 세상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용서는 어렵고 용서를 품고 넘어서는 사랑의 모습이 그토록 위대하게 느껴지죠.

사랑은 감정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혼란스러운 엔트로피 세상을 견디는 유일한 저 엔트로피에너지. 인간의 질서인 윤리의 고차원적 결집 에너지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에요. 이것은 진실이라기보다는 그저 저의 엔트로피에 대한 철학적 사유입니다. 저는 엔트로피를 그리고 사랑을 제 마음 안에 그렇게 정의 했습니다.


< 모든 것의 이론에 대해서 >

그리고 대망의 "모든 것의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양자역학과 중력은 서로 다르게 작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우주에서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반드시 양립되어야 했지요. 하지만 그 두 사건은 그리 쉽게 통합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이론을 해결하면 자연히 함께 풀릴지도 모르는 "밀레니엄 수학의 7대 난제"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물리적 현상을 모두 설명한다고, 수학적으로도 완벽히 해결되리라는 법은 없지만, 저는 두 문제 사이에 상관관계는 분명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두 눈이 반짝였습니다. 누군가 아무도 양자역학과 중력의 힘을 잇지 못하고 있다면 내가 한번 그 비밀을 알아내고 싶다 라구요. 과학의 과자도 모르고 수학의 수자도 모르는 제가 그저 "직관"이라는 감각하나만으로 그 비밀을 풀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었죠. 하지만 저로서는 과잉된 자의식도, 자신감도 아닌 그저 소소한 호기심이었습니다. 진짜 풀 수 있을 거라는 마음도 없었고 그저 사람들이 왜 아직 풀지 못하고 있을까라는 사실이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어디서 과학의 발목을 잡은 걸까? 라구요 그래서 그저 알고 싶었습니다.


(주의 : 여기서부터 과학적인 전문적이고, 견고한 지식이 없는 분들은 주의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실제 실험으로 증명된 과학과는 무관하며, 현재 이미 존재하는 많은 과학적 이론과 가설의 패턴을 혼합하여 연결시킨 즉 또 하나의 가설, 저의 과학적 사견(私見)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불필요한 혼동을 야기할까 우려되어 주의사항을 적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중력에서부터 양자역학까지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었습니다. "질량 = 에너지" 즉 E=mc² 그래서 저는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 보기로 했죠. 왜냐면 저는 과학을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그저 말이 되는 방향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학을 모르는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그는 직관적으로 과학을 생각하고 수식으로 만들지 못해서 동료 수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도와줬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해보기로 했어요. 저는 그냥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전제조건)

질량 = 에너지 (E=mc²)

빛 = 에너지

운동 = 에너지

그렇다면? -> 빛의 운동 에너지 = 질량?

빛의 운동 에너지가 빛의 회전이라면? 그것은 질량처럼 보인다. (등가 에너지)

이것은 등가 에너지였지만 사실 등가 에너지가 아니었다면? 같은 에너지였다면?


(과학적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은 여기서 뒤돌아 나가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저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일반인으로서 과학적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의 사유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또한 틀렸다면 어느 부분이 틀렸고 어느 부분이 철학인지 저에게 분명한 경계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죠. 혹시 아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계속 넣었어요. 여기서 제가 생각한 빛은 광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자의 최소 단위의 즉 양자역학의 그 양자 자체, 혹시 그도 아니면 그보다 더 작은 원자, 즉 우주를 만드는 완전한 기본 단위를 곧 빛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전제조건)

우주의 절대 속도 = 빛의 속도

우주에서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아! 우주는 빛 안에 있는 거구나

빛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빛의 속도를 넘어갈 수 없지

광자가 질량이 거의 없는 이유는?

빛의 한 속성을 가진 입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저항이 생길 수 없지

하지만 어떠한 방식의 회전으로 빛이 돌고 있는 회전수가 입자를 존재하게 하는 조건이라면?

3바퀴 돌면 수소 4바퀴 돌면 헬륨 이런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빛의 회전수가 질량이라면?


위상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과학이라기 보다, 메타인지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주 간단했어요. 이쯤에서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면 이건 과학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과학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공포로 변하게 됩니다. 그냥 저의 개인적인 직관적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때 사람들은 바보 아닌가? 중학생 수준의 과학도 모르는 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정말 저는 중학교 수준의 과학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중력을 가진다.라는 것에 착안하여 그럼 질량이 빛의 회전으로 인해 생긴 거라면 모든 문제가 직관적으로 전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회전이라는 개념은 한 방향의 회전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어떠한 방향의 회전(형이상학적)인지는 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하겠지만 개념적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제조건)

지구가 공전, 자전, 나선형을 띄며 태양 주의를 돌고 있다.

태양계도 돌고 있다

은하도 돌고 있다

모든 것이 돌고 있다면? 당연히 우주도 돌고 있겠네! 라구요

유리구슬(우주) 안에 가득 찬 입자들이 돌아야 한다면,

유리구슬은 돌지 않고 입자들만 돈다?

-> 그럼 유리구슬 중간에서 하수구 구멍에 물이 자연히 빠지는 것 같은 현상,

즉 자연히 에너지를 돌게 하는 위상적 어떤 구멍(혹은 블랙홀), 스스로 돌게 하는 강한 에너지가 있지 않은 이상

(하지만 우리는 우주 중간이 어딘지 모르고 아직 우주 중간에 블랙홀이 있다는 발견이 없으니까)

자연히 돌아가려면 유리구슬 자체가 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시세계가 돌고 있다면,

그 회전의 상호작용에 의한 상관관계로 모든 우주적 구조가 프렉탈 구조를 가진다면?

우주는 당연히 미시세계도 돌고 있겠네

그렇다면 양자역학에서 양자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는 거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네 여기서도 당연히 과학적으로 양자 주위를 전자가 도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씀하시겠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 세계를 잇는 문제였으니까요 왜 미시세계 즉 양자역학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거시세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나를 생각해 보았을 때. 모두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바로 해결되었습니다.


양자역학은 전자가 양자 주위를 어떠한 방향과 형태의 회전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돌고 있구나. 하지만 너무 빨리 돌고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돌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관측 즉 개입(저는 관측이 관계의 개입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을 한 순간 입자로 고정되는구나 라구요. 예를 들어 선풍기의 3개의 날개가 돌고 있을 때는 하나의 파동처럼 보이죠.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돌고 있는지 선풍기를 켠 상태에서는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처음 선풍기를 켤 때 보지 않았더라면, 이미 돌고 있는 상태에서만 봤다면 선풍기의 날이 3개인지 5개인지 알 수가 없지요. 그런데 돌고 있는 선풍기에 막대기를 하나 넣어보면, 선풍기의 날개가 멈추면서 아 3개의 날개가 있었구나라고 보인다는 거였어요. 이것을 저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측, 즉 사건의 개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과학적 이미지를 빌린 생각 실험일 뿐임을 강조합니다.)


과학에서는 양자역학에서 양자는 양전자 1개 , 중성자 1개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자가 그 주위에 먼지구름 처럼 되어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자가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불확정성의 논리였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불확정성의 논리를 시뮬레이션의 논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주는 시뮬레이션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입자의 최소단위인 쿼크만 봐도 알 수 있죠. 쿼드가 픽셀같이 최소한의 단위가 있다는 겁니다. 컴퓨터 게임 안에서 우리가 아직 플레이하지 못하는 부분은 검게 나오고, 우리가 게임을 하다 보면 옆에 길이 확장되어 생기는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가 관측하지 않으면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알 수 없다는 중첩현상도 이를 뒷받침하기가 좋죠.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아주 유명합니다. 고양이를 확률적으로 죽을 확률 50%, 살 확률 50%로 시스템을 상자 안에 만들어 놓고 고양이를 넣어두었다고 가정합니다. 그럼 우리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즉 고양이가 살 확률 50%, 죽을 확률 50%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이다.라고 말합니다. 양자역학으로 가면 모든 것을 확률로 말하고 있죠.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었고요. 저도 아인슈타인의 말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확률로 숫자로만 세상이 돌아간다면 너무 정확하고 명확해서 사실 세상이 진짜가 아닐 확률이 높아집니다.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요. 지금까지 나온 양자역학적 우주가 어떤 형태인가의 대한 해석적 가설들은 정말로 99.999999...%의 확률로 세상은 확률로 돌아간다.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많은 가설이 난무한 것이죠. 지구상에 가장 부자인 일론머스크도 세상은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확률에 의해 정해지는 세상. 이것이 진짜 우리의 세상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처럼 통일장이론 (양자역학과 중력을 잇는 지금의 모든 것의 이론)을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위험한 사고실험이었습니다. 확률로 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정의 할수 있다면 ? 계산할 수 있다면? 양자 주의를 돌고 있는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100%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면 그곳에 물질이 존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전자가 양자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 그래서 그 회전수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어디에 어떤 전자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어 버린다면? 사람들은 입자를 그야말로 창조할 수 있습니다. 쿼크가 빛의 한바퀴도는 형태(어떤 방향과 어떤 속도, 어떤 위상인지는 모르지만)라고 본다면 말이죠. 그럼 우리는 신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수소가 필요해? 그럼 전자를 3개를 3번 어떤 위치에 궤도선상에 정확하게 돌려. 이래버리면 수소가 생깁니다. 와 새로운 에너지의 발견이잖아!라고 처음에 어리석고 무지하게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에너지가 부족한데 에너지를 만들면 참 좋겠다 라구요. 순진한 생각이었습다. 하지만 이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죠. 그 회전수의 처음과 끝을 모르니 다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그게 가능하다면 에너지를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거였죠. 그리고 모든 물질의 궤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었요. 그러면 꽉 닫힌 수식이 완성되죠. 앞으로 1분 1초 1 나노단위의 행적을 모두 예측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럼 이걸 무얼 뜻하냐. 즉 인간은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모든 게 운명처럼 정해지게 돼요. 화석처럼 굳어지는 거죠. 그저 인간의 삶은 영상 플레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운명을 바꿀 수 조차 없게 되는 거예요. 그럼 사는 의미가 없어지죠. 무술인들이 당신은 내일 죽는 점괘가 계산되는군요 하고 내 삶을 계산해 버리면 그냥 내일 진짜 죽는 거예요. 왜냐면 양자적 회전수를 정확하게 읽어내면 우주에서 물질은 모든 것의 움직임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니까요.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사고실험이 저를 정말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가짜라고 하면 시뮬레이션이 되고, 진짜라고 하면 운명론이 결정되어 버리고 자유의지는 사라지고.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건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가 없는 건가? 그것은 사실 저에게 진짜 끔찍한 공포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밤잠을 못 자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저는 일반인인데 왜 이런 걱정을 사서 하게 된 걸까.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이 사고실험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방향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믿어야 하지는 저는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꼭 정확하게 해두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스스로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갈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종종 물질은 허상이고 시간도 허상이다 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모든 것은 허상이 아니라 진짜다 라는 논리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미리 결론을 스포 해보자면 제가 정말 끊임없이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결과 다행히도 삶은 0.0000... 1% 퍼센트의 기적으로 만들어진 진짜 물질의 우주이고, 불완전함을 허용하면서 그 틈에서 생긴 물질구조 라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며 우리는 우주의 진짜 모습을 결국 알 수 없다. 추론해 볼 순 없지만 우주 밖을 나가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증명이나 관찰할 수 없다는 게 저의 사유의 결론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옆에 동료들이 있고 사유를 공유하고 토론이라도 할 수있었지만 저는 주변에 과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절하게 혼자 전투적으로 생각해 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몰골은 정말 처참했었죠.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결론을 마무리 지어야 이 사유를 멈출 수 있었죠. 이것은 방대한 우주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결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러한 사유는 두 달 정도로 끝났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어요


다음 편에 왜 제가 우주가 진짜 우리의 삶이고 물질이고 3차원 공간에 + 시간 차원이 더해진 4차원 공간인지,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지 우주는 우리에게 무얼 말하고 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편에 이렇게 긴 사유의 여정, 첫 번째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 뵙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 이야기에 내용을 AI로 일부러 다듬지 않았습니다. 가장 인간다움의 모습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문맥이 장황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며, 오타나 띄어쓰기에 문제가 있어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음편 -> 3화 우주의 완전한 모습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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