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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 Oct 24. 2021

문 너머의 사람 (하)

손재주가 좋았던 할머니는 일을 빠른 속도로 배워서 고향에다가 점포를 얻어서 개업을 하게 되었다. 부산 국제 시장에서 모직 실을 사다가 지게꾼에게 그것을 싣게 하여 자갈치에서 배를 타고 남해로 가 그 실로 옷을 만들었다. 이를 되풀이하면서 장사를 했고, 마침 편물이 유행하던 때라 시기를 잘 타 장사 규모가 점점 늘어났다. 옷을 만드는 기계도 세 대를 들이고, 직원도 여섯 명을 고용해서 사업을 했다. 그때에 오일장이 서면 사람들이 가게로 몰려와서 맞춤옷을 잔뜩 주문해 놓고 갔는데, 할머니는 손님이 옷을 찾아가기로 약속한 날짜를 지키기 위해서 밤을 많이 새웠다고 한다.   

   

남포동 국제 시장에서 모직을 사서 지게꾼이 편물 모직 한 지게를 지고 가는 것을 뒤에 따라가면서 보면 ‘저걸 언제 다 짜서 돈을 벌까’ 싶었다고. 그래도 할머니는 어연 십 년 동안 부산과 남해를 왕래하며 편물점을 계속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버니까 재미있었다고 한다. 일 년에 옷을 450장 가까이 짰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애초에 장사를 시작할 때 ‘딱 10년만 하고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는데 열중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남편의 사업도 날이 갈수록 그 규모가 커졌다. 그러던 와중에 마침 아이들이 태어났다.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 기분이 참 좋았다고 했다. “딸이 예쁜 짓을 해서 남편이 둘도 없이 예뻐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딸이 유치원에 소풍 갈 때도 따라갈 정도로 가정적인 남편이었다고 한다. 첫째 딸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할아버지는 학교 선생이 운동장 단상에서 ‘여기 나와서 노래 부를 사람?’하니까 딸이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들고나가서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춤을 추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아들 딸들이 모두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손자 손녀들도 보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남편의 병고였다. 할아버지는 20년 동안 당뇨와 합병증으로 고생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병원에 검진받으러 갈 때에 단 한 번도 혼자 보낸 적이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극진한 간병에도 불구하고, 3년 6개월 동안 더욱 고통스럽게 투병하다가 이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할머니는 남편이 술을 너무 좋아하여서 탈이었다고, '건강관리만 잘했어도 지금 둘이 놀러 다니며 알콩달콩 잘 살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로 다음을 꼽았다.                              


“子,     

 고민과 번민은 정제되지 않은 생각에서 싹이 올라온다고 하니 머릿속의 헝클어진 실낱같은 생각을 정리하여야 하고 실뭉치를 풀듯이, 또 장롱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의복들을 차근차근히 포개듯 정리하여 나갑시다. 보다 많이 구하면 많이 얻을 것이고 보다 많이 노력하면 많은 결과를 얻을 것이오니(……)”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떠난 지 한참 뒤에도 오랜 시간 함께 살았던 집에 혼자 지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장롱에 옷을 착착 개어 정리하여 넣듯이’, 자신의 삶을 잘 꾸려 나가려는 노력을 한다. 아파트 단지에 버려진 화초들을 거둬 집 베란다에 놓고 열심히 가꿔 1년에 한 번씩 피는 꽃을 보고 대견해했다. 영어 학원에 가서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물 건너온 커피 사탕을 나눠주며 친해졌다. 그러면서 매주 새 친구들이 학원에서 그를 은근히 기다리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그중에 한 명이 영자야, 그 사탕 참 맛있더라. 그거 어디서 산  거니?라고 물으면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우리 손녀가 사준 거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학생이 되어 열심히 숙제를 하고 젊은 선생님에게 빨간 펜으로 검사도 받았다. G-o-o-d! 시간이 지나 버스 광고나 간판에 적힌 영어도 읽을 줄 알게 되어 손녀가 놀러 오면 그 앞에서 자랑스럽게 읽어내기도 했다. k-i-t-c-h-e-n. 키친.                


명절이 되어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집에 오면 집 중앙부는 그들의 차지였다. 거실 한가운데 큰 상을 차려 놓고 밥을 차려 먹고, 과일을 나눠 먹으며 자식들이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어린 손자 손녀들이 뛰어놀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러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덩그러니 놓인 거실과 소파가 오롯이 혼자의 차지가 되었다.      


하루는 할머니가 나와 통화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고백했다. 어떨 때는 홀로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다가,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띵-하고 울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잠이 깨면 놀라서 영감 왔는가. 하고 읊조리며 문밖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곧 "에이, 다른 이야기 하자"라며 말을 돌렸다.    

            

나중에 내가 더 크고 나서, 엄마는 할아버지의 관이 땅 속에 묻히던 순간을 이야기해주었다. 할머니가 새하얀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관 위로 흙을 떠서 뿌리며 큰 소리로 영감, 잘 가소. 잘 가소.라고 흙으로 덮여 가는 관을 향해 작은 등을 굽혀가며 몇 번이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덧붙였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며칠 머무르며 내 방에서 함께 잠을 청한 일이 있었다. 나와 나란히 누워 잠이 들기 직전, 할머니는 장성한 딸이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사위를 맞이하러 대문으로 향하는 발소리를 방문 너머로 들으며 이렇게 말했다.                


“느그 엄마가 어렸을 적에, 느그 할아버지가 일 마치시고 집에 오시면은 고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안카나. 바닥에다가 튀밥을 맻 개 놓아노면 고거를 옴썩옴썩 주워 먹던 것이 참 예뻤는데… 그 어린것이 저레 커버렸나…….”               


고개를 돌려 할머니 얼굴을 쳐다보니 눈이 파르르 떨리다 곧 감겼다. 얇은 눈꺼풀 너머로 먼 기억을 더듬는 듯도, 이미 잠의 세계로 빠져 버린 것만 같기도 했다. 방문 너머로 부모님이 낮은 목소리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다가, 이내 두 사람의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날 밤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며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살게 되는 일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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