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낳던 날에 집에서 혼자 빨래를 하고 있었어. 그러다 진통이 와서 얼른 빨래를 마쳐야겠다고 생각했지. 진통이 점점 더 심해지기 전에 일을 다 해야 했으니까. 그러고 나서 혼자 책상에 앉아 진통 간격을 재서 기록했어. 처음에는 10분, 7분, 5분,... 그렇게 간격이 점점 줄어들면 그때 병원으로 가야 돼.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어. 아빠는 직장에 있었고 부모님은 다 지방에 계셨으니까.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 선생님이 보더니 아직 자궁 문이 다 안 열렸다고 해서 침대에 계속 누워있었어.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고 지나가던 간호사가 보더니 문이 다 열렸다고 왜 지금까지 누워있었냐고 얼른 분만실로 들어가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너를 낳는데 선생님이 자꾸 힘을 세게, 더 세게 주라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있는 힘을 다 해 힘을 몇 번 줬더니 응애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어. 둘째라 그런지 너희 언니 때보다 금방 나오더라고. 그런데 아기가 자꾸만 큰 소리로 울어서 어쩌나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내 가슴 쪽에 아기를 뒤집어서 엎어 놓는 거야. 그랬더니 엄마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는 울음을 뚝 멈췄어.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듣는 소리와 비슷해서 그런 거라더라. 참 신기하지.
아기를 다 낳고 나니 아빠가 근무를 마치고 달려왔고, 뒤이어 친척들과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지방에서 올라오셨다고 한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를 다 같이 보러 갔는데, 간호사가 아이를 안아 올려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해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엄마는 언니와 나를 낳고 우리 둘의 교육에 힘썼다. 당신이 과거에 일을 가지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매일 아침 우리 둘의 손을 잡고 마을버스를 타고 동네 도서관으로 가서 함께 책을 읽었다. 엄마가 옆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 언니와 나도 자연스럽게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도서관에서 한글과 영어를 익혔다.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읽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에 내가 유년 시절에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을 접했고, 마지막 책장을 넘겨 끝나버린 이야기의 다음을 상상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이 있으면 혼자 공상하며 내 마음대로 바꿔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더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년이 지난 뒤, 엄마와 함께 단 둘이 놀이 공원에 간 적이 있다. 오래 전의 일이라 정확히 거기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하나의 장면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날 내가 졸라서 "혜성 특급"이라는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혜성 특급은 위험한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2인용 의자에 두 사람이 앉아있으면 좌석이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빠른 속도로 트랙을 따라 지나가는 롤러코스터다. 놀이기구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지구를 출발한 우주 열차가 태양계 행성들을 지나 목성에 불시착한 우주선 주변을 맴돌다 금성 주위를 통과해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전에도 친구들과 혜성 특급을 타본 적이 있어서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지만, 막상 롤러코스터의 속도가 높아지니 흥분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해서 소리를 와와 질렀다. 평소에는 그렇게 마음껏 소리를 지를 일이 없기 때문에 이 기회에 많이 질러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의자 너머로 실내의 중앙부에 매달려 있는 혜성 모형들이 보였다. 롤러코스터 트랙은 그 주변을 따라 거칠게 달렸다. 꼭 감았던 눈을 살짝 뜨면 어두컴컴한 실내 가운데에 가짜 우주와 인공 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롤러코스터는 쉭-쉭-하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그런데 엄마는 의자가 돌아가는 내내 팔로 나를 꽉 감싸고 있었다. 마침내 운행이 종료된 뒤 나는 조금 어질어질해진 채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옆에 있는 엄마는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 채로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혜성 특급이 엄마에게 너무 무서웠나 싶어서 괜찮은지 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고민하는 얼굴로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거기 의자가 너무 크고 너는 너무 작아서. 애 잃어버릴 까 봐, 애 잃어버릴 까 봐 걱정이 됐어.”
알고 보니 소파처럼 푹신하게 생긴 2인용 의자에 엄마와 내가 나란히 앉으니, 체중이 더 나가는 엄마 쪽으로 의자가 기울어져 롤러코스터를 타는 내내 내 몸은 반대로 공중에 조금 떠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엄마가 말해주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는 두 딸이 공부를 마칠 때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다 대주셨다. 언니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 엄마는 밖에 나가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게 내내 은근한 긍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공부를 무리하게 하며 몇 번 아프고 나서 엄마는 가끔씩 자고 있는 내 손을 밤에 아프도록 꼭 잡고는 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을 때도 엄마는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면서 원하는 공부를 하게 해 주셨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도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러면서도 건강하기만 해라, 건강하기만 하면 돼.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엄마의 엄마를 만나러 부산으로 간다. 엄마는 할머니를 만날 때면 아이처럼 변한다. 별 것 아닌 일로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낯설고 싫었는데, 이제는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할머니는 며칠 뒤 엄마가 집에 없을 때 내게 따로 당부했다. 정혜야, 너한테 엄마는 너희 엄마지만, 또 너희 엄마의 엄마는 할머니거든. 엄마의 엄마로서 할머니가 부탁할게. 엄마한테 잘해주세요. 할머니도 잘할 테니까. 알겠지요?
엄마와 함께 엄마의 고향인 부산 앞바다를 걸을 때면 평소에 집 앞을 산책할 때처럼 대화를 하기보다는 함께 손을 잡고 가만히 걷는다. 규칙적으로 오가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크게 울리지만 시끄럽지 않은 소리다. 나는 맨발로 축축한 모래를 밟고 발을 튕기며 발가락 끝으로 물이 튕겨져 나가는 모양을 관찰한다. 작은 소리가 큰 소리 위로 겹쳐진다. 그러다 가끔씩 멈춰 서서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나는 발목을 쓸고 가는 파도를 피부로 느끼며 태어나기 전의 나를 상상한다. 엄마 뱃속에서 두 눈을 감고 유영하고 있었던 나. 컴컴하고 따뜻한 곳에서 엄마가 먹는 음식을 먹고, 음악을 함께 듣고 엄마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듣고 같은 감정을 공유했을 것이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져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광대한 바다보다 더 큰 우주에서 엄마와 딸로 만나 어딘가로 간다. 바다에 있는 해가 떠서 지기까지 십오 분. 우리는 붉디붉은 해가 찬란하게 마지막을 빛내다가 수평선에 닿아 선이 되었다가 마침내 그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일상은 처음과 끝이 정해진 놀이기구와는 다르게 불분명하고 모호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떨 때는 버티며 그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지난한 삶의 순간들도 있다. 나는 엄마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커가면서 자꾸자꾸 다른 곳을 향해 갈 것이다. 내가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엄마가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엄마가 잘 모르는 학문을 공부하고 엄마가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엄마가 못해본 일을 하며 돈을 벌 것이다. 그러다가도, 삶의 어느 지점에서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앞으로, 앞으로 가야 할 것만 같은 순간마다 엄마가 나를 꽉 잡아 주었던 순간을 기억해낸다.
엄마가 나를 보고 활짝 웃을 때마다 비뚤어진 아랫니가 보인다. 나는 엄마가 나를 낳기 위해 온 몸에 힘을 다 해 애썼다는 증표를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내 나이에 혼자 병원 침대에 누워 용감하게 나를 낳고 길러낸 우주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