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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 Oct 24. 2021

우리는 우주에서 만나서 (상)

엄마는 언니를 낳고 나서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안에 크고 작은 갈등과 문제가 생겨나 마음이 답답해 터질 것만 같을 때마다 언니를 업고  근처에 있는 해안가를 하염없이 걸으며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속병이 났고, 뒤이어 살이 빠지고 몸이 허해져  오랜 기간을 몸져누워있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건강을 되찾고  째를 낳은    만에 나를 낳은 것이다.     


어느 날은 감기에 들어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언니와 다섯 살 차이가 난다는 말을 하자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안 낳으려다 낳았나 보다. 아마도 언니와 나의 터울이 꽤 지기 때문에, 자녀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겨 낳게 된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나의 기원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한 마음에 내가 나를 낳은 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달라고 말하면 엄마는 그때마다 항상 비뚤어진 아랫니 하나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은근히 자랑스럽게 웃으며 너를 힘주어 낳다가 이를 너무 꽉 깨문 나머지 엄마 이가 이렇게 비틀어졌다고 덧붙였다.          


엄마는 세 남매 중 첫 째 딸로 태어났다. 대학교 새내기 때 할머니가 금반지를 사주셨는데, 곧을 정 자를 새겨서 선물하셨다고 한다. 그 글자처럼 엄마는 대학 다니는 내내 일탈 한 번 하지 않고 모범생으로 지냈다. 곱슬머리 때문에 깔끔하게 종종 땋은 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머리 모양이 특이해서 “사회학과의 마스코트”라고 불렸다고 한다. 엄마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인기가 많아서 친구들이 당신과 항상 어울려 다니고 싶어 했다고 자랑했다. 친구들과 무얼 하며 놀았느냐고 물으면, 시골에서 부모님이 딸기밭을 하는 친구가 같이 딸기밭에 가지 않겠느냐고 권유해서 여학생들끼리 딸기밭에 놀러 간 날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또 어느 날은 비가 왔는데, 한 친구가 비 오는 날에 태종대에 가면 그렇게 운치가 있고 또 배를 타면 무척이나 재밌다고 해서 따라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배를 타니 배가 심하게 흔들려 멀미를 해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반 실신해서 집에 돌아왔다고 말하며 소녀처럼 깔깔 웃었다.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를 중매로 만났다. 다른 남자와 연애하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연애 한 번 못해보다가, 아빠를 다섯 번 만나고 결혼했다.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해서 아빠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또, 세 번째 만났을 때 같이 밥을 먹는데, 아빠가 된장국 그릇을 먹기 좋게 기울여주는 모습과 볶음밥에서 새우를 골라 앞에 놔주는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고 한다.                


엄마는 결혼 후 1년 동안 시집살이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첫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는 날에 배가 너무 고파서 간호사였던 친구에게 아이 다 낳으면 병원에서 미역국을 주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담대한 성격 탓에 아이 낳는 것이 그리 무섭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진통은 점점 심해지고, 마지막 한 시간 동안은 차라리 누가 당신을 죽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가 아팠다고 한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내가 엄마에게 첫 아이를 낳으니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아이가 무사히 나왔는데, 얼굴이 주먹만 하고 팔다리가 어찌나 얇고 긴지 신기했다고 대답했다.        

   

다 낳고 나니까 배가 하나도 아프지도, 고프지도 않았다. 엄마가 덤덤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면 나를 낳을 때는 어땠어? 내가 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기억을 더듬으며 찬찬히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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