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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 Oct 07. 2022

마당 있는 집

아침에 눈을 뜨면 막 베어낸 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어서 두두두 울리는 기계음이 사방에서 겹쳐 들려왔다. 그 소리에 못 이겨 눈을 비비고 일어나 거실 문을 열고 나가면 평소와 다르게 어수선한 마당의 풍경이 보였다. 어릴 때 빨간 벽돌로 지어진,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살았다. 비가 오고 난 뒤면 마당에 잔디와 잡초가 무성히 자라났다. 부모님은 그것들이 마당을 여백 없이 빽빽하게 점령하기 이전에 사람을 불러 예초를 하게 시켰다. 그런 날이면 마당에 막 베어낸 풀들의 머리채가 군데군데 쌓여있었고, 날 것을 잘라낸 단면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집 안까지 파고 들어와 진동을 했다.      


그 집에 살 때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 나이였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가족이나 동네 친구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의 기대와 다르게 그곳에서 도저히 재미도 찾지 못했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정도 붙이지 못해서 매일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큰 소리로 울었다. 결국 엄마는 내 고집을 꺾지 못하셨고, 이내 나를 등원시키기를 포기하셨다.      


교육 기관에 가는 대신, 나는 자연에서 뭔가를 배우기를 택했다. 계절 별로 달라지는 흙냄새나 벌레들의 종류, 꽃들의 향기나 색깔 같은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노는 것이 좋았다. 그때는 벌레가 징그럽다거나 잡초가 해가 된다는 인식조차 없이 자연 속에서 뛰어놀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보이는 것들을 허리 숙여 찬찬히 관찰하고 가지고 놀았다. 여름철에는 언니에게 배운 대로 방아깨비의 뒷다리를 잡고 그것이 열심히 방아 찧는 모양새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놓아주었고, 가을이 되면 아빠와 함께 내 키보다 큰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숨 죽여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잡았다. 작은 생명체가 내 손 안에서 파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애처로워 보였다. 그때 내가 깨달았던 것은 내 작은 손 안에서도 충분히 어떤 생명체가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과, 대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하나의 결로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풀들이 더 억세지고 색이 짙어지기 이전에 동네 사람들은 손에 빈 쌀자루며 호미, 주머니칼 같은 것들을 챙겨 우리 집 마당에 모였다. 유치원에 가지 않아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엄마를 따라 작은 바구니를 챙겨 함께 쑥을 뜯으러 갔다. 어른들은 겨울을 버텨 봄에 피어난 것들을 예뻐하고 대견해했다. 그러고는 미리 챙겨 온 빈 자루며 봉지에 쑥이며 달래, 물가에 핀 돌미나리 같은 것들을 능숙한 손길로 캐서 담았다. 양손에 봄나물로 가득 찬 자루를 쥐고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는 부엌에서 분주히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가 완성되면 더운 김이 폴폴 나는 쑥국을 입에 넣고 씹었다. 흙에서 마음대로 나고 자란 것들은 흐르는 물에 아무리 씻고 열을 가해도 입에 넣어 씹었을 때 은은한 흙내음이 끝에 퍼졌다. 아빠는 그걸 봄 냄새라고 했다.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가족들과 함께 거실에 얇은 이불을 편 뒤 다 같이 누워 잠을 청했다.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불이 꺼지고 얼마 후면 선풍기가 돌돌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와 잠에 빠져 규칙적으로 내뱉는 가족들의 숨소리가 어두운 공간에 울려 퍼졌다. 단순히 잠자리만 내 방에서 거실로 옮겼을 뿐인데, 일상적인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고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상상했다. 모두가 잠든 밤, 귀를 기울이면 집 안의 가전제품들이 돌아가는 소리며,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내가 모르는 언어로 가정한 뒤 상상 속 작은 인간들이 대화하는 소리라고 상상했다. 나보다도 더 작은 사람, 또, 앞으로도 영영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을 상상한 뒤 가상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설정하며 놀았다.      

새로울 것 없는 비슷한 일상을 보내던 시절에 했던 공상은 이면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의 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혹은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읽었던 책 속 인물들처럼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의해 오늘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일이.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내일 눈을 뜨고 일어나면 오늘 본 풍경과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되거나, 신비로운 어떤 존재에 의해 몸과 마음이 압도되고 마는 상상을 했다.          


아침이 되어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가면 눈앞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풀들이 빳빳하게 정렬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막 베어낸 잔디밭 위로 발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길 때마다 가지런한 풀들의 단면이 신발 밑창을 스치는 느낌이 좋았다. 기르던 개와 마당을 뛰어다니며 반나절을 놀았다. 그러면 꼭 웃음이 터졌는데 옆을 보면 개도 활짝 웃고 있었다. 왜 누군가와 함께 있는 힘껏 달리고 나면 웃음이 나오는 걸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뛰고 난 다음에야 큰 소리로 터뜨릴 수 있는 웃음을 만면에 지었다.      

       

그 집에서 몇 년을 더 살고 초등학교 삼 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왔다. 새로 살게 된 아파트에는 마당이 없었고 기르던 개는 이사한 집에서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가 출산 직후에 숨을 쉬지 않았다. 아빠는 어미 개가 밥을 먹는 동안 숨을 거둔 새끼를 조용히 빼 와서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개는 밥을 다 먹고 나서 죽은 새끼가 원래 있던 자리를 몇 번이나 빙빙 돌며 냄새를 맡았다. 그러기를 며칠, 개는 체념한 듯이 다시 자리를 잡고 누워 남은 다섯 마리에게 열심히 젖을 먹였다. 새끼들이 날이 갈수록 몸집이 커지던 어느 날, 어미 개는 갑자기 생명을 달리 했다. 처음 맞이하는 정든 존재의 죽음 앞에서 나는 온몸에 힘을 쥐어짜 통곡했다.        

        

가족들의 염려와 달리 나는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무리 없이 적응했고 반장까지 도맡아 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은 나를 이름 대신 반장, 하고 부르기도 했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종종 번호로 호명했다. 깨닫기도 이전에 나는 다른 세상에 던져져 나를 모르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미묘한 삶의 법칙들을 배웠다.


어느 주말,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가슴 쪽이 아팠다. 만져보니 작은 몽우리가 딱딱하게 만져졌다. 엄마. 나 가슴이 아파. 엄마는 처음에는 놀랐다가 이내 통증의 원인을 알아챘다. 그러고는 이제 내 몸이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루아침에 어른이라니? 내가 원한 적 없는 변화가 왜 나에게 찾아오는 것일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수록 고통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유년, 마당 있는 집 거실에 누워 밤이 되어 어둠이 내려앉으면 나는 다시 다른 세계를 상상했다. 밖에서는 낮에 조용했던 풀벌레들이 깨어났다. 밤에 우는 벌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소리로 반복된 리듬을 만들어내며 울었다. 아마도 한바탕 베어낸 풀들 사이에 놀라 몸을 사리고 숨어있었을 것이다. 그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잠에 빠져있었다. 안도 밖도 아닌 곳,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이 공존하는 곳.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우는 곳. 그러다 어둠이 성큼 찾아오면 많은 것들이 변해있을 것이다. 보지 못하는 곳에서, 바람이 부는 방향, 나뭇잎의 색, 오늘 살아있었던 어떤 것의 목숨이나 마음의 모양 같은 것들이. 나는 그곳에서 정의할 수 없는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들으며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변하고 몸이 자라던 시절을 통과했다.



집 마당에서의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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