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동네 엄마와 함께 타로점을 보러 갔다. 질문 세 개에 1만원 하는 타로점이었는데, 개업이벤트라고 했다. 사주는 두 번 정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타로점을 돈주고 보러 간 적은 처음이라 반신반의. 재미삼아 보러 갔는데 생각보다 아늑한 공간이었고, 동네 엄마가 타로점을 먼저 보는 동안 머물렀던 대기실은 내가 좋아할만한 책들이 가득 꽂혀 있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무료하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었다.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와 남편, 세 아이의 진로가 궁금하다고 했다. 타로상담가는 '이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며 카드를 쫘악 펼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론은 이랬다. 첫째는 알아서 자기 길을 개척할 것이고, 막내는 욕심이 많아 돈을 잘 벌거라고. 다만 둘째는 많이 엉뚱하니 잘 키워야 한다고도 했다. 곁에서 지켜본 아이들의 성향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져 신기하기도 했고, 엉뚱하다는 말과 욕심이 많다는 말과 알아서 자기 길을 개척한다는 말의 양면성을 알지만, 그래도 좋게 해석해주신 타로상담선생님 덕에 지갑을 여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결국 1만원이 아니라, 5만원짜리 가족상담을 하게 되었다.
'저의 진로는 어떤가요, 선생님?'
내가 알고 싶었던 진짜 질문을 했다. 그 때는 남편도 직장생활에 힘들어하고 있었고, 나의 하루하루도 권태롭기는 마찬가지였을 때였다.
“앞으로도 돈을 버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거예요. 돈을 버는 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본인이 그런 일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50대가 되어서야 돈을 좀 벌거라고 했다. 조금 더 고생을 하셔야 한다고. 늘 다음 10년은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에 살아왔는데, 여튼 다행히 이제 50대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다고 할까. 그나마 나는 좀 더 나은 상황이었고, 남편은 스트레스 받는 직장이라 하더라도 버텨야 한다고 했다. 회사를 나와도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는 애들의 진로가 아니라, 우리 진로를 찾아야 해.
몇 달 전 딸아이가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나에게 와서 마음이 심란하다고 했다. 자기 친구들은 잘하는게 하나씩은 있고, 꿈도 분명해 보이는데 자기는 잘하는 것도 꿈도 없다며 울먹이다가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하더니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만화책을 보던 둘째도 눈이 동그래져서 누나를 쳐다보았는데, 나 역시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 지 한참을 쳐다보다가 딸 입장에서는 위로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던졌다.
"엄마도 마찬가지야."
연암 박지원은 20대에 공부는 뒷전이고 글쓰기에만 전념했고, 30대에는 우울증으로 과거시험도 못봤지만 50대에 사촌형을 따라갔다가 쓴 청나라 기행문 <열하일기>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박지원의 50대 성공신화도 결국은 20대,30대의 치열한 글쓰기의 결과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그런 20대, 30대의 치열한 노력의 과정이 있었을까. 아침마다 일어나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늘 어렵고, 필사하는 재미도 처음 만큼은 아니지만, 이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뒷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절로 드는데, 이제 나도 뒷심을 발휘해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40대의 진로 걱정이 무겁기만 하다. 그나마 이제 내가 잘하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게 되었으니, 그것은 오랜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 다져진 큰 무기일런지 모르겠다. 성급하지 말고, 다시 차근히 사춘기 때의 마음으로 내 진로를 찾아봐야지. 진로, 그것은 영원한 숙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