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님이 Sep 20. 2022

실패한 꿈 위에 다져진 우리들의 취향

기록 덕후의 일기 이야기 (2)

  

  실패한 모닝 페이지와 상관없이 <아트스트웨이> 모임은 즐거웠다. 처음엔 책모임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우리는 책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슴속에 쌓아둔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집에서 싸온 과일과 간식을  나누어 먹고 떠들다 보니, 아티스트와는 점점 멀어지는 모임이 되었지만, 생기 있고 행복했던 모임이었다. 우리의 가능성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모임을 하던 어느 날, S 언니는 40을 앞두고  알록달록 고무줄로 양갈래 머리를 땋고 모임에 나타났다. 자기 안의 창조성을 위해 소녀 감성을 찾고 싶다고 말이다. 우리는 그때 물개 박수를 치며 그 언니의 도전을 응원했는데, 그렇게 하고 직장까지는 출근하지말라고 조언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마음에 걸린다.


  모임을 진행하며 늘 씩씩했던 K 언니는 모임을 하다가 영감을 얻었다며 두 미취학 어린이들을 데리고 독일 여행을 감행했다. 남편이 반대하자 쿨하게 남편을 빼버리고, 독일 이민의 사전답사를 한다며 두 아이와 독일로 여행을 떠나 버린 것이었다.

  

  물론 여행 후에 우리 앞에서 더 이상 독일 이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니의 독일 여행이 어땠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여행 후 더 씩씩하게 한국에서의 일상을 살아냈으므로, 몸은 고돼도 마음은 단단해진 여행이었으리라 짐작해 볼 뿐이다.

  

  나보다 어렸던  G는 평소에도 다시 태어나면 갈매기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모임을 하면서 새를 찍겠다며 새가 잔뜩 그려진 책을 사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부터 새를 그리고 탐조를 위한 망원경을 사서 지인들에게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내 주변에서 새에 대한 지식을 그녀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 친구의 꿈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새를 찍는 카메라 때문이었다. 새를 찍기 위해서는 새가 눈치채지 못하게 멀리서 찍어야 하고, 허공을 날아오르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전문 카메라가 필요했는데, 그런 카메라의 비용은 듣기만 해도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독일 이민을 가겠다는 K언니마저도 응원했던 우리였지만, 카메라 비용 앞에서는 모두가 입을 다물 정도였으니까.


  12주 우리의 모임이 끝난 후에도 G는 많은 고민을 했었을 것이다. 카메라 비용에 좌절했는지 아니면 정말 관심사가 변했는지 어느 날부터 그 친구는 새가 아니라, 나무와 꽃을 찍으러 다닌다고 했다. 지금도 한 번 씩 그 친구가 찍어 올린 꽃과 나무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나는 그 친구가 찍고 싶어 했던, 허공을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새를 혼자서 상상해 보고는 한다.

  

  생각하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그립다. 빛나는 꿈을 꿈꾸었지만 현실 앞에서 하나같이 실패했던 나의 친구들. 내가 한없이 좋아했고, 닮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다. 돌아보니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만의 확고한 취향은 타인의 애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직면하고 고민하고 애써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읽었는데,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나만의 단단한 취향은 나를 탐구하는 시간 없이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이루지 못할 꿈만 가득한 일기면 어떠한가.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일기라면 또 어떤가. 한심해서 눈물이 핑 도는 기록이라도 별 수 없다. 나의 단단한 취향을 만드는데, 일기보다 더 좋은 것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으니. 오늘도 계속 일기를 쓰는 수밖에.


“제가 일기 쓰는 것에 대해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은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기적을 만들기 위한 6가지 핵심 습관. 중에서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