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후보선수들을 응원하며..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대체적으로 지루하다. 아니, 거의 전 경기가 지루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시즌 경기에서 볼 수 있는 긴장감이 부족한 이유는 승부보다는 선수들의 기량, 컨디션 점검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9명의 주전 선수 중 거의 7~8명은 고액을 받는 주전 선수들이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확정되어 있다.
남은 한 두 자리를 위해 수 십 명, 미국은 백 명이 넘는 선수들이 시범경기에 참가해서 주전기회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시범경기 자체는 지루할지 몰라도, 한 두 자리를 차지하려 경쟁하는 선수들에겐
한 타석, 한 경기가 피 말리는 긴장감의 연속이다. 그들에겐 우승을 확정 짓는 챔피언 시리즈보다
몇 배는 더 긴장감이 넘치는 경기의 연속이다. 한 발만 헛디디면, 바로 추락이니까.
주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관점에서 보면, 시범경기는 결코 지루할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경기이기도 하다.
여자프로배구는 흥국생명이 일찌감치 1위를 확정 지었다. 아직 시즌 경기를 남겨 둔 흥국생명은 챔피언전을
위해 김연경, 김수지 등 노장 선수를 주전에서 빼고 경기를 치르고 있다. 은퇴 투어를 하는 김연경 선수의
경기에 김연경 선수가 뛰지 않는 아쉬운 경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팀은
우승이 목적이니까.
주전 선수들이 빠진 자리에 후보선수들이 출전하고 있다.
주전 선수 대신 출전하는 후보선수들은 2군 경기가 없는 여자프로배구의 특성상 이번 시즌 경기에
거의 처음 출전하다시피 하고 있다. 흥국생명이 우승을 일찌감치 확정 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순위 싸움을 하거나, 탈꼴찌 싸움을 하는 팀은 주전 선수를 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흥국생명의 후보선수들은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를 잡은 셈이다.
지난 경기에서는 변지수 선수가 오랜만에 출전한 탓에 긴장을 한 것인지, 경기감각이 떨어진 탓인지
실수를 연발한 뒤에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얼굴에서 그 절박함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수에 긴장을 했는지, 다시 실수하고 교체된 뒤에 눈물을 짓는 모습에서 그 절박함의 크기를 알 수
있을 듯했다.
사실, 혹여나 팬서비스 차원에서 김연경이 나오지 않을까 하며 경기를 대강대강 보다가 변지수
선수의 모습 덕에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상대는 거의 주전멤버들임에도 후보선수들로 구성된
흥국생명은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좀 더 경기에 집중해 보니,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게임에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경기에 더더욱 집중되었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누군가의 절박함을 담보로 경기를 즐기자는 고약한 마음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보는 경기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담긴 경기를 보자는 것이다.
이들의 경기가 특별한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실력을 모두 보여주려는 비장함이 1위를 확정 지어
승부에 대해 무감한 팀의 경기의 긴장감을 확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절대
재미없을 수 없는 경기다. 김연경이 출전하지 않는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겠지만, 다른 경기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묘미가 있는 경기다.
그렇다고 동정심으로 보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
후보 선수들에겐 한 경기 한 경기가 큰 경기이다. 자신의 입지를 좌우할 수 있는 경기에서 그야말로
자신이 갖은 실력을 온몸으로 뿜어낼 것이다. 그들의 비장함은 경기력과 긴장감에 좀 더 힘을 보탠다.
그런 경기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관람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김연경이 어느 정도 출전할지 모르겠지만, 후보선수들의 절박한 관점에서 보는 경기의 재미가
다른 경기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출전하는 후보 선수들도 많은 이들이 봐주길 원할 거다.
오늘 흥국생명의 경기가 있는데, 김연경 선수가 혹여나 출전하지 않는다고 외면하지 말고,
배구팬이라면 많은 이들이 봤으면 좋겠다. 그들이 보여주는 비장한 경기력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