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빛, 말빚

by 스마일한문샘

별난 학생이 있었고 더 별난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드문 길 꿈꾸며 조금 엉뚱한 아이에게 늘 너그럽고 따스하던 어른이 계셨습니다. 할 수 있을지, 잘 가고 있는지 마음 앓을 때 묵묵히 믿으며 응원해 주시던 인생 선배님은 여린 제자에게 호롱불 닮은 별빛이었습니다.

꽤 많은 말을 해 주셨는데 스물 한 살 어느 날 들은 말씀이 가장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잘 공부해서 한국 한문학계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라." 그 믿음 다 이루어 드리지 못했으나 맑은 어른이 들려 주신 말씀은 오래오래 고운 빛으로 남았습니다. 가끔 흔들리거나 바닥 두드리는 날 그 말씀이 저를 깨우고 일어서게 합니다.

인사기록카드 보다 교육공무원 총경력 '19년 7개월 12일'에 눈이 멎었습니다. 육아휴직 8년 했지만 기간제 교사 8개월 22일 더하면 13년. 열네 살에서 열아홉 살까지 여러 아이 만나고 몇몇 아이에게는 훌쩍 자란 뒤에도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으나 어린 날 은사님처럼 깊고 맑은 말을 선물했는지는 글쎄요. 25년 전 말씀은 제 삶에 말빛이면서 말빚이기도 합니다.

수업일기 정리하다 몇몇 아이 말을 한 번 더 봅니다. 빛이 되는 말을 나누려 선생이 되었는데 어떤 날은 아이 말이 빛으로 다가옵니다. 가끔 힘든 날 있어도 소소하고 다정한 말빛에 툭툭 털고 일어섭니다. 아이들에게 말빛 받고 말빚 지는 만큼 말한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는 어른이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복되고 무거우며 조심스런 발걸음이니까요.

퇴근길 풍경입니다. (20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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