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첫 책은 평범한 식빵입니다
혼자 편하게 쓰는 글이라고 생각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지만 그래도 초반에 내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를 써보기로 했다. 모르시는 분들에게 말하자면 나는 그림책 작가다.
나는 얼떨결에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꿔보지도 못했다. 능력 있고 대단한 사람들이나 작가가가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 선을 그었다. 게다가 글만 쓰는 것도 힘든데 그림까지 그리는 그림책 작가는 더욱더 꿈꿔본 적이 없었다. 입시 미술을 하긴 했지만 입시학원에서 제일 잘 그리는 학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어영부영 영상 디자인과를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영상 디자이너가 되어 회사를 다니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마음속에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 차 있던 나는 20대 후반이 되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다가 계속 회사만 다니는 거 아니야?' 나는 다급히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타고 나는 호주로 떠났다. 가슴엔 희망찬 다짐이 가득했다. ‘그래!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여행도 다니는 거야!’
그렇게 호주로 떠난 지 1달이 좀 넘었을까?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해졌다. 나는 한 카페에서 올라운더로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호주 정부는 생필품, 식료품 가게 말고는 모두 다 문을 닫는 셧다운(Shut Down) 정책을 내놓았다. 알다시피 커피는 생필품이 아니다. 나는 커피 없이 하루도 살기 힘들지만 그건 법적으로는 생필품이 아니었으므로 호주의 모든 카페는 테이크 아웃만 가능토록 강제 전환이 되었다.
카페에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고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일자리를 잃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고 많은 외식업에 종사하는 많은분들이 어려워졌다. 그리고 생필품을 사러 가는 정말 꼭 필요한 일 외에 2명 이상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런 사실보다 더 무서웠던 건 동양인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동양인이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편은 자꾸 사라졌고 나는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었다.
코로나 때 집에만 있던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각종 미디어를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집안에서 사람들은 점점 지루해져 가고 10,000번을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만들었다.)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아무거나 그렸다. 내가 마신 커피, 책상 위 물건을 그렸고 플랫메이트들의 얼굴을 서로 그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뭘 그리지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오늘 아침 뭐 먹었지?' 하고 떠올려봤다. 내가 당시 매일 아침 먹었던 것은 식빵이었다. 처음에는 식빵에 버터만 발라 먹었다. 그러다가 딸기잼을 발라 먹었고 조금 뒤에는 그 위에 치즈를 얹어 먹었다. 나중에는 토마토 같은 것도 곁들여 먹었는데 점점 화려해지는 식빵이 재미있다고 플랫 메이트들과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거다!' 싶었다. 점점 화려해지는 식빵은 평범하지만 어떤 재료를 더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바뀌는구나. 그렇게 <평범한 식빵>의 메인이 되는 줄기가 머릿속으로 휘리릭 지나갔다.
다른 빵과 비교하면서 시작되는 이 그림책은 초라해진 나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래!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여행도 다니는 거야!’ 라며 호기롭게 시작했던 워킹홀리데이는 꼼짝없이 갇혀서 모아둔 돈만 축내는 상황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SNS를 보면 친구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고 인디 뮤지션의 앨범 커버를 그리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초라해진 나의 마음과 아침마다 먹던 식빵이 만나서 <평범한 식빵> 이야기가 탄생했다. 책을 만들어 본 적도 없지만 시간이 많으니 묵묵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출판까지 이어지게 된 계기도 나름 재미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보도록 하겠다.
<평범한 식빵>은 그림책이지만 어른들이 더 좋아했다. 나의 진심과 실제 상황에서 비롯된 이야기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는 식빵이에게 많은 분들이 감정이입을 해주셨다.
그렇게 꾸역꾸역 마음을 누르며 타지에서 작업했던 것이 책이 되어 나를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이 긴 글을 읽은 당신이 지금 힘든 과정을 지나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곳으로 당신을 데려다주는 터널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언젠간 밖으로 나가는 길이 빛을 통해 어둠 속에서 반드시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