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주파수, 나의 기억 속으로
대대로 농사를 짓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빠는 지역의 대표적인 명문고를 졸업하신 뒤에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셨다. 대신 두 여동생들은 도시의 명문 대학을 나와 교육 분야에 헌신하고 있다. 아빠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어려서부터 기술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등장하기 전부터 햄(HAM)이라고 하는 아마추어 무선 통신을 쓰셨다. 아빠의 약간 유치한 콜싸인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단파 라디오는 내가 어린 시절에는 정말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었다(요즘도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다. 골동품이라서.) 핸드폰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 면에서 가장 먼저 모토로라 스타텍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셨다.
아빠는 늘 최신 기술의 선두에 서서 어린 자녀인 우리에게 미래를 미리 보여주셨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선보였을 때, 아빠의 손에도 그 기적에 가까운 물건이 들려 있었다. 당시 언니가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 왔었다. 아빠는 늘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그러한 영향 덕분에인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약간 달랐다.
아빠의 픽업트럭은 세월의 흔적을 명확히 보여주지만, 노년을 거슬러 가기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무선 햄 안테나가 아빠의 멈추지 않는 열정을 대변하고 있다. 스타텍에서 시작된 아빠의 휴대전화는 아이폰과 갤럭시 S를 거쳐 현재는 갤럭시 A 시리즈로 이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최신형 기기에서 어린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보급형 기기를 사용하시는 모습에 어쩐지 더 연약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 아빠가 무전기를 교체하시거나 잦은 오토바이 기종 변경에 불평했던 나지만, 이제 그것들이 아빠의 젊음의 흔적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기술의 변화가 생기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아빠의 열정이다. 대기업에서의 직장 생활을 거치면서도 아빠는 농사와 토지에 대한 사랑이 여전했다. 이제 직장 생활도 정년을 마주하고 있다. 아빠는 대대로 농사를 짓던 땅에 새로운 사업을 꿈꾸고 있다. 나는 아빠의 새로운 도전과 꿈을 지켜보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얼리어답터로서의 아빠의 열정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라며, 항상 그 옆에서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