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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Jan 05. 2022

경이로운 문화재단 생활 4탄_발령

발령이 남긴 폭풍, 그리고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직원들의 감정


나는 부끄럽게도 큰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이 말인 즉 나는 발령이나 복지의 혜택을 받아본적이 없는 사각지대의 회사만 다녔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문화계에 처음 발을 들이고 일했던 기획사들, 단체들은 상근근로자 5명이하였기에 

인사발령과 배치 같은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 


요즘도 작은 문화재단에서는 크게 발령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발령은 조직규모가 작을수록 타격감이 묵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1월과 7월만 되면 정말 사람들이 날라다닌다. 

여기 갔다가 저기로 증발하고 그리고 사라지곤 한다.

이 이야기는 지난번에 연재했었던 당황스러웠던 인사배치와 더불어

내가 겪은 인사발령과 직원들간의 감정선을 위주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내가 재직중인 문화재단은 꽤나 시설이 많다.

구에서 설립된 도서관, 문화시설 그리고 문화도시 TF팀까지 꽤나 다양한 부서와 팀들이 있다.

대략 110명정도가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관건은

어디에 발령받느냐에 따라 근무요일과 근무시간이 바뀐다.


예를들자면 365일중 360일을 개관해야하는 문화시설이 있다.

이럴 경우 직원들은 로테이션을 하며 화~토, 혹은 비정기적 근무를 하게 된다.

반면에 소위 "본부"근무를 하게 된다면 월~금 9 To 6에 주40시간 근무를 한다.


하지만 불편하게도 문화재단에는 운영해야하는 문화시설이 많기에 

재단에서는 문화시설의 인력(TO)가 문화사업의 인력보다 훨씬 많다.

그렇기에 문화시설이 상시 확보해야하는 정규직 TO도 많고, 슬프게도 계약직 TO도 많다.

(이런 경우도 있다. 주 52시간을 지키며 주 6일근무를 해야한다. 직원 단 둘이서 말이다)


우리 직업이 그렇지 않은가?

남들 놀때 일해야 하고, 남들 일할때 쉰다. 


이런 근무환경에서 오는 직원들의 불편함과 거부감이 문화시설 발령을 꺼리게 된다.

그렇기에 인사발령의 문제는 여건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인사발령은 생각만큼 다정하지 않다.

사전에 충분히 이야기 되는 직원도 있는 반면 몇몇에게는 일방적인 통보가 가기도 한다.


인사발령 시즌만 사무실에 무거운 공기가 감돈다.

그리고 퇴근시간 즈음, 공문이 하나 뜬다. 발령이 난 직원들은 조용히 짐을 싼다. 

바로 다음날 발령이 난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입사, 퇴사할 때처럼 마음의 준비가 되거나 체계적이지 않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다.

자기 자리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이 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도 느낀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갑자기 자리를 빼는 기분이 든다"

"나는 문화전공해서 문화사업만 했는데, 갑자기 인사행정을 해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수선함은 플러스 알파다.


해가 바뀌고 반기가 지날 때마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겼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문화재단은 태생적으로 공무원 조직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부분과 문화라는 혁신적인 가치가 부딫치는 장이기도 하다.


부패와 나태를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사람을 돌린다.

그러나 문화재단은 문화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문화발전과 향유를 위해 조직된 기관이다.

전문가들을 뽑아놓고 사정없이 돌린다.

드럼세탁기에 옛된 흔적을 지우듯, 그리고 직원을 탈수기에 짜내듯...


그 과정에서 전문성 있는 직원은 이런 현상에 질려 떠나기도 하고,

순응하며 새로운 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 떨고 있다.

이동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동할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인사발령 시스템 자체를 무지성으로 비판할 생각은 아니나,

그리고 이 감정선을 공유함으로서 조금이나마 함께 고통받는 동료들에 대한 위로를 전하고

발령을 배치하는 선배들에게는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발령의 과정에서

섬세함과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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