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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l 16. 2022

23살, 그래서 몇 년 생이라고?

주민번호 뒷자리가 3으로 시작한다고?




한 치 앞도 모르던 대학 졸업 때. 국민대 북악관 앞에서.


한 때 순수문학 작가를 꿈꾸었으나 내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있는가. 


쓰다보니 내 글이 형편없다는 것도 알았고, 살다보니 글 쓰는 것 말고 돈을 벌기도 해야 했다. 그래도 그나마 굼벵이 기는 재주라고는 글 쓰는 것 밖에 없어서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프리랜서 사이트에 대충 포트폴리오를 올리니 가끔 글을 써달라는 문의가 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고객들의 취향에 맞춰서 닥치는대로 아무 글이나 썼다. 마케팅 관련이 되기도 했고, 상품 소개가 되기도 했고 가끔은 창작도 있긴 했다. 


또 어느 때에는 로맨스 소설을 썼는데 반응이 괜찮아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이북 출간을 하기도 했다. 하여튼 잡다한 글로 치자면 나도 꽤나 경력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유튜브라든가 다양한 영상 플랫폼에 올리는 시나리오를 쓰게 되기도 했는데 이 일이 꽤나 짭짤한 벌이가 되어서 나는 최근 1년 정도는 그 일에 매우 몰두했다.


하다보니 약간 욕심도 나서 영상 퀄리티를 높이고자 영상 편집을 배우기도 했다. 콘텐츠 창작이라는 것도 가볍게 볼 것만은 아닌게 내가 노력할 수록 퀄리티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럴수록 독자들의 반응이 좋기도 했다. 


어쨌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려면 거기에 입힐 사람의 음성이 필요한데, 이게 ai 로는 해결이 안되는 것이라 프리랜서 성우를 구해야 했다. 이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막상 구해도 내 의도와 맞지 않는 음성이라 난감한 경우도 있었고 일에 있어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매우 난감해 하면서 얼마간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기대도 안하고 알바 사이트에 올린 글에 몇 명의 지원자가 메일을 보냈다. 몇 개의 메일 중에서 샘플 음성을 보낸 한 학생의 음성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군대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되었고 서울에서는 먼 지방에 살고 있으며, 연기를 전공하고 있는 23살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사실 대학을 졸업한 정도의 연령대를 원했기 때문에 연락하는 것에 조금은 망설였으나 어쨌든 샘플이 마음에 들어 컨택을 하게 되었고 이내 일을 같이 하게 되었다.


만날 필요가 없고 재택에서 메일로 일을 하기로 했기에 그 학생이 지방에 사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진 않았다.그래서 한동안은 그냥저냥 메일로 소통하며 일을 했는데, 아무래도 계속 같이 일을 하려면 한번 정도는 만나서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는 재택으로 뭐든 다 한다는데 내가 워낙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학생이 내가 원하는대로 일을 잘 해줘서 좀 고마운 마음에 내가 주는 보수 외에 대접을 한번 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겸사겸사 가족여행 겸 지방에 가기로 했고 그 학생에게 대뜸 전화해서 내가 가겠노라 통보를 했는데 그 학생으로썬 조금 황당했던 모양이다. 서울에서 굳이 지방까지 내려와 자신을 보려고 하는 이유를 묻기에 대충 내가 느낀 바와 가족여행겸 가는 것이라고 해명을 했다.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토요일 자정 쯤 도착해서 호텔에서 하루 자고 토요일 낮에 그 학생을 보기로 했는데 남편이 출발하기 전에 내게 물었다. "근데 그 친구 나이가 몇 살이라고?" 내가 가만히 생각을 더듬어 대답했다. "스물 셋이래." 남편이 또 조용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2000년 생이네."


그 얘기를 들으니 처음에 계약을 할 때 00년 생이라고 써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 스물 셋이면 00년 생이고 주민번호 뒷자리는 3이구나. 갑자기 내가 나이가 엄청 든 것 처럼 느껴졌다. 가기 몇시간 전 갑작스레 걱정이 되어서 나는 내일 만나서 그 학생과 무슨 얘기를 해야 잘 통할까,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나 어떻게 해야 대학생과 잘 어울릴 수 있고 어색하지 않을까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학생을 만났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한 느낌도 들었지만 이내 대화가 어느정도 통한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대학생이라고 어리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밝힐 줄 아는 자신감이 멋져보였다. 침착하고 의연한 모습이 오히려 나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몇시간 후 헤어졌다. 내 아이는 내내 어색한 듯이 딴청만 부리다가 막상 학생이 가니까 '형이 다시 보고 싶다' 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엔 비가 왔다


나름대로 긴장했던 만남이 끝나고 후련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동시에 한편으로는 오면서 내내 왜 그리 걱정을 했을까 내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실은 나는 걱정했던 게 아니라 어리다고 무시했던 것은 아닐까? 스물 셋이면 충분히 자신의 인생사가 있을 나이인데 내 이야기 늘어놓을 생각만 했다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마지막에 지방을 떠나 다시 돌아오며 나는 결국 나이보다는 '사람 대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편견없이 사람을 대해야겠다고, 앞서서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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