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들셋을 키우는 싱글맘의 우여곡절 파란만장 엄마 성장기
이제 나도 꽤 결혼생활이 흐르고 우여곡절을 겪고 나니, 더 이상 감정이라는게 들끓지 않았다. 그는 잘못하면 적어도 내 눈치는 보게 되는 상태까진 만들었는데 그래도 새끼손톱만큼도 안되는 횟수였다. 잘못해도 더 큰소리 치는 일이 많았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예전과 같이 소리지르고 윽박질렀다. 분노조절장애가 확실했다.
나는 내 마음속에 두번의 아웃을 세고, 딱 삼세번만 참자.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고 3번은 참아야지 하고
마지막 남은 한번이 언제올지 모르지만 스스로 마음의 카운트를 세웠다.
웬만한거에는 내성이 생겨서 이제는 화도 많이 나지 않았다. 그저 귀를 닫고 입을 닫았다.
같이 상대하면 똑같은 사람될 것 같고, 열받아서 내뱉는 말이 내 귀에도 차마 듣기 싫고 스스로 정신병자 같아서 그렇게 서서히 점점 나를 잃어갔다. 신혼 초반처럼 날 사랑하는데 표현방식이 잘못된거겠지 라는 생각은 애초에 버렸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차라리 그게 마음 편했으니까.
부부관계도 나에 대한 배려는 없고 본인이 하고 싶은 때에 해야했다. 몸이 안좋다고 거절하는 날에는 내 몸에 대한 걱정은 없고 그저 본인의 사랑표현이 거절됐다는 식으로 날 매도 했다. 그래서 그냥 받아줬다.
왜냐면 그게 속 안시끄럽고 조용하고 빨리 이 상황이 끝나니까.
친구들이 해외여행도 가고, 워홀도 가고 대학생활도 즐기는 걸 보면서 부러웠고 부러웠다.
한창 꽃같은 나이에 나만 도태되어 있는 것 같고 결혼생활까지도 행복하지 않으니 이뤄낸게 없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쓸데없이 혼자 아이를 빨리 낳았으니 완벽한 30대가 올거라고 막연한 기대를 하며 버텨냈다.
또 완벽한 가정을 이루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와중에도 나는 그에게 가정이 완벽하고 내가 내조를 잘해서 가르쳐주고 또 가르쳐주면 언젠가는 바뀔거라는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에게는 아빠 그리고 엄마라는 안정된 울타리는 필요하니까 그걸 깨버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우리 부모님과 아이들에게는 잘했다. 아프신 엄마에게는 아들같은 사위였고, 아빠에게는 든든한 큰사위였다. 아이들이 나한테 혼나면 데리고 편의점가서 과자사주면서 달래주고, 아이들이 갖고싶다는 건 어떻게 해서든 가지게 해주었다. 아이들이 아빠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는 나에게는 별로인 사람이어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 좋은 사위라고 생각했다.
그저 내가 참으면, 가만히 감내하면 평화로울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셋째를 임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