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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1. 원두서점

[커피 여행, 카페 투어]

by 브랜드숲 이미림 Jan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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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나는 팀장님과 함께 경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커피 여행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심해지고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우리의 '수요커피회'도 그렇게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끝날 무렵에는 서로의 일이 바빠 커피 여행은 그저 참 좋았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의 만남에서 커피 여행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좋았던 커피 여행 기억을 되새기다 새해에 다시 해보자는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의 인연을 이 십 년 가까이 이어온 후배도 함께 하기로 했다.

  지역은 서울에 있는 카페로 한정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카페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했다. 시간은 지난 '수요커피회'처럼 방문 고객이 적은 오전 시간에 한 달에 한 번 만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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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다시 시작된 우리의 커피 여행은 이제 수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하기로 해 '화요커피회'기 되었다. 첫 번째 카페는 내가 추천하기로 했다. 나는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로스터리카페 '원두서점'으로 골랐고 우리들의 행복한 커피수다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카페 원두서점은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10분 남짓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골목에 숨겨져 있다. 꾸며지지 않은 소탈한 외관과 그냥 지나쳐도 모를 것 같은 작은 간판이 무심히 가게 앞에 놓여 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 타입의 의자가 중앙에 일렬로 나열되어 있고, 코너 책장 앞 계단 아래에는  작은 테이블 하나와 의자 2개가 놓여 있다. 매장의 의자는 모두 10개 정도로 넓지 않은 자그마한 카페다.

  그럼에도 일하는 직원은 최소 4명은 되어 보인다. 카페의 절반은 열 명 정도의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고, 나머지 절반은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그 너머로 로스터리 공간이 문 너머 별도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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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서점은 이름처럼 커피 원두와 책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원두도 판매하고 책도 판매한다. 카페 입구에는 이곳에서 로스팅된 다양한 원두들이 예쁘게 포장되어 책장에 책처럼 놓여 있다. 그리고 맞은편 벽 코너에는 자유롭게 꺼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는 책장형 작은 서점이 있다. 책이 있는 바로 옆에는 이 카페에서 유일한 독립된 테이블이 하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테이블은 이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자리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세 사람이 함께 앉기에는 좁고 불편한 공간일 수 있지만 마주 보고 대화도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함께 나누고픈 이유에서였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서로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리고 언제 만나도 휴식처럼 편안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할 수 없는 행복이다.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삶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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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늘 그렇듯 산미 가득한 카페라테로 주문했다. 에티오피아 미디엄 라이트로 로스팅된 어린 왕자라는 이름의 원두로 골랐다. 어린 왕자. 내가 좋아하던 생텍쥐베리의 소설 이름이다. 팀장님과 후배는 코스타리카 핀카 알타 비스타 강영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미디엄 라이트 원두 게이샤 레드 허니 드립을 선택했다. 커피 종류에 들어가 있는 강영무라는 이름은 코스타리카에서 커피 농장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이라고 했다. 참고로 커피 이름은 대부분 생산되는 지역과 농장에서 유래된다.

  드립 된 커피를 바리스타님이 자리에 직접 와 잔에 부어 주셨다. 가득한 커피 향과 이 분위기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행복했다. 팀장님은 게이샤 드립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넣는 순간 모든 시름을 잊는 행복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더 이상 다른 커피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럽다며 그 여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고도 했다. 나도 에티오피아의 산미 가득한 라테를 음미하며 크렘뷔릴레의 캐러멜을 톡 깨트려 함께 먹었다. 그 순간 맛의 희열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커피의 오묘함 그리고 마법 같은 커피의 힘을 다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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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카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봄이었다. 나는 가산디지털역 근처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고, 오랜만에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 있어 그곳을 다시 가게 되었다.  나는 옛 추억을 되새기며 단골로 다니던 로스터리샵의 맛있는 커피가 생각나 찾아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다른 매장이 들어와 있었다. 근처 다른 곳으로 매장을 옮겼을까 인터넷 검색을 했지만 나오질 않았다. 아쉬움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위 골목을 배회하고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원두서점을 만났다. 한적한 오후에 숨겨진 작은 카페에서 커피의 진심을 느꼈다. 나는 홀로 커피를 마시며 마치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듯 기뻐했다. 그날 이후 원두서점은 커피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나의 커피벗인 팀장님에게 언젠가 꼭 한 번은 소개하고 싶은 그런 곳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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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서점은 우리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있다.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 이상은 투자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먼 길을 달려와 함께 만났으니 커피 한 잔으로는 아쉬웠다. 그래서 커피가 아닌 다른 메뉴에도 도전했다. 

  초콜릿음료와 뱅쇼, 그리고 티라미수를 추가로 시켰다. 초콜릿은 프랑스 발로나 다크 초콜릿으로 부드럽고 고급진 맛이었다. 생초콜릿이라 그런지 다른 곳에서 먹었던 초콜릿 음료와는 확실히 달랐다. 풍미가 깊었던 논알코올의 뱅쇼는 요즘 같은 감기 계절에 따뜻하게 한 잔 마시면 좋은 음료이다. 마스카포네 치즈가 풍부한 티라미수에는 책 모양의 원두서점 로고가 그려져 나온다. 달콤함과 쌉싸름한 맛이 매력적이다. 티라미수라는 의미처럼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하지만 욕심내서 시켰던 달달한 티라미수를 단 음료와 함께 주문했으니 우리는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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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카페를 고를 때 나만의 기준이 있다. 우선 로스터리 카페가 우선이다. 원두를 대형 공장이나 다른 업체에서 납품받는 곳보다 직접 로스팅을 하는 카페가 좋다. 커피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어 좋은 맛을 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피 주문할 때 취향에 따라 원두를 선택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입맛에 맞는 원두를 고르면 커피는 분명 더 맛있다. 마지막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확인한다. 자동 커피머신을 사용하는 카페보다 전문적인 커피 머신을 사용하는 곳이 커피 맛이 더 좋다. 원두마다의 디테일한 맛을 전문적인 커피 머신이 잘 표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어떤 상황에서도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는 가장 중요하다.

  원두서점은 내가 좋아하는 조건들을 두루 갖춘 곳이다. 로스터리 카페로 입맛에 따라 원두를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커피 머신은 El Rocio를 사용한다.  El Rocio는 국산 에스프레소 머신인데  나는 2년 전 커피밀을 사기 위해 이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래서 더 기억이 나는 브랜드였다. 이곳 원두서점에서 클래식한 디자인의 El Ricio를 보게 되다니 그것 또한 반가웠다.

  이런 커피 맛집이 우리 동네에도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원두서점은 혼자 가도 좋은 카페로 집 근처에 있다면 매일 가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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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새해 설렘을 안고 다시 시작한 우리의 커피 여행은 성공적으로 출발했다. 1시간을 약속하며 만났던 원두서점에서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즐거운 커피수다로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 버렸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함께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다음 달을 기약하며 커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도 내가 움직일 때마다 커피 향이 피어올랐다. 아마도 카페에 벗어 두었던 롱패딩에 나도 몰래 커피 향을 담아 온 모양이었다. 내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커피 향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였다. 커피요정을 품에 안은 듯 내 발걸음도 행복하고 즐거워졌다.

  그날 늦은 저녁, 우리들의 단톡방에 팀장님의 카톡이 올라왔다.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공간이 가진 힘이 이렇게 쎄군요.

   겨울 한복판의 우울 속에 있다가 청량한 초여름을 맛본 그런 데이트였습니다."


  청량한 초여름이라는 표현이 참 좋았다. 우리의 다음 2월 커피 여행은 어디에 가 있을까? 벌써 설렘으로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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