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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18. 2023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1번이 이루어지면 2번도 이루어지겠지 



"Could you write down your bucket list on a piece of paper?"


"......" (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순간 멈칫했다. 


'아닌데, 버킷리스트가... 콩글리시였던가......?' 


오늘 오전에 흑인 교사와 대화를 나누다 멍해졌던 순간이다. 

얼른 다시 말을 바꾸어 Wish List를 적어보라고 했다. 

그리곤 종이 위에 10가지를 적어나간 시간은 약 20분 남짓 걸렸다. 




한국어로는 국립국어원에서 순화시킨 표현으로 '소망 목록' 이라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버킷리스트 = 바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과 결부시켜 자동 연상한다. 


2007년 <버킷리스트 -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영화다. 모건프리먼과 잭 니콜슨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누구인가'를 정리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는 시간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다. 

당시,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가 매우 생소하면서도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굉장히 센세이션 했다. 우리 서로 버킷리스트를 적어보자며 노트를 사러 팬시점으로 향했다. 그냥 집에 있는 아무 노트에나 적으면 되는데 왜 뭔가 시작할 때는 새 물건이 필요할까, 독서 노트 적으려면 노트를 사야 하고, 일기를 쓰려면 노트를 사야 하고, 다이어리 쓰려면 새 다이어리 구경하러 갔다. 그저 팬시에 왜 그리 욕심이 많았는지 사놓고 한 두 장 쓰고 버려진다 해도 일단 뭘 시작하기 전에는 구비 목록에 새 물건을 두어야 한다. 

당시 버킷리스트를 적으며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다. 그저 나는 죽기 전에 이건 꼭 한번 해봐야겠다 싶은 것들이다.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더듬어 보지만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당시 버킷리스트에는 여행, 연애, 결혼 그리고 미래에 내가 되고 싶었던 어떤 사람, 꿈에 관한 내용이었을 거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일단, 연애, 결혼은 리스트에서 빠졌고 여전히 여행과 나의 미래에 대한 그림은 여전히 들어있다. 


당장 내게 1주일이 남았다면 나는 뭐가 제일 하고 싶을까? 

이런 생각은 여러 번 해봤다. 

그저, 사랑하는 가족과 아끼는 지인과 한 자리에 모여 마음껏 먹고, 웃고, 주어진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그것 말고 더 뭐를 할 수 있을까 싶다. 



매주 흑인 교사들과 함께 할 워크시트를 준비한다.  이번 만남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하다 버킷리스트 작성이 떠올랐다. 매주 2회씩 만나도 스치듯 지나가며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던 터다. 매주 화요일 한 번씩 교사들과 아이들 보육과 교육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약간의 질문 속에 교사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번부터 10번까지 적힌 흰 A4 용지와 모나미 볼펜을 내밀었다. 

그리고 버킷리스트를 쓰라고 했다. 

그 교사는 버킷리스트가 뭐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얼른 말을 바꿔 위시리스트랑 같은 거라고 하며 앞으로 살면서 가지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것 등 원하는 것을 적어보라고 했다. 약 20분 동안 곰곰이 생각하며 적어 내려 가는 모습을 보니 어떤 게 담겨있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궁금했지만 멀지 감치에서 다른 일을 보며 어슬렁 한 번씩  힐끔거렸다. 

다 적은 목록을 살펴보았다. 



열 가지가 너무 많았을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다 채웠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3세 여자 아이 한 명을 키운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말 자체가 사치스러울 정도로 어렵게 산다. 그냥 말 그대로 가난하다. 빈민이다. 그저 오늘은 어떻게 먹지, 내일은 뭘 먹지, 애 옷은 뭘 입히지의 고민을 하며 산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버킷리스트, 소원이라고 하기도 뭐 한 그저 당장 돈이 필요한 삶이다.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다고 느낀 건, 당연히 집, 차, 보다 나은 삶의 환경 혹은 자신이 나중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그리고 여행에 대한 소원도. 그런데 거기까지 갈 여력이 없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의. 식. 주 기본적인 삶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무슨 여행이고 나발일까. 


질문을 던지고 '잘했다'와 '잘 못 했다'의 두 생각이 공존했다. 그래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자신의 소원리스트를 적었으니 잠시라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냥 나는 순수하게 그들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그리고 시각화시키고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자꾸 상기시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삶보다 더 어렵다. 글로 적고 입으로 소리 내서 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지게 들릴 수 있는 걸 안다. 


당장 돈이 없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업도 없다. 집은 깡통집에 비가 오면 주변은 홍수가 되고 난방 시스템 하나 제대로 없어 추위에 벌벌 떤다. 폭신하고 두꺼운 이불도 당연 없다.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한계가 분명히 있다. 도움을 어디까지 줄 것이냐, 어떻게 도울 것이냐, 무엇을 도울 것이냐, 이런 부분에서의 딜레마에 꽤 많다. 게다가 나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넉넉한 형편도 아니다.  

 

뭐 그렇다 한들. 

내가 원하는 것을 상상하고 꿈꾸는 건 돈 안 드는 일이니 많이 했으면 좋겠다. 

다른 교사 또한 일주일간 생각해서 가져온다고 했다. 궁금하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여러 번 해주고 싶었다.

동시에 더 구체적이고 야심 찬 꿈을 꾸도록 만들 순 없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희소식은 1번이 이루어지도록 내가 조만간 그 일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저 종이에 적힌 1번이 곧 이루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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