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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12. 2023

남아프리카 5.5 지진

남아프리카 지진 처음 아니다.




어젯밤 11시경.

갑자기  소리와 함께 정전됐다. 평소 워낙 정전이 자주 있는 탓에 이럴 때면 "또? 에이."의 반응이 전부다. 정전 스케줄상 예정된 시간이 아닐 때 전기가 나간다는 건  문제가 일어났다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다. 계속 신경 쓰인 건 웅 하고 났던 소음이다. 마치 영화에서 EMP(ElectroMagneticPulse) 공중 핵폭발이 일어나 멀리에서 느껴지는 여진 같은 진동이었다. 그리곤 잠잠해졌다.

뭐 또 뭔가 문제가 일어났으려니, 오랜만에 일찍 잔다고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차가운 이불 촉감이 싫어 전기장판을 켜려는데 '아 전기 나갔지.' 생각이 뒤늦게 들어 남편 옆으로 붙었다. 추운 건 진저리 나도록 싫다.

(아는 사람만 아는 아프리카 추위)





추위에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전기가 들어왔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새벽 4시 무렵, 전기가 들어왔는지 남편이 일어나 전기장판 스위치를 켰다. 점점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때부터 숙면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Whats app 메신저를 확인하더니 남편이 어이없어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지진? 에이 폭발이겠지. 무슨 지진? 아프리카에서 지진? 허, 그럼 진짜 말세인데. "


아프리카는 지질학상으로 지진이 안나는 지역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에 나는 문외한이라 정보를 좀 찾아보려고 했는데 적절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아프리카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라고 이야기한다. 오래전에 지진이 한 번 났었는지, 별이가 학교 선생님이 몇 년 전에 지진 났던 이야기를 들려줬단다. 이번 지진 때문에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2005년에 5.3 규모의 지진으로 약 60명이 사망했던 기사(KBS뉴스)가 있었다. 또한 올해 몇 주전 2023년 5월 22일에 포트엘리자베스 남동쪽 바다에서도 6.8 강도의 지진이 발생했었다는 뉴스(연합뉴스)가 있었다.


이런 소식을 듣고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원래 그랬던 건 없다. '원래'라는 건 어디까지가 기준인 걸까, 당연한 것도 없고 원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측도 할 수 없고, 순서도 없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도 없다. 그저 순리에 따라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궁리하고 고민하며 살아야 된다.




"엄마, 친구들이 그러는데 남아공에 지진 났대요."


오늘 아침식사 자리에서의 이슈는 '지진'이었다.


"어젯밤 진동 느꼈어요? 나는 무슨 쥐들이 집안에서 파티하는 줄 알았어요. 지붕이 흔들리더라고! "

"아 저희는 모르고 잤어요. 그냥 정전돼서 추워서 푹 못 잤는데, 진동은 못 느꼈어요."


사역지 가려고 만난 선교사님 부부와의 대화도 지진이었다. 지진이라니, 건물도 외벽에 단열재 없이 허술하게 뚝딱 지은 집이 대부분인 이 나라에서 지진 나면 큰일 나겠단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쉑(깡통집)에 사는 흑인들은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이고, 그 우리 딸 친구네 사는 지역은 심했나 봐요. 전화를 하는데 애가 놀라고 무서운지 많이 울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저녁에 한국에 사는 지인들과 톡을 하면서 남아공 지진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데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안타까운 심정만 적어내려 갔다. 나도 남아공에 살면서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이니까 체감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마치 담 넘어 불 구경하듯 태도로 말이다. 내가 직접 겪었다면 흥분하면서 이야기했을 거다. 사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말했을 거다. 어쩌면 이 나라 무섭다고 난리 치며 짐이라도 싸서 공항 가겠다고 했을까. 글로 적어 낼 때도 내가 겪은 일을 쓰면 더 사실적으로 쓸 수 있다. 오늘 글에는 적나라하게 사실을 묘사할 수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정전이슈에 여진 탓인지 약 1시간 전에도 4.2 강도의 지진이 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요새 부쩍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건, 사고 소식에 몸이 움츠러든다. 오늘 사역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며칠 전 강도가 신호 대기 사거리에서 총을 들이밀고 지갑과 휴대폰을 강탈해 간 장소를 지나쳐왔다. 잠시 신호 대기받고 서 있는데, 무단횡단도 아무렇게나 하는 이 나라. 차 밖에 없는 넓은 도로에서 우리 차 앞으로 얼른 사람이 지나간다. 마치 차로 오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손에 검은 게 들려 화들짝 놀랐다. 정지 신호에 우리 차가 잘 잠겨 있는지 확인한다. 전자책 보던 휴대폰을 얼른 다리 밑으로 깔아 넣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검은 휴대폰이 다른 걸로 보였나 보다.


남아공이 치안이 안 좋은 건 기정 사실이다. 솔직하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한국 가고 싶다는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세상 어디도 안전한 지역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사람 사는 환경이, 사람 마음이 문제인거다. 그렇게 강팍해질 수 밖에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요즘 마음에 지진이 날 듯 위태 위태했는데, 나라 지진 걱정보다 내 마음부터 잘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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