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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Feb 08. 2024

아파도 되는 몸은 없고,  없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익숙함은 감사다. 



아. 아아아 아아아!! 

아침부터 엄살이 시작됐다. 우리 집 둘째 다엘은 엄살대마왕이다. 조금만 다쳐도 어디 크게 부러진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어제 태권도에 가서 겨루기 훈련을 하다가 상대의 발차기에 왼쪽 새끼 손가락을 차였단다. 어젯밤 너무 시간이 늦어 얼른 씻고 약 바르자고 하고선 내가 약 발라주는 걸 잊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육안으로 봐도 살짝 부은 듯 보였다. 밤에 약 발라 줄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새끼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걸 보니 부러진 것 같지는 않고, 어딘가 실금이 갔거나 인대가 놀랐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병원 문도 안 연 시간이고, 당장 병원에 갈 수도 없어서 급한 대로 소지와 약지를 붕대로 감고 살색 테이프로 고정해 줬다.


"오늘 수영이 있는 날인데 수 있겠어?"

"...... 해 볼게요." 

"아하하 이제 손가락 한 개가 없을 때 얼마나 불편한 지 알 수 있을 거야. 오늘 체험 한 번 해봐." 


아픈 애 앞에서 웃으면서 손가락의 감사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일러주었다. 내가 야속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별이 머리를 묶어주면서 내 엄지 손가락에 감사했다. 15년 전 어린이집 초임으로 일할 때 칼을 쓰다가 엄지손가락 쪽으로 푹 들어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친다. 바로 달려 병원으로 갔고 8 바늘을 꿰맸다. 붕대로 칭칭 감은 엄지 손가락은 일할 때마다 걸리적거렸다. 


"엄마가 어린이집 교사할 때 엄지 손가락이 다친 적 있거든? 와... 엄마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지손가락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처음. 알았어. 단추를 못 잠그겠더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별이 말했다. 

"엄마 저는 새끼손가락 없는 사람 기분이 어떨까, 뭐가 불편할까 싶어서 접고 생활했던 적이 있어요." 

짧은 시간 아침 먹으며 아이들은 대화를 마치고 학교에 갔다. 


불편한 손가락으로 지냈던 일주일간 머리 감을때도, 단추를 잠글때도, 일을 무언가를 집을 때도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몸의 어느 부분이라도 없는 불편하다는 걸 자라오면서도 종종 느낄 일이 있었지만 팔다리 크게 부러지지 않고 평생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내 몸의 지체가 모두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고나 할까, 


사회복지학 공부할 때 장애인 체험을 했었다. 직업 차원에서 클라이언트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알아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각 장애인 체험이었는데, 내 눈을 가리고 상대방의 말에만 의존해서 앞으로 걸어가는 미션이었다. 당시 하나의 실습이니까 그렇게 무섭지만 않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캄캄한 길, 어디가 동서남북인지도 모르는데 상대방의 말에만 의지해서 길을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걸음이 느려지고, 더듬거리면서 겨우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반대역할도 해봤는데,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밤에 전기가 나가 사방이 캄캄할 때면 더듬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길을 찾는다. 간혹 갑자기 전기가 나가 칠흑 같은 어둠과 마주할 때면 랜턴이 어디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다행히 휴대폰 불빛으로 길을 찾아 할 일을 하곤 한다. 아주 작은 불빛이라도 새어 나오면 그 불빛에 의지해 다닐 수 있음에 안도하는 시간이다.


간혹 이런 말 하는 경우가 있다. 

"나 없어도 잘만 돌아가네!" 

실제로 한 단체나 무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을 때였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그 팀에서 빠져나와야 할 일이 있었다. 중책을 맡고 있었던 터라 내가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 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어렵사리 마음을 접고 당장 처리해야 하는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면서도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며칠 후 소식을 들어보니, 내가 없어 잘 돌아가고 있었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없는데 이렇게 잘 돌아가다니!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인생을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몇 번했다. 그러면서 내 생각에는 내가 없어서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존재나 자리매김에 대해서 겸손한 태도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내가 없으면 안 될 일은 없겠구나.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구나. 

그런데, 이쯤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없어도 돌아갈 있지만,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지체 중 하나가 없으면 불편하긴 하지만, 몸에 없어도 되는 부분은 없다. 불편하지만 훈련의 시간을 통해 익숙해져 갈 뿐이다. 결핍을 채워 부족하지 않은 부분으로 만들어나가려고 애쓰며 또 하나의 완전체로 만들어 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하나의 완전체로 있을 느낄 있는 익숙함은 당연함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거리라고 말이다. 평범한 일상 중에 아무런 이슈가 없는 건 쳇바퀴 도는 일상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이다.   


다엘이 학교에 다녀와서 아프다고 할 것 같다. 그럼 병원을 찾아가야겠다. 아픈 곳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줄 수 있는 엄마로서의 최고의 방법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겐 큰 감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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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다짓기 최주선글쓰기 분야 크리에이터출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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