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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15. 2021

당연함이 없는 나라

어처구니없는 12월의 시작  



카펫을 적신 흥건한 물,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냉장고 앞에 우두커니 섰다. 

순환정전 시스템이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레토리아에서 산 4년 동안 주기적으로 하루 2시간씩 1회 혹은 3회까지 정전되는 상황을 숱하게 겪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어처구니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3년 전 7일간 정전이 됐던 지역이 있었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겪어보니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며 혀를 내둘렀다.      


“오늘은 들어오려나? 내일은 들어오겠지? 안 들어오면 어쩌지? 완전 불편해 미치겠다 진짜. “     

 

처음 예고했던 최장 9일 이후 복구는 뜬구름이 아니었다. 

12월 1일 수요일 저녁, 가족들 저녁밥을 차려주고 혼자서 바나나와 우유, 오트밀을 넣어 주스를 만드려고 믹서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김치냉장고의 띠로리리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가버렸다. 그렇게 나가버린 전기는 11일 후에나 다시 들어왔고, 1980년대 초반의 어린 시절 두꺼비집이 차단되어 양초를 켰던 그 시절의 기억이 자동 소환되었다.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정전만 되면 켰던 양초에 불 붙이고 싶어 마냥 좋았던 시간을 회상했다. 2021년대인데 막상 전기가 자주 나가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세상에 당연함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초고속 인터넷, 길에서도 잡히는 와이파이, 초스피드 서비스 대응, 국민의 컴플레인이 반영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나라에서만큼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어디 남아프리카뿐일까? 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끊기는 일상을 하루 걸러 하루, 혹은 매일 겪으면서 그런 일상이 당연한 일상인 줄 알고 자라는 다른 나라의 아이들도 있을 거다. 그리 생각하면 일상에서 느끼는 당연한 다반사는 한 번쯤은 정말 당연한 것일지 생각해봐야 한다. 

남아공에서는 느림의 미학은 물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숱하게 일어난다. 그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은 인내심과 평정심을 찾고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았음에 감사하는 것이 최선이다. 


오늘은 신청한 지 11개월 만에 비자가 REJETED 되었다. 거절받은 비자를 일컫는 '리젝'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에 치명타를 날린다. 유효한 비자가 없어서 거절했다는 사유를 받았들었다. 그러나 유효한 남편 비자가 있음에도 동반 비자로 있는 나는 거절되었다. 덕분에 복잡한 서류와 번거로운 절차, 상식적인 질문이 무참하게 I don't know 로 짓밟히는 일 앞에서 굽신거려야만 하는 나를 만나야한다.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더 불편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 학교와 대사관 비자대행기관인 VFS에 가서 거절 레터를 들고 나오는 순간까지  내내 분주함과 걱정으로 휘몰아쳤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국에서 살면서 비자받을 일이 없어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충을 몰랐다. 지난 4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비자 신청 후 받는 절차까지 늘 마음을 조아리며 살아왔다. 사람의 위에 사람, 법 위에 사람이다. 법이 있어도 처리하는 사람의 컨디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기본 사항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줬을 거라 의심하는 일도 이 나라에선 충분히 예상해볼 일이다.  


이럴 때마다 상식이 통하는 빨리빨리 한국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당신의 당연한 일상다반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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