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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16. 2021

무슨 1970년대야?

장기 정전의 시작

 



“뭐야? 정전? 로드 셰딩 아닌데? 예고 없었잖아! 맙소사. 아... 나 이거 믹서에 갈아먹으려고 했는데! 에잇. ”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 주방에서 걸어 나오는데 1분도 안 되어 번쩍 거렸던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누가 전기선 끊어가려다가 실패했나 봐! 크크크 다행이다. “    

  

평소 미리 앱을 통해 정전을 예고해주는 반면, 예고 없이 돈이 되는 구리선을 끊어다가 파는 사람들이 있다.  탓에 오늘도 그러려니 하며 남편은 다행이라며 킥킥거렸고, 우리는 안도했다. 안도도 잠시, 5분도 안되어 다시 나가버린 전기로 캄캄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렸다. 밥을 먹던 식구들은 일제히 젓가락을 들고 멈춘  야유를 뱉어냈다.


"촛불  켜, 랜턴!"

평소 순환 정전이 시작될   중에 전기가 나가면 막둥이 요엘이는 잽싸게 자를 밟고 올라 책장 위에 놓인 랜턴의 스위치를 올렸다. 이날도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전등 하나로 거실의  밝아졌고, 첫째 별이가  촛불은 식탁을   밝게 비춰주었다. 얼떨결에 만들어진 무드에 익숙한  저녁밥을 얼른 먹고 뒷정리까지 마쳤다.


몇 분 지나자 우리 동네 콤플렉스 커뮤니티 그룹 채팅방에 사진 두 장과 장문의 알림 글이 올라왔다. 변전소 중 한 곳에서 큰 불이 났다는 것이었다. 젠장, 오래 걸리게 생겼다는 생각에 걱정이 치솟았다. 불편할 생각에 절로 투덜거렸다. 꽤 많은 일대는 동시에 모두 정전되었다. 건조한 날씨 탓일까? 지금까지 변전소 화재로 정전이 된 경우가 종종 있었고, 크지 않은 화재였다. 그때마다 늦어도 하루 반나절 안에는 복구되었었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규모가 크다는 소식을 듣자 빨리 복구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전기는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하루 내일은? 내일은? 기대하며 근근이 전기 없는 삶을 이겨내야만 했다.      


우리 집에는 혼수로 장만한 양문형 냉장고, 엄마가 쓰다가 물려주신 오래된 김치 냉장고, 남아공에 와서 구입한 중고 냉동고까지 냉장고만 3개다. 옛날에는 부잣집에만 냉장고가 많은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냉장고가 많아졌다. 평소 높은 기온인 아프리카의 더운 날씨 탓에 음식이 쉽게 상한다. 또한 시즌에만 구할 수 있는 생선과 냉동식품 저장을 많이 하는 남아공에서는 냉동고가 필수다. 덕분에 걱정이 세 배가 됐다. 전기만 있으면 꽁꽁 얼려주고 차갑게 보관해주는 편리한 가전제품의 위력을 강하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와... 아직은 버틸 수 있어! 냉기 빠지면 안 되니까 너희 냉장고 문 자주 열지 마. 빨리 냉장고 파먹어야겠다. “  언제 들어올지 기약 없는 전기를 생각하며 이튿날까지는 버틸만했다. 냉기 남은 냉장고 음식들을 큰 걱정 없이 하나둘 꺼내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로드 셰딩 됐을 때도 다음날이면 들어왔으니까 늦어도 내일 오후면 전기가 복구될 거야. “    그동안 순환 정전을 주기적으로 겪으면서 정전된 생활에 단련이 돼 있어서인지 하루 하고도 반나절쯤은 이해하며 전기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언제쯤 들어올 것 같아요? “

”다음 주? “

쓰레기통을 비우러 들어온 가드너에게 묻자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에이 무슨 그렇게 심한 뻥튀기를! 됐다 그냥 말자 뉴스나 봐야지 라며 속보를 틀었는데 관계자 답변은 더 심했다. 복구까지 7~9일 걸린다는 발표였다. 설마 진짜랴, 믿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하루 이틀이 어서 지나가길 바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진짜로 10일은 넘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우리 집 건너편 백인 아저씨는 이례가 있는 일이라며 충분히 가능한 일로 체념하고 있었다. 다만, 캄캄한 것보다 찬물로 씻어야 하는 게 몸서리치게 싫다며 말이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우리가 매일 심장 마비될 정도의 냉수마찰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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