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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24. 2022

네가 뭔데 내 맘을 들었다 놨다 해

거짓말 해프닝 






2년 만이다. 

2년간 불법체류자는 아니지만, 불법 체류자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이제 당당하게 3년을 남아공에서 살 수 있다.

비자 신청 후 영수증만 가지고 있으면 불법체류자가 아니지만 마음은 불안하다. 

2번의 거절 끝에 이번에 통과가 안됐다면 당장 10일 안에 짐을 싸서 이 땅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아공은 비자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라다. 

워낙 다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인 탓에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남의 나라에 살면서 비자가 확실치 않아 겪는 심적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코로나로 장기 휴무였던 비자국의 업무는 공식적으로 연기에 연기를 더하면서 점점 뒤로 미뤄졌었다. 

공식적으로 연장되는 덕에 거의 10개월은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2년간 받은 비자는 Reject! 

그리고 Appeal 신청 후 다시 받은 비자도 Reject! 



가족 모두 나왔는데 동반비자인 나는 왜 이렇게 소식이 없는지, 지난 2번 거절을 받은 후 맘 한켠이 불안했다.

동반 비자는 메인 비자만 확실하면 나오는데 뭔가 일이 단단히 꼬였었다. 

그 탓에 마음도 같이 꼬였다. 


오늘에서야 그 꼬인 마음이 풀어졌다. 

너무 감사하게도 3년 비자가 나왔다. 비자를 받아 들고 이번 이번 겨울 한국행 티켓을 알아봤다.  



비자를 받으러 비자 대행 국의 Collect 장소로 가면 심장이 요동을 친다. 

이건 무슨 공황장애도 아니고, 

비자 장애에 걸린 듯 거기만 가면 온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면서 불안함이 같이 밀려온다. 

직원이 들고 나오는 비자 티켓 봉투를 보자 안심이 됐다. 거절 레터와는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이다.  

작은 봉투를 들고 나왔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아!" 


직원이 나를 보면서 찡긋 윙크를 했다. 


참, 비자가 뭔지

내 맘을 들었다 놨다 한다. 


집에 오는 길에 기분이 좋아 남편과 생긴 지 얼마 안 된 버블티 카페에서 밀크 버블티를 하나 사서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집으로 왔다. 

 




"엄마가 비자 안 나오면 진짜 말도 안 되는 거거든? 아빠 비자가 확실한데 이번에도 안 나오면 진짜 이건 여기 떠나야 할지도 몰라! 엄마 혼자 한국 가라고 할 수는 없잖아. "

"아... 우리 꼭 한국 가야 해요? 놀러는 가고 싶은데, 아예 떠나야 한다고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비자를 놓고 오래전부터 해 오던 우리 가족 대화다. 

떠나는 게 아쉬운 여부를 떠나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정말 예기치 않은 상황이 일어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이 제일 먼저 묻는다. 

"엄마 비자는요?" 

"아, 엄마 비자? 어쩌냐 우리 한국 가야 되게 생겼다." 

남편의 말에 별이와 다엘이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문을 모른 채 방에 있던 나에게 다엘이가 달려왔다. 

눈물이 그렁그렁, 뒷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부른다. 

"엄마 진짜예요? 우리 한국 가야 해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뒤로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막내 요엘이는 게임 삼매경이라 그러든 말든 안중에도 없다.  

한 녀석이 더 들어와서 물어야 하는데 코빼기도 안 보인다. 

"별이 어딨어?" 

남편에게 묻자 재밌어한다. 

"한국 가야 된다고 했는데 별이 울어. 방에 가봐." 

"비자 안 나왔다고 했어?"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 상황인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냐고 남편을 다그쳤다.

"난, 비자 안 나왔다고 말 안 했다. 한국 가야 되게 생겼다고 했지. 맞잖아. 우리!" 

무슨 심보인지 애들 울려놓고 뭘 잘했다는 건지, 남편만 아니면 한때 뒤통수를 갈겨주고 싶은 상황이었다. 

얼른 아이들을 불렀다. 

"엄마 비자 나왔어. 아빠가 농담한 거야. 으이그 왜 울었어." 

다엘이가 달려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친구들하고 헤어져야 될 생각에 슬펐다고 말한다. 

그런데 충격을 받은 별이는 방문까지 닫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안 한다. 

한참 뒤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책상과 책상 사이 딱 한 사람 들어가 앉을 공간에 앉아 책을 펼쳐 놓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에이, 너네 아빠도 참. 너네도 아빠한테 무슨 말 들었으면 엄마한테 와서 확인해야지 그냥 울고 있음 어떻게 해. 그리고, 왜 울어. 울기는......" 


어떤 마음으로 속상했는지 잘 알면서도 이 상황에서 짓궂은 남편도 못마땅하고, 구석에 숨어 우는 아이도 못마땅했다.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순간에, 



졸지에 오늘 같은 날 장난을 친 남편 탓에 분위기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암튼, 한국에 가서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다엘이 눈 검사도 하고, 수술 여부도 종결지을 수 있다. 

운전면허도 갱신할 수 있다. 

건강 검진도 할 수 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올 겨울 한국에 간다. 

버킷 작성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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