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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Feb 12. 2023

엄마 내가 가지러 갈게

소닉의 링이 필요해! 



띠링, 카톡 사진이 들어왔다. 

"이거는 왜 안 가지고 갔어?" 

"헉, 그게 왜 거기에 있지?" 



인천공항 제1 터미널에서 6시간 비행 후 싱가포르 도착, 오전 6시부터 자정을 넘긴 새벽 1시 반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남아프리카 O.R TOMBO 공항에서 내렸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여름의 더운 공기가 훅 들어왔다. 

남아프리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란, 


"Sorry, Come. Come. This way." 


짐을 찾아 걸어 나오는 길, 어인일로 그냥 지나가나 싶었다. 속으로 '안 걸렸어 아싸!'를 외치기도 무섭게 구석 쪽으로 짐 카트를 가져다 댔다.  보안요원같이 생기지도 않았지만 형광색 조끼를 입은 흑인 여자가 우리를 불렀다. 100 란드 하나 쥐어보겠다는 심산인지, 검은색 2단 이민가방 하나 골라 형광등으로 툭툭 치며 지퍼를 열어보라고 했다. 자물쇠를 풀자 지퍼를 열고 옷가지를 꺼내 널부러 놨다. 가방 안쪽 옆에 끼워진 미역, 김, 쥐포를 끄집어내서 누가 Dry Food를 가지고 와도 되냐고 했냐면서 손을 양쪽으로 벌린 채 어깨를 으쓱 거린다. 

안된다고 빼겠다며 으름장이다. 100 란드 하나 쥐어주면 끝날 일을 나는 구차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국 말고 굳이 써보자면, 

"에이~ 이거 우리 아이들이 먹을 음식이에요. 여기서는 이거 안 팔거든, 그거 4년 만에 한국 가서 가지고 온 건데,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이걸로 아이들 도시락 싸야 해요. 그냥 넣어주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하며 불쌍한 척을 했다.  나도 모르게 내 눈은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을 장착했고, 몸을 베베 꼬면서 허락해 달라고 아양을 떨었다. 


"Never again!" 

여자는 그냥 하는 수 없이 아이들 때문에 허락해 주는 거라며 다음번에는 가지고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곤 다시 물건을 집어넣었다. 봐주고 싶지 않지만 봐주는 그 여자눈빛에 그래도 사람 인정은 남았나 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뒤 돌아 나오면서 얼른 100 란드 꺼내서 쥐어줄걸 그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기엔 너무 깊은 곳에 지갑을 넣어 두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어쩌면 내 마음이 더 깊게 잠겨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모르고, 그저 아시안만 보면 중국사람인 줄 알던 이곳 사람들이다. 최근 유튜브 혹은 한국 유명 인사들 덕분에 한국에 대해서 하나 둘 알아가나 보다. 최근에 들은 정보에 의하면 아예 짐을 열면서 한국 마스크, 김, 김치까지 대놓고 물어보면서 달라고 한단다. 분명 소수의 사람일 거다. 어디서 먹었는지, 먹어보고 사용해 보니 좋은 건 아는 모양이다. 현지 한인 마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게 뻔하다. 돈 주고 사 먹기에는 너무 비쌀 테고, 공항에 입국하는 아시안이 마치 쿠팡 로켓 배달직원인 줄 아는 마냥 당당하게 받아낸다는 소문이 돈다.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4년 만에 방문한 7주간의 한국 일정이 무척이나 바빴다. 가족들과 진득하니 보낼 시간조차 부족했다. 부모님과의 이별, 가족들과의 이별이 아직도 덤덤하지 못한가 보다. 아무렇지 않게 지난 4년을 화상으로 통화하며 지내왔다. 같이 있을 때는 모르다가(아니 어쩌면 서로의 눈물주머니가 터질까 봐 나는 부모님의 눈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가 맞을 터다) 공항에서 이별할 때 내가 엄마 아빠를 많이 그리워했다는 걸 알았다. 엄마 아빠와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헤어짐이 아직도 내게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눈물샘이 터져버리는 걸 참기 위해 엄마 아빠와 마지막 인사도 덤덤하게 손을 흔들며 얼른 뒤돌아섰다. 오래 안고 있으면 눈물이 멈추질 않을까 봐, 뭔지 모를 설움에 꺼이꺼이 거릴까 봐 참았다. 지금도 부모님만 떠올리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안아드리고 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아쉽다. 그러나 이제 현실에 적응하며 다시 살아내야 하기에 아직 채 잠그지도 못한 눈물주머니를 잠가뒀다. 그저, 머리 어깨 무릎 다리 허리 등 할 것 없이 돌아가며 쑤셔대는 긴 비행이 무사히 끝났음에 안도를 느꼈다.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구나. 나는 왜 여기 살아야 하지?'

잠시 내게 질문 하나를 던지곤 짐을 풀었다. 모두 다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경험해보지 못한 외국에서의 삶이 좋아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겐 정체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마지막에 짐 키로수가 오버되어 놓고 온  우체국 4호 박스 2개가 아른거렸다. 비행기에 싣으려면 72만 원을 내야 한다는 얼토당토않는 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1킬로에 4만 원을 추가지불하라는 싱가포르 항공에 '도둑놈들'이라는 말이 입안에서 씹혔다. 짐을 거의 다 풀어 펼쳐 놓은 상태에서 안 보이는 물건들을 쌓아 헤맸다. 그 무렵 '카톡'이 울리며 사진이 들어왔다. 


"이거는 왜 안 가지고 갔어?" 

"헉, 그게 왜 거기에 있지?" 


1인당 30킬로가 많은 것 같지만 원하는 만큼 채우다 보면 한 없이 모자라는 게 짐이다. 외국 살이 하다 보니 어떻게든 꾸역꾸역 현지상품 및 중국 상품으로 잘 메꿔 산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한국 물건과 음식의 품질대한 움켜잡고 싶은 욕심이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채운다고 미어터지게 채웠는데 와서 풀러 보니 놓고 온 거, 깜빡한 거,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투성이다. 한국에서 1-2시간 거리에만 살았어도, 아니 5시간 거리에라도 살았더면  엄마! 내가 가지러 갈게. 가 어디 대수겠는가, 목구멍까지 말이 튀어나오려다 그저 입맛 다시며 쯧. 하고 말을 삼켰다. 비행기 타기 전에도 해리포터의 9와 3/4 정거장이나 소닉의 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 내게 그런 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한 달가량 끊겼던 전기 덕에 다 뭉그러지고 쉬어빠져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음식은 다시 채웠고, 쌓였던 먼지자리도 깨끗하게 정돈 됐다. 다시 쳇바퀴돌 듯 일상이 시작된 지 3주가 훌쩍이다. 

꿈같은 시간, 꿈같은 만남. 언제 다녀왔다 싶게 이곳 일상에 적응해 살아간다. 

이제 다시 글 쓸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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