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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11. 2023

그거 얼마나 한다고 새거 사서 써

당연함이 없는 생각 차이



"여기도 한국 중고나라 같은 곳이 있을까?"


남아공에 살려고 왔을 때 궁금했던 것 중 하나였다. 물건을 제 값 주고 사는 건 당연하지만 같은물건을 이왕이면 좀 더 저렴하게 사고 중고로 사도 괜찮은 제품들은 중고로 구입한다.

누가 입던 옷, 누가 신던 신발, 누군가가 들었던 가방, 그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썼던 물건들까지도 괜찮다. 어차피 쓰다 보면 중고가 되니까,  그래도 다 괜찮은 건 아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그거 뭣인 중한데, 잘 닦아서 쓰면 되지 하는 마음이 종종 든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길에서 종종 다른 사람이 버린 물건을 주워왔다. 책상, 의자, 거울 등 가구를 종종 가져왔던 기억이 난다. 길다가 멀쩡하게 생겼는데 다리 하나 부러졌다고 버린 의자, 낡아 보이긴 하지만 페인트칠 한번 하면 새것처럼 변할 수 있는 책상, 어딘가 빠지고 부러져 삐딱하거나 손잡이가 떨어진 서랍장 등등 구입하려면 꽤 값이 나가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은 자질구레한 물건들까지도 주워와 고쳐 사용했다 한 때는 남이 쓰다가 버린 물건을 쓰는 게 거지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냥 주워다 쓰는 것뿐 아니라 비싼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살 때는 중고매장에 발품 팔아 물건을 사서 사용했다.

"나는 언제 새 냉장고 한 번 써보나, 새 장롱 한번 써보면 좋겠다." 며 제발 그만 좀 주워오라고 한숨짓는 엄마의 말이 귀에서 맴맴 돈다. 아빠는 주워오고 엄마는 가져다 버리고를 반복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모습에 점점 익숙해져서인지 중고물건을 쓰는 게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익숙한 모습 속에서 살아서인지 나는 중고물건을 쓰는 게 부끄럽다던지 더럽다는 생각이 잘 안 든다. 잘 닦아서 새것처럼 쓰면 되는 게 아닌가, 제 역학을 잘만하면!

 

여하튼, 빠듯하게 살면서 어차피 쓸 거 중고 중에서 깨끗한 것으로 골라서 구매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들의 옷가지는 주변에서 물려받기고 하고, 때마다 시리즈 장난감을 원하는 아이의 장난감도 중고나라 혹은 당근마켓에서 구입했다. 일부러 중고 매장을 찾아다니면서 물건을 산 적도 많다. 남아공에 와서도 중고샵을 여전히 잘 이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없는 줄 알았던 중고 매장이 곳곳에 있다. Cash Converter라는 이름의 샵이다. 물건과 현금을 바꿔준다는 의미인데 카드도 받는다. 근데 왜 캐쉬지,

중고샵이라고 저렴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저렴하겠지 생각했는데 직접 중고매장에 물건을 내놓고 알았다. 가게에서는 내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산다. 물건 값을 정말 짜게 쳐준다. 그리곤 매장에 내놓을 때는 나에게 산 가격 2배 가격으로 붙여 판매를 한다. 결국 싸게 팔고 비싸게 사서 쓰는 셈이다.

물건의 가치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쓰레기장 같은 중고제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Cash Converter보다는 훨씬 떨어지는 품질, 그러니까 사람들이 쓰레기로 버린 물건들을 주워오고 버리기는 아깝고 팔기는 애매한 물건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마치 보물찾기 하듯이 잘 찾다 보면 꽤 괜찮은 물건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곳은 잘 가지 않는데 아주 가끔 필요한 물건들을 찾다가 들르기도 한다. 지인은 이곳에서 어찌나 보물을 잘 찾는지 중고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제품도 찾아서 깨끗하게 닦아서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나는 보물 찾기를 못하나 보다. 열의 아홉 번은 늘 실패다. 갔다가 그냥 한 바퀴 휙돌고 나오는 날이 더 많다. 사실 좀 멀어서 어쩌다 한번 간다.


얼마 전, 많은 프린트 자료를 보관할 수 있는 PVC 파일이 필요했다. 총 6개가 필요했는데 문구점이나 마트에 가서 사려고 보니 개당 70 란드 정도 하던 게 떠올랐다. 6개니까 대략 420 란드 정도 되는 건데 적은 금액은 아니다. 더 저렴하게 파는 곳이 있나 둘러보기도 전에 이곳이 떠올랐다.

"거기 가자! 지우(가명) 엄마가 그러는데 거기 있잖아. 그 쓰레기장, 거기 가면 하나에 10 란드인가 한다던데? 잘 고르면 깨끗한 것도 많대. 지난번에 지우엄마는 거기서 깨끗한 걸로 골라다가 지우 파일 만들어줬다더라고."

남편에게 가보자고 말하고 마침 그 근처로 볼일을 보러 갈 거니 들르자고 했다. 도착해서 들어가는 데 여기저기 쌓인 물건들, 정전이 된 상태로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약간의 퀴퀴한 냄새도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쓰레기 같이 쌓인 물건들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닦이지 않는 오물들의 냄새도 겹친 듯했다.

들어가자마자 제일 안쪽 파일이 위치한 곳으로 저벅 저적 걸어 들어갔다. 제일 안쪽 구석.

가지런하게 놓인 수많은 파일을 보자 말부터 튀어나왔다.

"많네!"

6개만 있으면 되니까 얼른 눈으로 깨끗한 것을 찾아 스캔했다. 이것저것 떠들어보면서 뒤적거리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한마디 한다.  


"그냥 사! 가서 문구점에서 가서 사. 아니면 인터넷으로 좀 알아보던가. 그거 얼마나 한다고! "

지저분한 틈을 뒤적거리는 내 모습이 못 마땅해서인지, 그 푼돈 좀 아껴보겠다고 파닥거리는 내가 불쌍해 보이는 연유인지는 대충 감 잡아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기서 사겠다는 마음이었다.

"괜찮아. 이거 사다가 좀 닦아서 쓰면 되는데 뭘 그래. 이봐 멀쩡하잖아. 지저분한 거만 닦으면 파일만 끼울건대 뭐 어때, 집에 소독제 있잖아. 뿌려서 닦지 뭐."

옆에서 몸은 이미 나갈 입구 쪽으로 반쯤 돌린 상태로 고개만 내 쪽으로 돌려 쳐다보기만 한다. 몇 분 더 뒤적거리는 나를 보더니 어깨를 끌어당겼다.

"가자. 가서 사줄게."

인터넷을 좀 뒤적거리더니 약 30-40 란드 선에서 살 수 있는 걸 발견하고는 목소리가 더 커진다.

"이거 뭐 얼마 안 하네. 이거 몇 푼 아낀다고 부자 되는 거도 아니고, 내가 이 정도는 사줄 수 있거든! 가자! 이런 거 쓰지 마."


남아공에서는 집을 렌탈해줄 때도 집주인이 백인인 경우 흑인들에게 집을 잘 안 내주려고 한다. 집이 잘 망가지고 더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물건도 깨끗하게 안 쓰는 경우도 많고 남편은 그렇게 쓰다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다 쓰는 게 싫단다. 고가의 물건을 어쩔 수 없이 사거나, 정말 중고로 사서 막 쓸 수 있는 물건들은 따로 있다나. 그런데 실제로 백인보다 흑인들이 일도 더 잘하고 청소도 잘한다. 메이드는 거의 다 흑인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오류 혹은 실제 그들만의 문화가 있는 건 맞다.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남편의 만류 덕에 나는 마지막에 들렀던 마트에서 33 란드 짜리 파일을 6개 샀고 집에 와서 가지런하게 세워서 필요한 자료들을 넣었다.

  


쓰레기장 같은 중고샵을 들어서 여기저기 중구난방 제대로 관리받지도 못하고 널브러진 물건들을 봤다. 더 사용할 수 있는데 버려진 물건들을 본다. 대부분은 쓰레기 통에 버려진 것을 주워 파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것도 절반 이상이다. 그러니까 이미 기능을 못해 버려진 것들도 판매대에서 누군가가 주워갈까 싶어 가져다 놓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버려진 것도 잘 갈고닦아 이어주고 메워주면 다시 제기능을 할 수 있을까? 란 생각에 잠시 빠졌었다. 생각의 끝은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생각이란 다 그런 게 아닌가 싶은 결론으로 흐지부지 말이다.

잠시 스친 생각이 꼬리를 물어 글을 쓰려고 사진도 찍어왔는데 맺음이 안 되는 글이 점점 길어진다.

결국, 생각의 차이다.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고, 생활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문화 다른 모습 다른 생각으로 사는 것 같지만 다들 빠듯하긴 같고, 남이 쓰던 건 안 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저렴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사람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삶이 어려운 이곳 사람들에겐 더욱이나 말이다.

중고제품인들 새 제품인들 기분이야 다르겠지만, 사용하는 데 문제만 없다면 뭐가 중요하겠느냐는 마인드로 산다. 가진 게 넉넉지 않아도 늘 내가 하는 거는 좋은 거 쓰라고, 좋은 거 먹으라고, 하고 싶은 건 다 하라고 밀어주는 남편과 산다. 생각의 차이, 결국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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