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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22. 2023

의미 없는 땡큐

매번 받기만 하니까 당연한 줄 알아. 



나라와 인종을 떠나 매번 받기만 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받는 것에 익숙하다. 40 평생 살아오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 중에 늘 선물을 많이 받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인즉, 위치가 선생이나 교수여서 감사 인사로 많이 받던 리더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로부터 감사 인사로 선물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단 거다. 

외국에 살다 보니 한국과의 차이점, 한국인으로 느끼는 외국인과의 생각차이, 문화에서 오는 이해할 수 없는 관습까지도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남아공에 와서 이사를 한 며칠 후 마을 통장 같은 할머니가 있었다. 여기서는 Care Taker라고 부른다. 할머니는 머리가 회색빛인 백인 할머니였다. 영국 영어를 쓰고 고지식함과 함께 담배 향기를 풀풀 풍겼다. 할머니 집 앞을 지날 때면  전 니코틴 냄새 탓에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마을을 지키는 통장이니까 한국에서 온 기념으로 부채를 선물하려 들고 갔다. 그 부채는 사실 새 부채도 아니었고 나도 선물을 받았지만 아까워서 고이 묵혀두던 선물이었다. 새 거도 아니고 마음을 전하는 데 부담스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는 쭐래쭐래 들고 갔는데 넌 대체 뭔데 왔냐는 듯한 무표정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NOPE" 

부채를 내밀자 자기는 공평해야 하는 케어테어커니까  이 선물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뭐 큰 선물도 아니고 그저 부채일 뿐인데,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공정함을 위한 태도라니 이해가 됐다. 그 뒤로는 음식도 선물도 그 할머니에겐 줄 수 없었다. 아이들 친구나 관계를 맺게 된 다른 현지인들은 좋아하면 좋아했지 거절하는 적이 없었다. 





남아공에 와서 흑인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을 주 1회 만난다. 아니 이제 주 2회 만난다. 그 마을은 정말 가난하고 한 여름 푹푹 쪄 실내 온도가 60도 육박이라 안에서는 버틸 수 없는 깡통집에서 사는 사람이 전부다. 가끔 벽돌집도 있긴 하다. 암튼 생활 수준 자체가 너무 힘든데 그들은 그런 생활을 살면서도 음악과 맥주면 신나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많은 생각이 든다. 선교사 정체성으로 이들에게 어떤 부분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을지 고민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고민 중이다. 


  "그거 습관 돼요. 그러니까 자주 주면 버릇돼서 안 돼요."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성인용 여성 면 타이즈를 잔뜩 선물 받았다. 반짝반짝하고 화려한 무늬가 들어가서 받자마자 이곳 흑인들 선물 주면 좋아겠다싶었다. 원래 선교지에 나눠줄 목적으로 그분도 다른 누군가에게 받은 건데, 이곳을 정리하고 떠나면서 아깝다며 나에게 주면서 필요한 곳에 쓰라고 했다. 이후로 언제 주면 좋을지 기회를 봤다. 주고 싶으면 아무 때나 가져다주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이번 주에 좋은 물건 생기면 이번주에 주고, 다음 주에도 생기면 다음 주에도 또 주고, 뭔가 새것이든 쓰던 것이든 나눌 수 있으면 뭐든 좋은 거 아닌가 생각했던 때가 많았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주변에서 이런 말을 던졌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버릇돼서 안되면 그럼 언제 줘야 되지? 하는 생각에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게 나쁜 건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은 머지않아 입증이 됐고, 밀당을 잘해야 한다는 결론데 도달했다. 내가 맨 가방을 잡아당기며 이 가방 자기 주면 안 되냐고 웃으면서 말하는 아주머니, 내 핸드폰을 보면서 너는 돈이 많으니 자기 핸드폰도 사줘야 된다는 아이도 있었다. 너무 당당하게 너는 내게 그것을 주는 게 당연하단 듯말이다.  하루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왜 우리한테 선물 안 줘? 레이첼은 우리한테 줬는데? " 


그날 스타킹을 받은 사람들, 아니 그 여자들이 함께 매주 만나는 지인에게 한 말이란다. 내 생일이니까 너는 당연히 내 선물을 줘야 하고, 저 사람도 나에게 선물을 줬으니까 너도 나에게 줘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생긴 걸까, 당연한 듯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순간 실소가 터졌다. 그게 왜 당연하지? 

이것도 문화 차이일까? 자라 온 환경과 경험했던 모든 순간이 가져다준 결과일까, 베푼 선행은 똑똑하지 못한 선행이었을까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평소 시큰둥하며 인사도 거의 피죽도 못 먹어 숨이 꺼져갈 듯한 태도로 인사하던 사람이 선물을 줬을 땐 빅허그를 날리며 '땡큐'를 연발했다. 사실 그 당시에도 그곳에 있던 사람은 4명 내가 들고 있던 스타킹은 10개니까 1인당 2개는 가져갈 수 있었다. 남은 2개마저 먼저 달라는 사람이 채갔다. 그렇게 한 개를 받아 들 때마다 땡큐 땡큐 땡큐를 연거푸 말한 거다. 갑작스러운 해피 모드에 조금 당황했지만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뭔가 전해줄 수 있는 게 있고 그걸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달까, 그런데 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 당시 상황이 주마등같이 지나가면서 그 상황이 흑백모드로 전환됐다. 


'아, 선물을 받을 때는 굉장히 감사하는 것 같았지만, 받는 일은 당연하고 습관적으로 나오는 땡큐였구나.'  

 

그와 동시에 나도 '감사합니다'를 너무 습관적으로 말하고 살진 않나 되돌아보았다. 물론 진짜 감사할 때도 많다. 내 삶에서 감사가 없다면 무미건조한 삶이 될 거다. 그만큼 스펙터클한 삶을 살고 있어서다. 감사는 늘 따라다닌다. 그래도 가끔은 정말 깊이 감사해서 감사고백을 하는 건지는 생각해 볼 만하다. 


누구는 매일 감사한 게 없어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니면 복이 온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실제로 감사가 감사를 부른다는 말도 있으니까. 

그건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막상 이런 상황에 놓여보니 감동이 없는 감사가 얼마나 감격이 있을까 싶다. 


의미 없는 땡큐는 쓸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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