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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19. 2023

하루 10시간 정전이라뇨?

정전에 수도 공급 중단



2:00 pm - 6:30 pm (4시간)

10:00 pm-12:30 am (2시간)

8:00 am - 12:30 pm (4시간)


 정전 시간표다. 하루 8시간 시간에서 10시간 정전이 지속 중이다. 매일 돌아가면서 다른 시간대에 정전이 된다. Stage를 바꿔가며 정전이 된다. 여기서는 Loadshedding이라고 부르는데 Stage가 높을수록 정전 시간이 늘어나며 횟수도 늘어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 2시간 혹은 4시간 정전이 최대였는데, 요즘엔 Stage 6을 웃돌며 시간과 횟수가 늘었다. 소문에 곧 Stage 10이 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들린다. 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중 전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은 대체 몇 시간이나 되는 걸까, 집 나간 전기는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 집에 들어온다.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이없는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전기 이야기는 해도 해도 에피소드가 끊어지질 않는다.


남아공에서 살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있다.


전기 언제 나가요?


아이들도 남편과 나도, 지인들도 서로 확인하는 게 일상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전기 언제 들어와요?


그저 일상이 된 정전 타임을 헤아리는 일은 확인하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다. 어디 상상이나 해봤을까 한국에 살면서 정전 걱정을 하는 일 말이다. 전기가 있는 시간 동안 빨래, 청소기는 특히 꼭 돌려야 한다. 밥은 브루스타에 의지해서 한다고 하지만 하나에 의지하기엔 너무 불편하다. 집안일뿐 아니라 컴퓨터로 해야 하는 일도 그 안에 호닥 거리면서 하곤 했다.

덕분에 전기가 나가도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충전식 UPS를 구하고, 전기가 나가도 약 2~4시간은 버틸 수 있는 배터리도 알아봤다. 감사하게도 지인이 빌려주어서 오늘 업어 왔다. 강의 및 코칭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간은  정전이 없었다. 정전예고가 있었음에도 전기는 나가지 않았다. 이유인즉, 데모가 일어났고 데모를 잠재우기 위한 거였을 것 같은 추측으로만 정전이 안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해! 마치 정전이 돼야 하는데 안 나가니까 은근 불안하네?"


그런 말을 나누고 있을 무렵 들려온 소리는 전기를 이어주는 철탑에 도미노처럼 쓰러졌고, 그 탓에 주변이 모두 정전이 됐다는 거였다. 복구하기 위해서 수일이 걸린다고 했고, 그 덕에 전화도 먹통이 됐었다. 자주 가는 흑인 지역은 지역 주민 모두 전기가 안 들어와 시계를 확인할 수 조차 없어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할 정도였다. 그 주변에 갔을 때 내 전화 역시 완전히 먹통이 되어 약 3시간 동안 연락을 받을 수도 걸 수도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너진 철탑으로 인해 전기 공급이 안되니, 물을 공급하는 장치 또한 멈췄고 일부 아니 꽤 많은 지역이 수도까지 중단이 됐다. 무려 4일 동안 말이다. 매우 감사하게도 우리 지역은 비껴갔고, 정전도 없고 물도 콸콸 나와 불편함 없이 생활을 했다.


 "물 나와요?"라는 지인의 문자 한 통이 없었다면 전혀 몰랐을 거다.  주변 지역 물난리난 동안 우리 지역은 물이 잘 나와 지인들이 와서 샤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세탁기도 돌려 빨래도 해갔다. 이럴 땐 누구 하나 도와줄 수 있음에 무척 감사하다.  


전기 선을 잇는 철탑이 줄줄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상에 얼마나 허술하게 심었으면 철탑이 무너지냐? 진짜 황당하기 짝이 없네."라고 말했는데, 오늘 들은 이야기는 더 황당했다. 그동안 전기선이 구리여서 팔면 돈이 되니까 전기를 끊어간다고만 알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도 갑자기 정전되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지인의 이야기로는 철탑 아래 철근이 돈이 되니까 그걸 끊어다가 팔아먹는 흑인들이 있고 계속 아래 부분을 떼가니까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는 거다. 헬기 동영상을 통해 연결된 철탑 영상을 봤는데 가관이 따로 없었다. 도미노도 아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철탑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이보다 황당한 사건도 많지만 이번 사건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전기, 수도 둘 다 일상생활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원이다. 몇 십 년 전 한국도 전기 부족, 물 부족으로 힘들었을 시절이 있었다. 1980년 중반부터 1990년 초반쯤 (나이 나온다) 어렸을 적만 해도 두꺼비집 갑자기 내려가서 전기 끊겼던 기억이 있다. 수도 공사 때문이었지만 물을 쓸 수 없어 바구니 바구니 물을 담아 놨던 기억도 난다. 그때도 당연히 그냥 그런 게 일상인 줄 알고 컸던 거 같다. 21세기 삶을 상상도 못 했으니 당연한 거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대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된 세상에서 누릴 것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누림 속 일상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 배신을 당하는 기분이란 멍청하기 짝이 없다.

 아무 곳이나 가도 누릴 수 있는 자원들에 대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말도 이제는 쉽게 못 한다. 당연하게 아니기 때문이다.

  초 중고 시절  "몇 십 년 후에는 물을 사 먹게 될 거래!" 이 말을 들었을 때 코웃음 쳤다. 어이없다 생각했다. 수도꼭지 열면 콸콸 나오는 물 누가 돈 주고 사 먹어?라고 했는데 세월이 지나 물을 사 먹고 있다. 가끔은 마트에 물이 없어서 물 구하러 다니기 힘들 때도 있다.

 

  정글의 법칙이나 오지 체험 같이 일부러 선택해서 겪어보는 삶도 있지만, 이건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제는 제법 잇몸의 삶에 익숙해진 듯 하지만, 역시 낯설다. 매일 낯설다. 무뎌질 법도 한데 무뎌지질 않고 불만만 커진다. 단지, 익숙해졌다는 건 캄캄한 곳에서도 대강 움직여 일을 볼 수 있고 주섬주섬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게 미리 랜턴을 적절한 곳에 두어 찾아 켜는 정도로 버틴다. 가끔은 일부러 불을 안 켜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서 불을 안 켰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그냥 그 환경에 적응해야만 하기 때문에 무뎌진다는 거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매우 불편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살기 위해' 어떻게든 적응하면서 사는 거다. 그러니, 나도 이런 환경에서도 해야 하는 건 어떻게든 해낸다. 대체할 수 있는 게 뭐라도 있어서 다행인 거다. 와이파이 대신 데이터를 사고 전기 없는 대신 노트북 충전한 만큼 사용한다. 냉장고 안되면 그냥 냉기로 버티고, 음식물은 최소로 줄인다. 전기스토브 대신 휴대용 브루스타를 쓴다. 2년 전 14일간 정전이었을 때는 세탁기 대신 발로 밟아 빨래를 했고 물이라도 나와 얼마나 다행이냐며 감사를 절로 읊었다. 삶은 그런 거다.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  


 이 와중에도 어둠 속에서 충전된 노트북에 매일 글을 쓰고, 어둠 속에 태블릿 화면 불빛에 의지해 매일 영어 훈련을 한다. 휴대폰 데이터로 영어 소리 피드백을 하고 미리 다운로드하여둔 전자책을 읽는다. 데이터를 이용해 줌에 참여하고 할 거는 다 한다.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이러해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않은가.

하루 10시간이면 24시간 중에 14시간은 전기가 들어오는 거니까, 잠자는 시간을 빼도 몇 시간을 전기가 들어오고 다른 집 물 안 나올 때 우리 집이라도 나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노련함을 익히고, 감사를 배운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오늘도 어둠 속에서 글 한편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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