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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un 15. 2022

무채색의 립스틱

Blue roses do not exist on this planet.

  당신이 보유한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불문하고, 이를테면 그 시스템이 맥이건 윈도우즈건 컴퓨터를 부팅하면 앙증맞고 귀여운 컬러풀한 아이콘들을 접한다. 물론 리눅스 운영체제로 시스템을 부팅하면 초기상태는 새까만 모니터에 백색의 커서만 깜박이는 텍스트 모드지만, 시스템 내부 운영체제인 xWin으로 재입성하면 역시 GUI 기반으똑같지 않지만 유사한 상징의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허구한 날 이런 현란한 유채색의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여 프로그램을 로딩하다 보면, 처음의 쌈빡한 느낌을 제공하던 예쁘장한 아이콘들이 보면 볼수록 징그럽고 지겹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것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인간이라면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감에 금방 식상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곧잘 강하게 눈에 띄는 원색일 경우라면 식상의 속도는 훨씬 빠르기 마련이다.

  지금은 누구나 한개씩 소유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나 혹은 애플의 휴대폰 운영체제 속에 알알이 밖혀있는 원색의 아이콘지배당한 우리는 질리거나 말거나할 겨를도 없다. 아무리 징그러워도 아이콘을 교체할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기에는 무채색의 단색 아이콘이란 거의 찾아볼 수도 없는 실정이다. 애석하게도 이미 우리는 현란한 원색으로 치장된 징그러운 아이콘의 노예가 된 셈이다.

  모든 유채색은 사람을 금방 질리게 하는 속성이 있다. 반면 색상이나 채도가 없고 명도의 차이만을 지니는 무채색은 차분할뿐더러 쉽게 식상하거나 질리지 않는 은근한 지속효과를 제공한다. 미인의 기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줄곧 변하기 마련이지만, 세상을 뒤집어 엎을 수준의 절세가인이라면 완벽한 짜임새와 대칭의 면모를 지니지 않는다. 색상에 견주어 보자면 무채색의 경우처럼 비대칭성 미완의, 그러니까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 싶은 야릇한 백치미를 보유하고 있음은 예로부터 익히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외모로 하여금 첫눈에 홀딱 반할 수 있는 화사한 미인일수록, 요목조목 세세히 뜯어서 분석 해보면 참 별 볼 일 없으므로, 화려한 윈도우즈의 아이콘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질려버리고 만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거니와, 이 허튼소리를 접한 당신은 여자이거나 아니면 반드시 남자일 수밖에 없겠지만 (틀렸다! 요즈음에는 트랜스젠더도 있고 중성도 부지기수이기에...) 성별의 차이를 막론하고 그대가 정작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지속 가능한 관계 유지를 희망한다면 무채색의 은은한 아름다움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모름지기 건강한 쓸개를 지닌 사람이라면 화려하고 현란한 외모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지적 은애의 내면을 지닌 무채색의 아름다움에 잔잔히 감동하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민담 중에 Blue rose(푸른 장미)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느 공주가 자신과 결혼을 하려면 푸른 장미를 가져와야 한다고 선언을 했지만 아무도 그 장미를 구하지 못했다. 소문난 공주의 미모에 혹한 구혼자들은 물감을 들인 파란장미, 파란 색깔의 유리로 만든 장미, 청색의 보석으로 만든 장미 따위 등을 가져왔으나 공주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한 청년이 평범한 회색 장미를 가져왔을 때, 그 장미야말로 순수한 마음이 담긴 푸른 장미로 인정을 해주었다는 내용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20세기말 까지 푸른 장미의 꽃말은 '가능성 없음'으로 알려져 왔다.

  검은색의 흑장미와 흰색의 백장미를 교접하여 만들어낸 무채색의 회색 장미는 있지만, 애초 푸른색의 장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중에 나도는 푸른색 장미는,  장미를 염색하여 편집 해놓은 눈속임이 대부분이다. 푸른 장미는 '신비로움'이나 '불가능'의 상징이 되었고, 푸른 장미를 얻게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뜬구름같은 설화도 생겨났다.

  하지만 세상에는 노력해서 안 되는 불가능이란 없는지, 호주의 플로리진사와 일본의 산토리사가 수십 년의 공동연구로 여러 종의 장미를 유전자 가위질로 모질게 고문한 결과, 21세기 초엽(2004년)에 드디어 푸른 장미를 만들어냈다고 과학저널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지구 상에 없는 종의 개발에 성공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이 장미에 '포기하지 않는 사랑' 또는 '기적적인 사랑'으로 푸른 장미에 새로운 꽃말을 추가시켰다. 


" 요컨대, 립스틱을 짙게 바르되 잿빛이나 아니면 회색계통 무채색이면 되는 거요? 도대체 말이 안됩니다. 아무도 누구도 그것을 바르지 않을거고, 더구나 찾지도 않을 그런 무채색의 립스틱을 제조하는 엉터리 회사가 지구 상 어디쯤에 있다는 말이요?"


" 본시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게, 인간의 설계 결함인데... 없을것으로 쉽게 단정하지 말고 끝까지 찾아보세요. 그래서 정작 없다면 푸른 장미처럼 직접 개발을 하면 됩니다. 기적적인 사랑이 없다면, 섬뜩한 색상의 푸른 장미인들 어느 누가 찾겠소? 무엇인지 없다는 증명은 그것이 있다는 증명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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